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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II, 새로운 세상을 열다.

스티브 잡스의 직관과 추진력, 스티브 워즈니액이라는 걸출한 엔지니어, 그리고 마이크 마큘라라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볼 줄 알았던 젊은 엔젤 투자자와 경영능력, 마지막으로 레지스 매키너라는 당대 최고의 마케터가 같이 뭉친 애플 II 는 세상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당대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던 IBM의 CEO인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은 전 세계에서 새로운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매년 5대 정도면 충분하다는 논리를 폈고, Altair 8800 이 나오면서 개인용 컴퓨터가 가능성을 비추면서 젊은 사업가들이 세상이 바꿀 것이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할 때에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여겼습니다.  또한, IBM과 함께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DEC의 CEO인 켄 올슨(Ken Olsen) 같은 사람은 가정에 어째서 컴퓨터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면서 PC 사업을 쓸데없는 사업 정도로 여겼습니다.  애플을 비롯한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나은 기술인력과 네트워크, 자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했습니다.  결국 애플 II 의 대성공으로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IBM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DEC는 결국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에는 회사가 매각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애플 컴퓨터 역시 스티브 잡스가 아닌 스티브 워즈니액의 기획의 전권을 쥔 엔지니어 마인드로 접근했다면 비슷한 결과를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아타리 컴퓨터에서 여러 작업을 하면서 컴퓨터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며, 게임을 비롯한 여러가지 용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사용하기 편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으며, 마이크 마큘라나 레지스 매키너와 같은 동료들도 그런 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컴퓨터 회사들과 차별화를 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런 사용자 편의적이고 즐거운 인생에 도움을 주는 도구라는 개념은 애플의 역사를 타고 도도히 이어져서 현재의 애플 컴퓨터가 만드는 제품들도 잘 살펴보면 개인의 인생과 생활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철학들이 담겨져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플 II의 성공을 이끈 킬러앱, 비지캘크(VIsiCalc)

애플 II의 성공에는 물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이라는 천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또다른 숨은 장본인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댄 브리클린(Dan Bricklin)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댄 브리클린과 밥 프랭크스톤(Bob Frankston)이 공동 개발한 비지캘크(VisiCalc)는 컴퓨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 입니다.  이 소프트웨어 하나로 애플 II는 단순한 가정용 컴퓨터 기기를 너머서 기업에서도 꼭 필요한 컴퓨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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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하버드 MBA 과정에 있던 댄 브리클린은 전통적인 종이 스프레드 쉬트를 이용하여 교수가 강의를 할 때, 교수가 하나의 셀에서 실수를 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모든 셀의 값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훨씬 생산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든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실행력이 있어야 하는 법 ...  브리클린은 베테랑 프로그래머인 밥 프랭스턴을 고용합니다.  당시 컴퓨터가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을 수소문하는데, 이 때 간신히 구할 수 있었던 컴퓨터가 바로 애플 II 였습니다.  애플 II에는 당시 정수베이직(Integer Basic)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밥 프랭스턴은 이 언어를 이용해서 데모 프로그램을 구현합니다. 

브리클린에게 애플 II를 빌려준 사람은 Personal Software사의 댄 필스트라(Dan Fylstra) 였습니다.  그 역시 애플 II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컴퓨터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에게 자사의 체스 프로그램을 애플 II 용으로 포팅하겠다고 하고 매우 싸게 애플 II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지캘크가 애플 II용으로 개발된 것에는 이렇게 대단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댄 필스트라는 브리클린과 밥 프랭스턴이 구현한 데모를 보고 즉시 제품개발 계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비지캘크를 발표한 Software Arts 입니다.  

비지캘크는 소프트웨어 역사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기록한 제품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자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입니다.  비지캘크가 정형화한 스프레드 쉬트의 형태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애플 II는 하드웨어 사양에 있어, 폭으로 글자를 40자(40 컬럼)만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좌우폭의 한계 때문에, 비지캘크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었는데, 애플에서는 이를 80컬럼으로 늘리는 주변장치 카드도 판매하였는데 이 카드의 판매량도 비지캘크로 인해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비지캘크는 1979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는데, 100 달러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립니다.  소프트웨어의 판매가 급성장하자, 애플 II도 번들 전략을 이용해서 같이 성장하였습니다.  수십 만대의 애플 II 컴퓨터들이 단지 비지캘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팔리게 됩니다.  

