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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너스-리의 최초의 웹 서버와 브라우저와 관련한 개발이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웹(WWW, World Wide Web)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은 마크 앤드리센이 주축이된 NCSA 팀에서 1994년 10월에 모자이크(Mosaic)를 발표한 다음부터다. 그리고, 웹의 폭발적인 증가는 1995년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큭가 설립한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에서 네비게이터(Navigator)를 발표하면서부터 표면화된다.

네비게이터는 비상업적인 용도에는 무료로 배포가 되었고, 순식간에 모든 경쟁자들을 압도하면서 웹의 황제자리에 올랐다. 1995년 웹은 글자 그대로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PC 통신 중심의 네트워크 세상을 완전히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네비게이터는 웹의 상징이었고, 네비게이터를 이용해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navigation)하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다른 종류의 브라우저는 존재의 의미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급격히 커지는 웹 환경을 바라보면서 당대 최고의 거인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에게 도전장을 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파이글래스(Spyglass)라는 회사의 브라우저 기술을 라이센스해서 브라우저 전쟁에 뛰어들게 되는데, 스파이글래스는 1990년 NCSA의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회사로 1994년 모자이크를 정식으로 라이센스 받아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넷스케이프에 대항하기 쉽지 않던 차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공룡이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을 알고 이들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파이글래스의 모자이크를 라이센스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개발하였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95가 발매되었는데, 처음 발매할 때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포함시키지 못했지만, 8월달에 발표한 윈도 95 플러스! 팩 (Plus! Pack)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탑재시켜 발표하였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와는 달리 윈도 95가 화제를 모으며 전 세계 PC 시장을 휩쓸었지만, 웹 브라우저 점유율에 있어서는 네비게이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2.0 은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발표가 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임을 직감한 넷스케이프도 이에 질세라 발빠르게 버젼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대응하였다. 이들의 경쟁이 가속화 되면서 브라우저의 안정성이나 버그를 교정하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기능의 향상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네비게이터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와 Blink/Marquee 엘리먼트와 같은 비표준 HTML 태그를 지원하였고, 익스플로러는 JScript 등으로 대항하였다. 이러한 과도한 경쟁은 점점 브라우저들의 성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웹 표준에 맞지 않는 웹 페이지들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비록 운영체제를 독점하는 회사였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네비게이터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2.0 버젼까지 별 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 3.0 을 1996년에 발표하면서 서서히 네비게이터의 점유율을 따라잡기 시작하는데, 익스플로러는 브라우저 중에서 처음으로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구현하면서 대중화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점유율은 겨우 10% 정도를 넘는 것이 고작이었다. 1997년 10월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4.0이 발표되던 때만 하더라도 72:18 이라는 압도적인 열세에 몰렸던 익스플로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핵심 운영체제인 윈도우에 통합해서 끼워팔기로 전략을 선회하면서 상황을 역전시키기 시작한다. 사용자들이 윈도 95나 이후에 출시된 98을 설치하면, 자동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가지게 되었고, 브라우저를 이미 가지게 된 사용자들이 중복으로 네비게이터를 다운로드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판세는 급격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기울게 된다. 

윈도 운영체제와 끼워팔기를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승기를 잡게 되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그후 역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잊혀져 갔다. 그렇지만, 제품의 완성도나 공정한 경쟁을 통한 것이 아니라, 끼워팔기에 의한 시장장악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선택은 결국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998년 미국정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를 하게 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브라우저 끼워팔기였다. 이 사건은 2001년 11월 2일 미국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종결이 되었는데 (여러 주 정부의 입장차이로 완전한 실질적인 결정은 2004년으로 늦춰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써드파티 회사들을 위해 자신들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유하고,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스템, 기록, 소스코드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는 3명의 패널을 허용해야 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과도한 장벽을 칠 수 없도록 규제를 하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코드를 바꾸거나, 다른 소프트웨어를 같이 묶어파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제재를 내리지 못하게 되는데, 비슷한 혐의로 시작된 유럽에서는 웹 브라우저를 운영체제에서 분리하도록 명령하였고,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새로운 브라우저 전쟁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와의 경쟁에서 패한 넷스케이프는 결국 더 이상 독자적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1998년 당시 최대의 PC 통신업체였던 아메리카 온라인(America Online, AOL)에 42억 달러라는 돈을 받고 회사를 매각한다. 이후 익스플로러의 독주는 계속되고 2002년에는 무려 96%라는 대단한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정점에 오른다. 닷컴 시대의 화려한 황태자 넷스케이프는 이렇게 몰락하고 만다. 그렇지만, 넷스케이프는 AOL에게 매각되는 1998년 이후 오픈소스 혁신을 주도하는 그룹의 하나인 모질라(Mozilla) 재단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고, AOL이 인터넷 브라우저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2007년 부터는 기존 네비게이터를 계승발전시킨 파이어폭스(Firefox)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아성에 도전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Browser Wars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Spyglass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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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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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서클에 집어넣은 사람은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Google+ 에서 가장 좋은 글도 올리고, 이 서비스의 재미를 제일 크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은 바로 마이스페이스의 공동창업자인 톰 앤더슨(Tom Anderson)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스페이스에 가입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서 이런저런 팁을 주는 친구(물론 자동화된 아바타였겠지만)의 역할도 했던 사람이지요.

