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연재에서 AT&T와 벨 연구소의 흥망성쇠와 트랜지스터에서 시작된 실리콘 밸리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지만, 벨 연구소의 역할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AT&T는 미국 전역의 전화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고, 벨 연구소는 최첨단 네트워크 기술을 개발하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벨 연구소의 반도체 연구자인 윌리엄 쇼클리의 서부로의 이동에서 탄생한 실리콘 밸리는 시대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당시 반도체는 주로 미사일 등의 제어장치에 사용됐던 까닭에 군사기술 관련 연구기관이 밀집된 서부에 자리잡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윌러엄 쇼클리의 8명의 제자들이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독립해 설립한 인텔은 훗날 PC의 핵심인 CPU를 생산하여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유닉스와 UC 버클리, 그리고 C언어

유닉스(Unix)는 교육 및 연구 기관에서 즐겨 사용되는 범용으로 여러 명이 동시에 시간을 나누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범용 운영체제이다. 1969년 벨 연구소 직원인 켄 톰슨(Ken Thompson),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 브라이언 커니건(Brian Kernighan), 더글러스 매클로이(Douglas McIlroy) 등은 다양한 시스템 사이에서 서로 이식할 수 있고, 다중 작업과 다중 사용자를 지원할 수 있는 운영체제를 설계하게 된다. 


유닉스 시스템은 일반 텍스트 파일, 명령행 인터프리터, 계층적인 파일 시스템, 장치 및 특정한 형식의 프로세스 간 통신을 파일로 취급하는 등 현대적인 운영체제의 모든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처음에는 CPU 칩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컴퓨터 친화적인 어셈블리 언어로 개발이 되었지만, 다양한 시스템에 쉽게 이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이 보다 읽기 쉽고, 고치기 쉬운 C 언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해서 새롭게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1973년에 새롭게 유닉스가 재탄생한다. C 언어를 처음으로 고안한 데니스 리치는 이후 브라이언 케미건과 함께 1972년 <The C Programming Language> 라는 책을 출간해서 C 언어를 일반에 소개하는데, 이 언어는 이후 전 세계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표준언어로 자리잡으면서 유닉스를 넘어서서 컴퓨터와 인간을 연결짓고 소통하도록 만드는 언어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유닉스 시스템은 다양한 운영체제의 시초가 되었는데,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채택이 되거나 상업용 운영체제를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발전시킨 여러 가지 운영체제로 향후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들이 BSD, 솔라리스(Solaris), HP-UX, AIX 등이 있으며, 애플의 OS X, iOS 등도 유닉스 기반의 Darwin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유닉스의 자손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한, 오픈소스 진영에서도 유닉스와 유사한 운영체제를 많이 만들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운영체제가 바로 리눅스(Linux)이다. 



리차드 스톨만과 리눅스


리눅스와 오픈소스 운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괴짜 천재로도 불리는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다. 리차드 스톨만은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처음 컴퓨터를 만난 것은 IBM 의 뉴욕 과학센터(New York Scientific Center)에서 포트란 언어로 수치해석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름방학 기간에 IBM의 일과 함께 록펠러 대학의 생물학과에서 실험실 조교로 자원봉사를 하였는데, 당시 그를 지도했던 지도교수는 그가 미래에 훌륭한 생물학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한 리처드 스톨만은 1학년을 마칠 때 이미 수학을 잘하는 학생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의 소문을 듣고 MIT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설득을 해서 인공지능 연구실의 프로그래머가 되도록 만든다. 생물학과 물리학, 수학, 그리고 컴퓨터 과학으로 연결되는 그의 커리어는 MIT의 노버트 위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MIT의 인공지능 연구실은 그를 해커의 사회로 이끌게 된다. 리차드 스톨만은 해커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컴퓨터 계정이름인 "rms"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용했는데, 최초의 해커사전(Hacker's Dictionary)에도 자신을 "Richard Stallman" 이라고 쓰지 말고 'rms'로 불러달라고 하였다. MIT의 일을 하면서도, 리차드 스톨만은 1974년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역시 물리학으로 MIT로 진학을 한 리차드 스톨만은, 학문과 프로그래밍 모두를 하기 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에 집중하기로 하고 MIT에서의 박사학위 과정을 포기한다. 대신 MIT AI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면서 여러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때 발표한 논문 중에는 아직도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것도 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리차드 스톨만이 주도했던 해커문화는 생각처럼 일반화되지 못했다. 그 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주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복사를 방지하고, 동시에 비슷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할 수 없도록 소스코드에 대한 저작권 및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대부분 복사와 재배포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라이센스 정책이 구성되었고, 이런 변화는 일부 소프트웨어 회사의 정책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변화는 리차드 스톨만과 함께 MIT에서 많은 일을 같이 했던 브루스터 칼(Brewster Kahle)이 미국 저작권법 개정에 1976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리차드 스톨만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는 강한 표현을 쓰며 사용자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행위라면서 강력히 반발한다. 또한 MIT 인공지능 연구실 역시 인공지능 언어인 LISP 기반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회사 설립사건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접근방식과 철학의 두 명의 연구자들의 벤처기업 설립으로 파가 갈리면서, 심각한 내분에 휩싸인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리차드 스톨만은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의 자유의지와 권리를 중시하고,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이웃들과 공유하고, 또한 사용자가 추가적인 연구나 에너지를 투입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신념에 입각하여 Free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 GNU 프로젝트를 1983년 9월 발표한다. 