비지캘크의 성공은 또다른 업무영 소프트웨어들의 발전을 자극하는데, 그 유명한 애쉬턴테이트사의 업무용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인 디베이스(dBase)와 워드 프로세서인 워드스타(WordStar) 등이 PC 용으로 개발되어 판매가 되었고, PC가 바야흐로 사무자동화(OA, Office Automation)의 첨병으로 대접받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최초의 성공자, 그러나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한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댄 브리클린은 아담 오즈본(Adam Osborne)의 White Elephant 상을 수상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비지캘크의 성공신화는  IBM PC의 등장과 함께 로터스의 1-2-3가 나오면서 저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더해 동업자였던 Personal Software에서 1983년 법적 분쟁까지 겪으면서 결국 Software Arts는 로터스에 매각이 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특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재도 소프트웨어 부분의 특허는 쉽지가 않습니다). 

비지캘크는 사무혁명을 일으킨 소프트웨어이자, 기업의 OA(Office Automation)라는 것을 처음으로 대중화하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컴퓨터를 일종의 기계로 바라보던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도 비지캘크의 공입니다.  애플 II는 비지캘크를 무기로 당시 난립하고 있던 가정용 PC 시장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애플도 대단히 운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댄 브리클린이 비지캘크를 개발할 때, 애플 II 컴퓨터가 아니라 당시 경쟁을 하고 있는 라디오쉑(RadioShack)의 TRS-80이나 코머도어 같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면 PC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을 테니까요 ...

그런데, IBM PC의 등장과 함께 시장을 지배하던 로터스 1-2-3 역시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현재 잘 나가고 있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변화에 대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혁신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긴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 법입니다.


애플 II의 또 하나의 성공전략, 게임과 교육

애플 II의 성공에 직장에서는 비지캘크가 큰 역할을 했다면, 가정에 보급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게임과 교육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게임회사에 다녔고,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이 개발한 정수 BASIC을 게임 BASIC이라고 부를 정도로 게임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해상도 그래픽을 지원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당시 경쟁대상이었던 어떤 컴퓨터 보다도 게임을 지원하기 위한 여건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애플 II 는 다른 컴퓨터와는 달리 RF 모듈레이터라는 것이 있어서 컬러 TV에 연결이 가능해서 컬러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필자 역시 처음 애플 II+ 컴퓨터를 구매했을 때, 전용 모니터를 사지않고 TV를 연결해서 이용했었는데, 컬러 TV에 연결해서 즐기던 게임들은 다른 어떤 PC들보다 우수하고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지캘크를 통해 사무실을 장악한 애플 II가 또 하나의 거대한 바람을 일으킨 시장은 교육시장이었습니다.  애플 II는 아이들의 학습도구로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대규모 캠페인을 이용해서 학생들이 미래를 위해 컴퓨터 한대 정도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특히 캘리포니아주 모든 학겨에 애플 II 컴퓨터를 한 대씩 무료로 기증하는 과감한 행보와 함께, 광고로 애플 II 컴퓨터로 학교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컴퓨터 교육과정이 정규과정으로 편성이 되면서,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더욱 익숙했던 애플 II는 자연스럽게 다른 경쟁 컴퓨터들을 제치고 부모들이 당시로서는 거액의 돈을 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집에 컴퓨터를 한 대씩 장만하는 투자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렇게 애플 II 가 급속도로 가정으로 보급되면서, 당시 큰 인기를 끌던 가정용 게임기가 우수한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를 통해 붕괴되는등 만만치 않은 산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컴퓨터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프린터도 판매가 되면서 EPSON 등과 같은 라인 프린터 회사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또한 애플 II 의 성공에 자극받아서 많은 수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사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코모도어 64라는 제품을 앞세웠던 코모도어사는 1700~2500만대 정도의 컴퓨터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결국 IBM 이라는 거인이 PC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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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애플의 대성공은 길게 보면, 초창기 PC 시장을 주도하면서 전세계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애플 II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애플 II의 성공에는 물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이라는 천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실제로 PC라는 것의 대성공을 이끈 숨은 장본인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댄 브리클린(Dan Bricklin)입니다.