그의 Google+ 글이 재미있는 것은 딱딱한 뉴스들보다는 자신의 마이스페이스 경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 이야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글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종 과거에 있었던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나 에피소드 등을 간혹 소개하는데 최근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과 연관된 매우 중요한 시기의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이 있어서 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마이스페이스의 흥망성쇠에 대해서는 제가 출간한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도 많이 다룬 바 있고, 블로그에도 내용이 공개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글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2010/11/29 - 거의 모든 IT의 역사 (73): 마이스페이스 이야기
2010/12/24 - 거의 모든 IT의 역사 (79): 루퍼트 머독, 마이스페이스를 망치다.


위의 글을 보시면 마이스페이스를 몰락으로 이끈 유명한 계약이 하나 언급이 됩니다. 2005년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한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은 2006년 8월 구글과 $9억 달러 규모의 검색광고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계약의 조건을 지키려고 마이스페이스가 무리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용자들이 떠나게 되지요. 톰 앤더슨은 이 때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들이 알고 있지 못했던 재미있는 비사를 이야기 했습니다.

2006년 계약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는데, 원래의 계약협상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협상이 잘 진척이 되어서 거의 성사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상대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담당자가 누구였을까요?  그는 바로 현재는 구글로 넘어와서 크롬과 Google+ 라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고,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리더로서 명성을 날리던 빅 군도트라(Vic Gundotra) 였다고 합니다. 이 때의 협상이 결렬되고 빅 군도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두고, 1년 뒤에 구글에 입사를 하게 되지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의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2011/01/21 - 거의 모든 IT의 역사 (85) - 떠나버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재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이 끝나고,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톰 앤더슨은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구글의 투자자이자 가장 중요한 이사회 멤버 중의 하나이고, 최고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불리는 KPCB의 존 도어(John Doerr) 였습니다. 그에게 마이스페이스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구글은 헬리콥터를 띄워서 뉴스코퍼레이션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9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였던 것이죠. 워낙 커다란 액수였기에 뉴스코퍼레이션은 이 계약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조건이 까다로워서 결국 마이스페이스는 이 계약에 매여서 수많은 사용자들이 떠나게 만듭니다.

톰 앤더슨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했던 계약은 비록 액수는 그보다 작았지만 조건이 훨씬 유연하고 마이스페이스가 많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구글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계약을 했다면 마이스페이스의 미래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운명들입니다.

결국 이 계약이 성사가 되지 않으면서 빅 군도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서 1년 뒤에 구글에 합류를 했는데, 그의 손에서 크롬과 Google+ 라는 구글의 검색 이후 최고의 프로젝트 들이 탄생합니다. 구글은 엄청난 인재를 얻게 되었고, 톰 앤더슨은 빅 군도트라와 함께 Google+ 를 지원하는 큰 우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톰 앤더슨이 존 도어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첫 만남에 단 한 시간동안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계약의 물고가 바뀌었던 것이지요.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이스페이스가 계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이후 페이스북이 투자를 받으려고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것이고, 반대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기 위해서 과감한 베팅을 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의 지분은 구글의 차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고, 페이스북과 구글이 연합을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마이스페이스의 상황이 현재와는 달랐겠지만 말입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역사에 있어서도 한 순간의 거래가 당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길게 보았을 때에는 반대의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은 듯 합니다.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군요.


참고자료

Tom Anderson 의 Google+ 프로필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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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좌)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우)


애플은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휴대폰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구글은 더블클릭을 인수하고 여러 종류의 서비스들을 내놓으면서 저만치 앞서가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붙고 있던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형 투자를 성공시키면서 미래의 전쟁에 대비한 최대의 원군을 확보하는데 성공합니다.  오늘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소셜 웹에 접속하다.