1984년 2월 MIT를 그만 둔 리차드 스톨만은 GNU 프로젝트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1985년 GNU 선언(manifesto)를 통해 유닉스와 호환이 되는 공짜 운영체제인 GNU를 만드는 이유와 철학을 일반에 알리고, 곧 이어 비영리재단인 FSF(Free Software Foundation)를 설립해서 공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정신과 활약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역할을 자임하였다. 그는 재단으로부터 아무런 월급도 받지 않았으며, 새로운 문화와 철학을 알리기위해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을 펼치면서, 소프트웨어 부분에 적용할 새로운 라이센스인 GNU GPL(General Public License) 등을 발표한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이후 나타나게 되는 CCL(Creative Commons License)과 같은 다른 산업영역에서의 새로운 라이센스 정책을 포함하여, 공익와 사회적가치에 중점을 둔 새로운 철학 및 정책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이런 문화적인 운동과 함께 본인이 직접 프로그래머로서 GNU 운영체제를 이루는 텍스트 편집기(Emacs), 컴파일러(GCC), 디버거(gdb), 빌드도구(gmake) 등과 같은 가장 핵심적인 유틸리티들을 직접 작성하였다. 그의 이런 노력에 화답을 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은 의외로 미국이 아닌 핀란드에서 나타난다. 1991년 핀란드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는 GNU 개발도구를 이용해서 운영체제의 핵심인 리눅스 커널을 개발하는데, 그의 커널은 그동안 개발은 되었지만 많은 부분 문제가 있었던 GNU 프로젝트 커널을 대체하면서 실체화가 가능한 운영체제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운영체제 계보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리눅스(Linux)이다. 


리눅스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 무수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이다. 비록 그 자체가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도 가지지 못했고, 이를 이용해서 직접적인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나오지 못했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실제로 이와 연관된 사업규모는 따지지 못할 정도로 크다. IBM 은 리눅스를 주된 운영체제로 채택하면서 컴퓨터 하드웨어 주도의 기업에서 완전히 지식서비스 기반의 회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며, 그들의 서버는 최고의 리눅스 서버로 자리잡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오늘날 아이폰과 함께 전세계를 호령하는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비롯하여,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타이젠(Tizen), 그리고 최근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양대산맥인 우분투(Ubuntu)와 모질라의 파이어폭스(Firefox) 운영체제도 모두 리눅스를 조상으로 하여 파생된 것이다. 