댄 브리클린과 밥 프랭크스톤(Bob Frankston)이 공동 개발한 비지캘크(VisiCalc)는 컴퓨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 입니다.  이 소프트웨어 하나로 애플 II는 단순한 가정용 컴퓨터 기기를 너머서 기업에서도 꼭 필요한 컴퓨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의 실수를 보고 시작된 아이디어

1978년 하버드 MBA 과정에 있던 댄 브리클린은 전통적인 종이 스프레드 쉬트를 이용하여 교수가 강의를 할 때, 교수가 하나의 셀에서 실수를 한 것을 발견했는데 이를 고치기 위해서 모든 셀의 값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훨씬 생산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든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실행력이 있어야 하는 법 ...  브리클린은 베테랑 프로그래머인 밥 프랭스턴을 고용합니다.  당시 컴퓨터가 없었던 주변에서 PC를 수소문하는데, 간신히 구할 수 있었던 컴퓨터가 바로 애플 II 였습니다.  애플 II에는 당시 정수베이직(Integer Basic)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밥 프랭스턴은 이 언어를 이용해서 데모 프로그램을 구현합니다.

브리클린에게 애플 II를 빌려준 사람은 Personal Software사의 댄 필스트라(Dan Fylstra) 였습니다.  그 역시 애플 II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컴퓨터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에게 자사의 체스 프로그램을 애플 II 용으로 포팅하겠다고 하고 매우 싸게 애플 II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애플 II용으로 개발된 것에는 이렇게 대단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댄 필스트라는 브리클린과 밥 프랭스턴이 구현한 데모를 보고 즉시 제품개발 계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비지캘크를 발표한 Software Arts 입니다.


소프트웨어 역사의 한획을 긋다.

비지캘크는 소프트웨어 역사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기록한 제품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자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비지캘크가 정형화한 스프레드 쉬트의 형태는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애플 II는 하드웨어 사양에 있어, 폭으로 글자를 40자(40 컬럼)만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좌우폭의 한계 때문에, 비지캘크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애플에서는 이를 80컬럼으로 늘리는 주변장치 카드를 판매하였는데 이 카드의 판매량도 비지캘크로 인해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비지캘크는 1979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는데, 100 달러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립니다.  소프트웨어의 판매가 급성장하자, 애플 II도 번들 전략을 이용해서 같이 성장하였습니다.  수십 만대의 애플 II 컴퓨터들이 단지 비지캘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팔리게 됩니다. 


최초의 성공자, 그러나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하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댄 브리클린은 아담 오즈본(Adam Osborne)에게서 White Elephant 상을 수상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비지캘크의 성공신화는  IBM PC의 등장과 함께 로터스의 1-2-3가 나오면서 저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더해 동업자였던 Personal Software에서 1983년 법적 분쟁까지 겪으면서 로터스에게 비지캘크를 판매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비지캘크라는 소프트웨어는 그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특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Software Arts는 로터스에 매각이 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비지캘크는 사무혁명을 일으킨 소프트웨어이자, 기업의 OA(Office Automation)를 일으키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컴퓨터를 일종의 기계로 바라보던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도 비지캘크의 공입니다.  애플 II는 당시 난립하고 있던 가정용 PC 시장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애플도 대단히 운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댄 브리클린이 비지캘크를 개발할 때, 애플 II 컴퓨터가 아닌 TRS-80이나 코머도어같은 당시 애플 II와 경쟁하던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면 PC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을 테니까요 ...

그럼에도 현재 이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판도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현재 잘 나가고 있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변화에 대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혁신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긴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 법입니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 VisiCalc
The First Spreadsheet - VisiCalc - Dan Bricklin and Bob Frankston By Mary B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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