2007년 10월 24일,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억 4,000만달러를 페이스북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페이스북의 지분 1.6퍼센트를 취득하기로 합의합니다.  2004년 2월에 시작한 신생 서비스가 3년 반 만에 $15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두 회사는 현재의 광고 파트너쉽을 확장하고, 전략적 동맹관계를 체결하여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스북의 독점적 광고 플랫폼 파트너로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사업권을 취득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페이스북 플랫폼에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서드파티들도 마이크로소프트 애드센터 네트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투자를 유치함에 있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긴장관계를 최대한 이용하였고, 구글의 더블클릭 인수로 미래의 서비스 시장의 성장동력을 빼앗겼다고 판단한 마이크로소프트로 하여금 최대한의 베팅을 끌어내면서 향후 미래의 인터넷 주도권 경쟁에서 구글과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출 수 있는 현금자산을 확보하였습니다.  페이스북의 투자유치 소식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야후가 적극적으로 대시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의지가 워낙 강했고 이번에는 구글도 손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도 당시 페이스북의 가치를 $150억 달러를 인정한 것에 대해 과도하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현재 전세계 5억 명의 사용자 인프라를 바탕으로 구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이미 확보하였고, 앞으로의 소셜 인터넷 운영체제(social internet operating system)로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회사와 협력하게 되어, 당시의 판단이 탁월하였음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서비스 부분 사장이었던 케빈 존슨은 페이스북에 대한 투자를 놓고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번 투자와 파트너쉽 확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을 세계 광고 시장에서 보다 나은 기회를 가지도록 포지셔닝 할 것이며, 두 기업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사용자들과 광고주들에게도 훌륭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지난 기간동안 성공적으로 협력하였고 미래에 흥미진진한 일들을 함께 수행하길 기대합니다. 광고 파트너로서의 더 심도 깊은 협업 기회는 주식 취득을 결정한 중요 이유이고, 이번 파트너쉽의 장기적 경제성에 대한 자신감의 강력한 표현입니다.

이로서 검색을 포함한 온라인과 인터넷 분야에서 항상 구글에 뒤쳐졌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셜 웹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미래의 삼국지 대전에 참여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얻었습니다.  


긴박했던 투자전쟁, 소셜 네트워크로 소문나다.

페이스북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있었던, 구글도 이 싸움에서 지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 2군데에서 이런 경쟁을 유도할 수 있었던 페이스북도 정말 대단한 회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긴박했던 투자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특급기밀이 외부로 새어나갈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식발표가 있기 전에 소셜 네트워크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셜 웹 시대에 걸맞는 변화였다고 봅니다.  두 기업이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조금 전에 페이스북의 PR 담당인 브랜디 바커(Brandee Barker)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글로벌 세일즈 및 마케팅 담당인 아담 손(Adam Sohn)을 친구로 추가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예측이 공식 보도자료보다 훨씬 빠르게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구글은 정보검색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장악했지만, 페이스북의 현재 위치는 소셜 인터넷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회사로 볼 수 있으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운영체제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은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유한 1.6% 라는 지분은 투자한 금액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이기 때문에, 사실 상 경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할 듯 합니다.  그렇지만, 내부지분을 제외하고는 가장 커다란 외부지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실제로 이 돈이 있었기에 이후 프렌드피드(FriendFeed)라는 구글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만든 기술중심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실시간과 관련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윈도우와 오피스, 그리고 XBox 에 이르는 성공신화를 써오던 마이크로소프트이지만, 미래의 가장 중요한 서비스 전쟁을 앞두고 번번히 구글이라는 회사에게 밀렸고, 아이폰의 인기와 구글 안드로이드의 약진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오던 PC 이외의 장비시장에서의 운영체제의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 페이스북에 대한 투자는 미래의 먹거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이것마저 구글에게 빼앗겼다면 미래의 삼국지에는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리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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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구글의 빅 군도트라(Vic Gundotra), 우: 아마존의 브라이언 발렌타인(Brian Valentine)


몇 차례 포스팅을 통해 구글의 많은 인재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포스퀘어 등과 같은 최근 가장 잘 나가는 회사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6년~2007년 사이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우 중요한 인재 2명이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구글과 아마존의 요직으로 이직을 하게 되는데, 오늘은 이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 플랫폼을 책임진 인재, 구글로 떠나다.