...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C (programming language)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RIchard Stallman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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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받은 트랙백이 없고 ,


오늘의 IT 삼국지의 주인공으로는 IBM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화려하게 공룡으로서 애플 II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동시에 매킨토시를 완벽하게 제압하던 시절의 모습이 아니라 쇠락하는 공룡으로 변신한 IBM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빅 블루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우다

IBM 이라는 회사는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진정한 역사의 거인으로 기억되는 기업입니다.  흔히 그들의 파란색 로고를 빗대어 빅 블루(Big Blue)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하드웨어 사업을 통해 전세계를 장악하고, 메인프레임용 시장과 PC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와 관련한 모든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IBM의 앞날에 암운을 그리운 것은 바로 얄궂게도 자신들의 운영체제를 공급한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운영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아웃소싱했던 IBM은 이후 컴팩과 같은 IBM 클론 컴퓨터 벤더들의 성장과 표준 운영체제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겨주면서 급격히 영향력이 줄기 시작합니다.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OS/2가 시장에서 실패하면서 IBM은 사실상 운영체제 시장에서 손을 땝니다.  언제나 컴퓨터 업계에서 거인으로서 중심에 있었던 빅 블루가 신흥강자에게 권좌를 내주고 변방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치부심하던 IBM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로 찾아오게 됩니다.  운영체제에서는 실패했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엔터프라이즈 환경과 시장에 제대로 대처한다면 다시 한번 업계의 리더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이제는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금융권을 비롯한 거대고객들의 시장마저도 잃을 수 있었습니다.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와 클라이언트 컴퓨팅 환경, 그리고 웹 브라우저 마저도 완전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장악을 해 나가고 있었고, 반대로 서버와 엔터프라이즈 분야에서는 자바를 앞세운 신흥강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약진이 눈부셨습니다.  IBM이 발족해서 추진하던 웹 서버 시장 역시 시장에서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하면서, 이제 IBM의 완전한 추락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였습니다.


무법자 같은 리눅스, 그리고 오픈소스에 운명을 맡기다.

이 때 IBM은 기업의 운명을 걸고 회사의 전략을 완전히 변경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게 거대한 기업이 기업의 문화와 그동안의 관행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입니다.  IBM이 힘겹게 마이크로소프트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싸우고 있을 즈음, 세계에서는 리눅스가 인터넷 해커 커뮤니티에 등장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버그도 많고, 비즈니스 모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괴상한 운동(?)이 어느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모두들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IBM은 1998년부터 많은 인력들을 이용해서 리눅스를 포함한 각종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전체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연구를 시작한 것 만으로도 그간의 IBM의 폐쇄적 정책에 비추어보면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웹 서버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데, 당시 IBM이 밀고 있던 도미노(Domino)서버가 시장에서 실패하고 있었지만, 가까운 미래에 서버 분야에 있어서는 웹 서버 기술이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IBM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아파치를 이끌고 있던 브라이언 벨렌도프를 직접 만나서 IBM이 아파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합니다.  

당시만 해도 오픈소스 진영의 개발자들은 IBM 때문에 오픈소스의 정신이 무너질까 우려를 하였고, IBM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개발조직과 일하는 것이 법적/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시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양측은 합의를 하고 IBM의 참여를 허락합니다.  IBM은 비영리재단의 형식으로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을 설립함으로써 본격적인 오픈소스 웹 서버 개발에 들어갑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3개월 만에 IBM은 자사의 주력 WAS(Web Application Server)인 웹스피어(WebSphere) 제품군에 아파치를 도입하였고, 웹스피어는 시장의 환영을 받으며 순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치 프로젝트의 성공을 발판으로, IBM은 본격적으로 오픈소스를 자사의 핵심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당시 IBM의 상황은 낮은 하드웨어 가격으로 승부하는 델(Dell)과 같은 신흥 하드웨어 강자와 막강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사이에서 샌드위치와 같은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파치의 성공을 경험한 IBM은 과감하게 리눅스를 자사의 메인 성장동력으로 채택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리눅스는 작은 서버에서도 큰 무리가 없이 동작하였고, 무엇보다 클러스터링을 통해 확장하기가 용이했으며, 무료였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서버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리눅스라는 운영체제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안정화가 되가고 있었기 때문에, IBM은 운영체제 개발에 큰 리소스를 낭비하지 않고, 비즈니스 모델의 차별화를 위한 서비스 및 솔루션 개발 쪽으로 핵심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공룡의 문화가 바뀌다.

