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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 페이지(좌)와 세르게이 브린(우) from kasun04.wordpress.com


IT 삼국지, 오늘은 드디어 두 명의 천재가 만나는 이야기 입니다.  


두 천재의 조우

매릴랜드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수석으로 졸업을 한 세르게이 브린은 1993년 미국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스탠포드 대학의 컴퓨터 과학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였습니다.  활달한 성격과 천재적인 두뇌로 많은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는 리더로 자리잡고 있었던 세르게이 브린에게 1995년 미시건 대학의 또 다른 천재가 스탠포드 대학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레리 페이지 입니다.  나이는 동갑나기이지만, 대학원에서는 세르게이 브린이 선배인 셈입니다.

세르게이 브린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래리 페이지를 만나고는 정말 마음에 들지않는 라이벌이 나타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언제나 남들 앞에 나서서 리딩을 하는 외향적인 세르게이 브린에 비해, 래리 페이지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매우 치열하고 토론을 할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래리 페이지에게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친구들이나 선후배와는 다른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전공과목 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철학과 문화 등에 이르는 다방면의 지식에 대한 토론을 날을 지새기 일쑤 였습니다.  둘이서 격론을 시작하면, 주위의 동료들은 이들을 피해다닐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었고, 이런 토론과 다툼을 지속하면서 두 사람은 어느 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soul-mate)로 느껴질 정도의 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래리 페이지의 프로젝트에 세르게이 브린이 생명을 불어넣다.

많은 대학원들과 마찬가지로 스탠포드 대학에도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웹 사이트를 서버에 긁어모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인터넷의 크기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1년이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세르게이 브린은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 것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좋은 논문은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이라는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을 웹 페이지의 랭킹을 매기는 데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특정 사이트가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백링크(BackLinks)를 조사하여, 각각의 웹 페이지가 얼마나 많은 사이트에 링크되었는지를 알아내고, 이것을 기본으로 랭킹을 매기자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이 프로젝트를 웹 사이트의 링크를 역으로 추적한다는 의미의 백럽(BackRub)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세르게이 브린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래리 페이지가 구현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세르게이 브린이 도움을 주면서 프로젝트에 조금씩 관여를 하다가, 어느 덧 둘이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기본적으로 전세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웹 페이지들을 찾아내서 이를 끌고 들어오는 소프트웨어 로봇(크롤러, crawler 라고 합니다)과 이를 관리하는 서버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의 크기가 광범위해지자, 스탠포드 대학의 컴퓨터 시스템과 네트워크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와 라지브 모트와니 교수 등의 지원으로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1996년부터 스탠포드 대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된 이들의 검색 서비스는 학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원의 학생으로서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없었던 그들은 효율적인 분산처리를 위해 CPU와 메인보드 등을 구해서 간단히 인터넷 서버를 구축하고, 운영체제도 무료인 리눅스를 선택하는 등의 고육지책을 선택하였는데 어찌보면 이런 환경이 오늘날의 구글 데이터 센터를 있게 만든 기술력 축적을 유도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넉넉하고 값비싼 서버와 소프트웨어를 마음껏 사용해서 서비스를 구축했더라면 현재의 구글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글 초창기 서버, 학교에서 남는 CPU와 보드를 주워다가 케이스는 레고로 조립했다 


구글의 탄생, 전세계를 담아라 ...

초창기 백럽(BackRub) 검색엔진 기술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알고리즘이었기에 페이지랭크(PageRank)로 명명된 이 알고리즘은 이들이 논문을 내기로 합의한 1998년 1월 이전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BackRub 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이용하기로 결심하는데, 동료 중의 하나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골(GooGol) 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데이터 검색을 한다는 이미지를 주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아쉽게도 도메인이 선점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대신 이용한 도메인이 구글(Google)입니다.  구골보다 발음하기도 쉽고, 창조적인 느낌도 나는 이름이었기에 모두들 구글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였고, 서비스는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도메인을 이용하여, http://google.stanford.edu 에 접속하도록 하였는데, 하루 접속횟수가 1만 건을 넘어가면서 학교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학교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키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 이상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이 검색 서비스를 외부에 팔아넘기기로 합의하고 원매자를 찾아 나섭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 따르면, 당시만 하더라도 100만 달러 정도면 구글 서비스를 팔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검색엔진 부분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졌던 알타비스타(altavista)와 야후도 접촉했지만, 이들이 개발한 서비스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었습니다.  그 밖에도 검색에 관심을 가질만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을 접촉했으나 번번히 거절의 쓴 맛을 보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들이 만든 서비스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 체리턴은 이들의 창업을 도와주기로 하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눈에 가치를 알아본 엔젤 투자자와의 만남

데이비드 체리턴이 소개한 사람 중에서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은 한 눈에 이들의 서비스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회사인 구글에게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에서 끊어 줍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는 자신감을 불러넣어 주었고, 자신에게도 엄청난 부를 가져오게 만듭니다.

벡톨샤임은 지난 IT 삼국지에서 소개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공동창업한 인물로 이미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고, 구글에 투자할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Cisco)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직관은 검색이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자처했던 야후나 알타비스타의 전문가들이나 경영진들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세상을 바꿀 힘을 그는 느꼈던 것입니다.

앤디의 10만 달러 수표를 받아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포드 대학교 인근의 한 차고를 사무실로 빌려서 사업을 시작합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렇게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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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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