최근 구글의 안드로이드나 크롬 운영체제와 관련한 미래에 대한 발표를 하는 것을 보면 인도계의 똑똑한 임원이 2명의 창업자나 에릭 슈미트를 대신하여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바로 오늘 소개할 2명의 인재 중의 하나인 빅 군도트라(Vic Gundotra) 입니다.

군도트라는 1991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을 한 마이크로소프트 최고의 인재 중의 한명으로, 플랫폼 에반젤리즘(Platform Evangelism)을 총괄하는 매니저까지 승진합니다.  그의 역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API 와 플랫폼을 홍보하고, 특히 많은 개발자들에게 윈도와 관련한 여러 기술 및 제품들을 지원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북돋는 것이었는데, 특히 윈도 라이브 온라인 서비스와 관련한 전략을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2003년 군도트라는 테크놀로지 리뷰 매거진에서 전세계 최고의 젊은 혁신가 100명 중의 한명으로 선정될 정도로 전도유망한 평가를 받고 있었고,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를 책임진 닷넷 프레임웍(.NET Framework) 최고의 전문가로 전세계 닷넷 개발자들의 우상으로 부상합니다.

그러던 그가, 2007년 6월 전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구글로 자리를 옮기면서 충격파를 던집니다.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두고, 경쟁자 취업금지 조항 때문에 1년 여를 쉬고 나서 구글에서 새로운 미래를 펼쳐 나가게 되는데, 에릭 슈미트와 두 명의 창업자 모두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구글의 엔지니어링 부분 부사장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그가 총괄하고 있는 분야는 구글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과 오픈소셜(Open Social), 구글 가젯(Google Gadgets), 구글 기어스(Google Gears)를 포함한 40가지가 넘는 구글의 제품 API 들로 구글의 인터넷 운영체제 전반을 끌고 나가는 구글의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구글의 다른 대부분의 임원들이 초창기부터 구글에 관여한 것에 비해, 비교적 굴러온 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빅 군도트라의 현재 위상은 최소한 일반 대중에게는 사실 상 창업자들과 CEO를 제외하고는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이직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구글로의 파워시프트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구글의 미래의 얼굴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발표하게 될 크롬 운영체제나 구글 TV 프로젝트, 그리고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구글 게임스 역시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분야입니다.


윈도 서버 기술의 대가, 아마존에 둥지를 틀다.

브라이언 발렌타인은 1986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를 하여 일을 시작합니다.  그가 맡았던 일은 초창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메일과 익스체인지 서버를 담당하였고, 1998년부터 윈도 2000과 윈도 XP 의 개발에 깊숙히 관여하게 되는데, 윈도 운영체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윈도 코어 운영체제 분과(COSD, Core Operating System Division)의 총책임을 맡은 선임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특히 운영체제의 가장 핵심인 커널과 네트워킹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 관여하면서 윈도 XP에 이은 윈도 비스타의 개발에도 참여하지만, 2006년 전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합니다.

그가 처음 COSD 의 부사장 자리를 떠난다는 발표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할 때만 하더라도, 그가 마이크로소포트 내에서 뭔가 다른 프로젝트를 맡을 것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는 바로 그 다음 달 전격적으로 아마존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발표를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가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윈도 운영체제를 개발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설도 있고, 새로운 세계가 온다는 생각에 조금은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영입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가 윈도 2000, XP 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윈도 비스타 프로젝트를 총괄하다가 출시를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는 결정을 하게 되고, 또한 결과적으로 윈도 비스타가 대실패로 끝나면서 그의 결정에 대한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위해 그동안 이루어낸 업적은 그 어떤 현직 임원들보다 뛰어난 것들 이었습니다.

현재 그는 아마존의 전자상거래 플랫폼(E-Commerce Platform) 부분의 선임부사장으로 아마존의 미래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단순히 전자상거래 회사가 아닌 클라우드 서비스의 최강자 중의 하나로 자리를 굳히고, 웹 운영체제를 개발하여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제프 베조스의 야심 역시 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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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실패작, 윈도비스타 from Wikipedia.org