IBM이 리눅스와 운명을 같이하면서 변화한 것은 단순히 사업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던 문화와 프로세스도 IBM이라는 거대조직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면서 조직이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커뮤니티는 빠르고 투명한 의사소통과 개발의 반복과 테스트를 통한 업그레이드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일단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구성되면 메신저나 이메일을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사실 한국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에 이러한 의사소통의 어려움 문제도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그에 비해, 기업의 의사소통은 여러가지 이유로(정치적인 문제나 책임소재 등) 보다 공식적인 루트를 이용하고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책임을 면하기 위한 회피활동을 하기 십상입니다.  IBM에서 리눅스 개발그룹을 이끄는 댄 프라이(Dan Frye)에 따르면, 기업의 소통문화가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그것에 비해 비효율적이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채팅이나 게시판을 이용하는데 모두들 눈치를 보고, 과감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리눅스 그룹의 경우 사내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오로지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만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야 비로소 팀원들이 게시판과 채팅을 통한 활발한 의사소통을 시작했습니다.  

IBM이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또 한가지 배운 것이 소프트웨어의 설계 방식이 기존의 대기업이 가지고 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 입니다.  설계-구현-테스트-유지보수로 이어지는 기본 단계 자체는 동일하지만, 시간의 분배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설계보다는 구현-테스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설계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프로세스는 커다란 장점이 있었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특정 멤버가 코드를 올리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코드와 컴파일 결과가 날마다 발표되고 이를 묶어서 컴파일하고 테스트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동작합니다.  그리고, 제품의 출시라는 것이 명시적이라기 보다는 "출시 후에도 개발 중"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되지요 ...

이러한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효율성과 개방성은 IBM이라는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리눅스 개발팀에서 시작된 오픈소스 커뮤니티식의 개방형 의사소통 방식은 사내에서도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의 변화에 힘입어 IBM은 또 하나의 커다란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수 많은 지적재산을 독점소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윤을 얻는 대신, 품질을 향상시키고 성장을 촉진하는 쪽으로 많은 프로젝트들이 방향을 선회합니다.  IBM의 수많은 특허권이 yet2.com과 같은 기술거래기업을 통해 아웃소싱되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노우하우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면서 생태계를 같이 꾸려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산물 중의 하나가 developerWorks와 alphaWorks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IBM이 매주 발행하던 developerWorks와 alphaWorks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첨단을 달리는 소프트웨어 기술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동시에 실제로 이들을 마음대로 써볼 수 있었고 원한다면 사업화도 할 수 있었습니다.


수평적 협업의 기업으로의 변신

오픈소스 진영에 뛰어들기 이전만 하더라도 독점과 수직통합이라는 전통적인 기업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IBM 이라는 거대기업은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징과 수평적 협업이라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개방성에 의한 강한 성장동력이 기업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습니다.

IBM이 처음에 지적재산권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시기에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 층에서부터 엄청난 부담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그룹의 부회장이 이에 대한 감독 역할을 하면서 리눅스 운영위원회를 작동시켰으며, 매달 임원회의를 통해 진행상황을 평가했습니다.  몇 달이 지니자 모두들 신경을 덜 쓰기 시작했고, 오픈소스의 마법이 자연스럽게 사내문화로 흡수되었습니다.  이러한 IBM의 사례는 오픈소스 혁명이 단순한 사회현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가치창출을 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IBM의 성공사례는 단순히 역사적인 기록 또는 한 기업의 중흥의 역사로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철학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 사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웹 2.0을 다소 기술적인 외침으로 받아들이면서 성공을 논의하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주류사회에게는 많은 공부거리를 던져줍니다.  IBM이 최고경영층에서부터 이러한 문화적인 변화를 수용하면서 기업이 변태를 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 사회의 주류 층이 이런 개방과 참여, 그리고 내부조직화로 연계되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함의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웹 2.0 이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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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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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기업을 중심으로 훠이훠이 오다가 보니, 정말 중요한 인물의 등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빼놓고 왔습니다.  바로 개방방주라고도 할 수 있는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입니다.  비록 대단한 기업을 만들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지만 그가 주창한 철학과 실천은 세상의 규칙을 깨부수는 통렬한 시도였고, 무모해보였던 그의 시도가 이제는 모든 산업영역에 파급되고 있는 놀라운 변화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너무나 과소평가되고 있는 이름, 리차드 스톨만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무난한 학창시절, 대학에서 해커가 되다.