구글이 IPO 와 함께 승승장구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밖으로는 반독점법으로 고생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윈도 비스타라는 윈도 XP 이후 준비한 야심작의 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EU 와의 반독점법 소송, 그리고 한국정부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 반독점법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998년 미국정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를 하게 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브라우저 끼워팔기 였습니다.  이 사건은 2001년 11월 2일 미국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종결이 되었는데 (여러 주정부의 입장차이로 완전한 결정은 2004년으로 늦춰졌습니다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써드파티 회사들을 위해 자신들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유하고,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스템, 기록, 소스코드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는 3명의 패널을 지정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과도한 장벽을 칠 수 없도록 규제를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코드를 바꾸거나, 다른 소프트웨어를 같이 묶어파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제재를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유럽에서는 EU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사건에 대해 지속적인 소송을 진행하여, 결국 2004년 3월 $6억 130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몇몇 제품들에 대한 분리와 새로운 버젼의 윈도 XP 출시에 대한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분리대상이 되었던 것은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Windows Media Player)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위한 핵심요소 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2005년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3200만 달러 상당의 벌금과 함께,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 그리고 윈도 메신저(Windows Messenger)가 분리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이것을 포함하지 않는 버전의 윈도 XP를 내놓을 것을 명령하게 됩니다.  EU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윈도 메신저가 대상이 된 것에는 당시 중요하게 여겨졌던 메신저 싸움에서 네이트 온(Nate On)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구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윈도 비스타

운영체제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전반에 있어 절대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였지만, 인터넷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구글이라는 회사의 약진에 심기가 불편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끊임없이 구글이 진행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에 대항하는 마이크로소프트만의 서비스를 내놓는 노력을 합니다.  2005년에는 새로운 MSN 검색 서비스를 내놓게 되며, 이것이 향후 Live 검색을 거쳐 오늘날의 Bing 이라는 검색엔진으로 발돋움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는 여전히 구글과는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페이스북과 새로운 검색서비스를 같이 시작한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2006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애드센터(adCenter)라는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클릭당페이(pay per click) 광고를 위한 서비스로 구글의 광고 플랫폼을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코드플렉스(CodePlex)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위한 협업개발 사이트도 만들게 되는데, 이는 과거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얼마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경멸해 왔는지를 감안하면 정말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윈도 XP 이후 오랫동안 준비해온 윈도의 차기 버전이었던 윈도 비스타가 선을 보입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오피스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6을 같이 내놓았습니다.  윈도 비스타는 2001년에 발매된 윈도 XP 발표이후, 무려 6년에 가까운 시간의 공백을 딛고 내놓은 운영체제였지만, 역사상 가장 성공한 운영체제로 평가받은 윈도 XP 의 후광을 뛰어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18개월에 가까운 발매실적에도 윈도 비스타는 전체 판매대상의 8.8%에 설치되는 것에 그치는 참패를 하게 되며, 윈도 발매역사상 최초이자 최악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절치부심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7을 비교적 짧은 공백기간에 내놓으면서 실패를 만회하지만, 윈도 비스타의 실패는 천하의 마이크로소프트도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윈도 비스타는 어째서 실패했나?

그렇다면, 윈도 비스타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크게 실패를 하였을까요?  여러가지 원인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로, 윈도 비스타는 과거의 윈도 코드와 호환성에 상당한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윈도 XP 의 성공요인은 과거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과거에 작성한 애플리케이션이나 드라이버 등이 동작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는데 비해, 윈도 비스타는 베타 시절부터 특히 하드웨어 장치 드라이버들과의 문제를 많이 일으키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식버전을 출시할 때까지도 기존 드라이버의 5% 정도만 윈도 비스타에서 수정없이 쓸 수 있다고 하였고, 나머지 드라이버는 하드웨어 업체들이 윈도 비스타를 위해 다시 작성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윈도 비스타의 실패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윈도 XP 가 너무 성공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윈도 XP는 2001년 출시된 이후, 무려 6억 건이라는 판매실적을 올리면서, 전세계 운영체제 시장의 8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한 PC 운영체제 역사상 최고의 성공작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윈도 XP 를 불편없이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비스타가 성공을 하려면, XP 보다 훨씬 나은 어떤 이점을 제공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옮겨올 정도의 차별화를 비스타가 보여주는데 실패합니다.  보안을 강조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사용성이라는 측면에서 불편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보안의 강점이 상쇄된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윈도 비스타는 너무 느렸습니다.  특히 윈도 XP 를 설치했을 때에는 별 불편함이 없이 쓸 수 있었던 PC가 윈도 비스타를 설치한 뒤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려졌다는 경험담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사람들은 윈도 비스타를 채용하기를 꺼려하였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윈도 비스타의 실패를 부채질합니다.


잘 나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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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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