리차드 스톨만은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처음 컴퓨터를 만난 것은 IBM 의 뉴욕 과학센터(New York Scientific Center)에서 포트란 언어로 수치해석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서 입니다.  단 몇 주 만에 작업을 마친 그는, 나머지 시간을 텍스트 편집기를 만들면서 보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름방학 기간에는 IBM 의 일과 함께 록펠러 대학의 생물학과에서 실험실 조교로 자원봉사를 하였는데, 당시 그를 지도했던 지도교수는 그가 미래에 훌륭한 생물학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한 리처드 스톨만은 1학년을 마칠 때 이미 수학을 잘하는 학생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소문을 듣고 MIT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연구실에서는 그를 만나 설득해서 인공지능 연구실의 프로그래머가 되도록 만듭니다.  MIT의 인공지능 연구실은 그를 해커의 사회로 이끌게 됩니다.  리차드 스톨만은 해커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컴퓨터 계정이름인 "rms"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용했는데,  최초의 해커사전(Hacker's Dictionary)에도 자신을 "Richard Stallman" 이라고 쓰지 말고 'rms'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MIT의 일을 하면서도, 리차드 스톨만은 1974년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역시 물리학으로 MIT로 진학을 한 리차드 스톨만은, 학문과 프로그래밍 모두를 하기 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에 집중하기로 하고 MIT에서의 박사학위 과정은 포기합니다.  대신 MIT AI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 이때 발표한 논문 중에는 아직도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논문도 있습니다.


해커정신의 전파, 그리고 GNU 탄생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리차드 스톨만이 주도했던 해커 문화는 생각처럼 일반화되지 못했습니다.  그 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주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복사를 방지하고, 동시에 비슷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할 수 없도록 소스코드에 대한 저작권 및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대부분 복사와 재배포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라이센스 정책이 구성되었고, 이런 변화는 일부 소프트웨어 회사의 정책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정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변화는 리차드 스톨만과 함께 MIT 에서 많은 일을 같이 했던 Brewster Kahle 이 미국 저작권법 개정에 1976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리차드 스톨만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는 강한 표현을 쓰며 사용자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행위라면서 강력히 반발합니다.  또한 MIT AI 연구실 역시 인공지능 언어인 LISP 기반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회사 설립사건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접근방식과 철학의 두 명의 연구자들의 벤처기업 설립으로 파가 갈리면서, 심각한 내분에 휩싸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리차드 스톨만은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의 자유의지와 권리를 중시하고,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이웃들과 공유하고, 또한 사용자가 추가적인 연구나 에너지를 투입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신념에 입각하여 Free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 GNU 프로젝트를 1983년 9월 발표합니다.  


GNU, FSF(Free Software Foundation) 그리고 리눅스

1984년 2월 MIT 를 그만 둔 리차드 스톨만은 GNU 프로젝트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1985년 GNU 선언(manifesto)를 통해 유닉스와 호환이 되는 공짜 운영체제인 GNU를 만드는 이유와 철학을 일반에 알리고, 곧 이어 비영리재단인 FSF(Free Software Foundation)를 설립해서 공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정신과 활약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역할을 자임하였습니다.  그는 재단으로부터 아무런 월급도 받지 않았으며, 새로운 문화와 철학을 알리기위해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을 펼치면서, 소프트웨어 부분에 적용할 새로운 라이센스인 GNU GPL(General Public License) 등을 발표합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이후 나타나게 되는 CCL(Creative Commons License)과 같은 다른 산업영역에서의 새로운 라이센스 정책을 포함하여, 공익와 사회적가치에 중점을 둔 새로운 철학 및 정책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또한, 이런 문화적인 운동과 함께 본인이 직접 프로그래머로서 GNU 운영체제를 이루는 텍스트 편집기(Emacs), 컴파일러(GCC), 디버거(gdb), 빌드도구(gmake) 등과 같은 가장 핵심적인 유틸리티들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에 화답을 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은 의외로 미국이 아닌 핀란드에서 나타납니다.  1991년 핀란드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는 GNU 개발도구를 이용해서 운영체제의 핵심인 리눅스 커널을 개발합니다.  그의 커널은 그동안 개발은 되었지만 많은 부분 문제가 있었던 GNU 프로젝트 커널을 대체하면서 실체화가 가능한 운영체제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운영체제 계보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리눅스(Linux) 입니다.  


리눅스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 무수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입니다.  비록 그 자체가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도 가지지 못했고, 이를 이용해서 직접적인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나오지 못했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실제로 이와 연관된 사업규모는 따지지 못할 정도로 큽니다.  IBM 은 리눅스를 주된 운영체제로 채택하면서 거대한 공룡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회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며, 그들의 서버는 최고의 리눅스 서버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오늘날 아이폰과 함께 전세계를 호령하는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비롯하여, 노키아의 Ovi,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리모(Limo)에 이르기까지 모두 리눅스를 조상으로 하여 다르게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역사변화의 중심에는 해커의 전설로 남아있는 리차드 스톨만이라는 기인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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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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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CES 2009 최고의 깜짝스타가 된 것은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닌 PDA계의 올드보이인 팜(Palm) 이었습니다.  CES 때만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최근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것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본래 CES 같은 전시회에서 깜짝스타가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대부분의 경우 메이저 브랜드가 아닌 이상에는 전시회가 끝난 뒤에는 사업화를 실패하거나, 마케팅 및 영업 등 여러 요인으로 그냥 묻히는 경우가 태반이었거든요 ...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잘 알려진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인 엘리베이션 파트너스(Elevation Partners)로저 맥너미(Roger McNamee)가 2년전 팜에 자신의 펀드자산의 20%를 팜에 투자할 때만 해도, 기울어가는 회사에 엄청난 투자를 한 그의 투자가 결국에는 실패하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팜의 멋진 귀환은 최근 MC계의 올드비로 귀환한 국내의 최양략 열풍처럼 미국내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팜 프리를 분석하고, 자연스러운 엄청난 홍보효과도 얻고 있고, 그리고 소프트웨어나 기능 측면에서도 혁신적인 부분들이 워낙 많습니다. 

CES 이후에도 팜은 새로운 뉴스들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기계가 가지고 있는 GPS와 일정관리(캘린더) 기능, 그리고 전화번호부 기능을 자동으로 이용하여 전화기가 특정 미팅에 늦거나, 가고 있는 경우에 이를 메시지로 미팅 참석자들에게 알리는 기능이 추가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전화 사용자에게 이 내용을 알리고 수행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거기에 무엇보다도 기존의 팜 운영체제를 버리고, 리눅스를 채택하였으며 동시에 애플의 앱스토어에 대응하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지원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어 향후 애플 및 안드로이드 진영과의 한판 승부가 볼만해 졌습니다.

CES에서 공개되었던 팜 프리의 기능과 성능, 특히 아이폰과 대별되는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은 크기  아이폰에 비해 훨씬 작지만 스크린을 보고 조작하는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팜이 만들어낸 인터페이스의 효율성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키보드를 빼내도 그리 크지 않아서 휴대성이 뛰어납니다.

리눅스다 !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UI에는 PDA의 강자인 팜의 기술이 녹아있지만, 그들은 과감히 리눅스를 채택했습니다.  SQLlite가 빌트인 데이터베이스로 설치되어 있어, 개발자들이 매우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뛰어난 인터페이스와 애니메이션 기술  인터페이스와 각종 영상기술이 아이폰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메뉴바의 혁신  터치패드가 스크린 바로 밑에 1cm 조금 넘는 정도로 달려있는데, 메뉴바를 통해서 굉장히 쉬우면서도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구성했습니다.  간편하게 아래에서 꺼내서 사방으로 날려버릴 수 있으며, 수 많은 프로그램들을 쉽게 찾아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구글메일의 통합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과 구글메일은 자동으로 팜에서 통합관리 됩니다.  처음에 등록을 할 때 페이스북과 구글계정만 입력을 하면, 마치 이들의 모든 모바일 소프트웨어가 팜과 하나처럼 동작합니다. 

공식적인 앱 스토어와 함께, 다른 방법으로 소프트웨어 설치가 가능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애플처럼 앱 스토어만을 통해 프로그램을 로드하도록 폐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방법의 소프트웨어 구매와 설치가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비디오 한편 보시죠?  사실 CES에서 팜에 대해 아이폰 킬러다 뭐다 할때만 해도 정말 그런가보다 수준이었는데, 현재 미국에서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겁습니다.  국내에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고, 또한 저처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생각을 고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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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Dell)이라는 회사를 아십니까?  2005년까지 전세계 PC 시장 1위를 차지했었고, 현재까지도 미국 시장에서는 최대의 마켓 쉐어를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맨처음 온라인 매장만으로 가지고 택배 방식의 PC를 판매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성공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히 전세계에서 주문을 받아, 가장 원가가 싸고 품질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곳에서 생산/조달/조립을 하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PC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사업자 중의 하나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보다는 소위 Dell 2.0 이라고 불리우는 고객들의 참여를 바탕으로한 웹 2.0 정신의 경영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혁신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델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PC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던 Dell은 2006년 하반기 예상 밖으로 HP에게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고 맙니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에는 시장점유율이 3.3% 정도의 큰 차이로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잘나가던 Dell이 아성이 무너지는 사태를 경험하였습니다.

이렇게 위기를 맞은 델이 선택한 것은 창업자인 마이클 델(Michael Dell)의 경영일선으로의 복귀였고, 그는 곧바로 모든 전략을 수정하여 소비자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회사의 경영전략 전체를 새로짜는 혁신(Innovation)인 Dell 2.0을 탄생시킵니다.  Dell 2.0을 수행하는 최전선을 맡은 곳이 바로 아이디어 스톰(Idea Storm)스튜디오 델(Studio Dell) 입니다.  델의 이러한 전략은 2008년 PC 시장에서 바로 효과를 나타냅니다.  1분기 결과를 기준으로 미국 시장에서 델은 HP와의 격차를 6.4%로 크게 벌리면서 1위를 차지하였고, 세계 시장에서도 3.8%까지 뒤졌던 점유율 차이(1분기 기준)를 3.4%로 좁히는데 성공합니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전략이 미국 시장에 국한되어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느낌이지만, 반전의 계기는 마련된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 스톰은 델의 경영전략본부를 소수의 경영진 또는 기획실에서, 집단지성으로 대표되는 소비자들에게 옮기고, 이들로 하여금 경영혁신이 일어나도록 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멤버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으며, 이렇게 제시된 아이디어는 집단지성의 추천을 받아 시급성이 결정됩니다.  쉽게 어떤 아이디어 들이 올라왔는지 찾아볼 수 있으며, 이렇게 제시된 아이디어는 반드시 기제공(Already Offered), 구현(Implemented), 진행중(In Progress), 부분적인 구현(Partially Implemented), 리뷰됨(Reviewed), 리뷰중(Under Review)의 단계 중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보고를 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고객들의 소중한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현재 인기있는 아이디어는 "검색 툴바를 미리 설치하지 말라"는 것이군요 ..,  아마도 많은 사용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봅니다.  그럼 그동안의 최고로 꼽혔던 아이디어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놀랍게도 11만 3천표를 획득한 "오픈오피스를 미리 설치해서 출시하고 MS Works를 들어내라"는 아이디어가 1위, "미리 파이어폭스를 설치하라"는 것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다수의 리눅스를 미리 설치한 하드웨어 관련 아이디어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중에서 리눅스를 미리 설치하는 것을 제외한 오픈오피스나 파이어폭스를 미리 공장에서 설치해서 나오는 것은 무리가 있겠죠?  하지만 리눅스의 경우에는 상당부분 제품에 반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이디어가 제공된 것을 구현한 것 중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우분투 리눅스가 설치된 델 PC의 판매입니다.  전체적인 대세가 느껴지는 군요 ...  MS가 최근 독과점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상이 우연은 아닌 듯 합니다.

아이디어 스톰이 소비자 경영시대를 열었다면, 스튜디오 델은 유튜브를 델에 가지고 왔습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서 델은 다양한 기술적인 팁과 고급사용자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응용서비스 등에 대한 동영상 강의나 팁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초 각 개인의 경험이나 기술을 이용한 영상 등에 대한 UCC가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는 아이디어 스톰과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의도는 좋았고 여러 사용자들이 유용한 동영상 팁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괜찮아 보입니다. 

델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잘 먹힐지는 사실 아직 장담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방식의 경영을 시도하고 있는 것 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면서, 지속적인 혁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니까요 ...   몇몇의 기획팀, 아니 더 심하게는 한 두사람의 전횡으로 거대한 기업이 좌지우지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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