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스케이프와 야후!에서 시작한 닷컴 버블은 전자상거래의 대표적인 기업인 이베이와 아마존의 등장으로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인터넷이 부상하는 것을 보면서 커다란 사업기회를 직감한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구상하면서, 인터넷에서 판매하기 좋은 아이템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베조스가 수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아마존이 있게 만든 책이었다. 그는 수백만권의 책이 있는 서점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초대형 가상서점인 아마존을 1995년에 설립하게 된다. 그에 비해 이베이를 창업한 피에르 오미디어(Pierre Omidyar)는 실리콘 밸리에 있던 꿈많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날의 이베이가 되었다. 

베조스와 오미디어는 공통적으로 인터넷을 사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성향과 일하는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베조스는 사업계획과 시장조사 등을 성실하게 수행한 반면, 오미디어는 사업계획서도 없었고 시장조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보여주고 이를 사업화하는 모든 단계를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미디어는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면 아주 효율적인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일정한 사람들이 모여 경쟁하는 시장을 만들면 사업이 될 거라고 믿었고, 특히 인터넷 상의 경매시장이 전통적인 경매시장보다 공정하고 접근성이 높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사이트를 구축하고, 주말에 간단한 작업을 통해 서비스를 실제로 오픈했다. 처음 사이트를 찾은 사람들이 발견한 물건들은 정말 하찮다고 할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었다. 그렇지만, 곧 오미디어의 사이트는 몇 달 만에 수천 달러의 수수료를 벌었고,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은 단 한 달만에 인터넷에 몰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서 전 직원이 주문을 받은 책들을 전세계 45개국에 선적을 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성공적인 출발을 하였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들이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찍이 역사가 없었던 방식으로, 또한 그전에 보았던 다른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의 상당수는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들 두 기업의 엄청난 성공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과도한 금융열풍이 동반하게 된다. 

아마존은 1997년 5월에 상장했지만, 수익은 거의 없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그래봐야 서점이고 수익도 별로 나지 않고 있으니 결국 투자금을 다 쓰고 나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새로운 모델로 여전히 고속성장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갔다. 매출이 꾸준히 올랐지만, 적자는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지속적으로 내리면서 덩치를 키워갔다. 이런 방식으로 회사가 커질 수는 있지만, 보통의 사업가라면 가격과 큰 이윤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배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베조스 만의 방식이다. 그는 당시의 폭풍과도 같은 변화의 시기를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와 비슷하게 생각을 했고, 지속적으로 적자를 확대하더라도 고속성장을 위해 이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빨리, 크게 성장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서 고객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는데, 개인정보와 신용카드의 정보를 가진 아마존을 고객들이 신뢰하도록 하는데 역량을 집중을 하였고, 어느 곳보다 안전한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제공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존이 채택한 기술이 캘리포니아의 세 명의 수학자들이 제시한 PKI(Public Key Infrastructure, 공개키 기반구조, 암호화와 보안과 관련한 중요한 기반기술)이다. 사실 PKI라는 기술이 오늘날의 전자상거래를 활성화시킨 결정적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인터넷 산업의 성장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고 월스트리트에서의 반응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오미디어의 이베이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이베이에 대한 당시 월스트리트의 평가는 아예 이런 형태의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1998년 봄 오미디어와 투자자들은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매그 휘트먼을 영입하였다. 휘트먼은 일단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데 주력했다. 이베이는 1998년에 기업공개를 하였는데, 마치 월스트리트의 부정적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공개 당일 주가가 3배 이상 뛰어오르는 저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아마존과 이베이의 주식이 크게 성공하면서, 닷컴 버블은 더욱 극심하게 부풀어 오르게 되었다. 주식상장은 이들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미국전역의 인재들이 실리콘 밸리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서부개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실리콘 밸리는 더 이상 인력이나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라는 환상이 전 세계를 휘감고 있었으며, 주식의 대중화는 이러한 열풍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상열기에 의한 비정상적인 소비가 실리콘 밸리에 횡행했고, 파티와 TV광고 등을 통해 투자된 자금을 흥청망청 소진되는 사례도 늘어만 갔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도 없이 아무나 투자를 받았으며, 이들은 대부분 투자금만 까먹다가 결국에는 파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은 이런 닷컴 버블을 몰랐을까? 불안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버블의 최후는 수 많은 사람들의 해고사태였다. 닷컴 버블은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연방은행(FRB)에서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면서 꺼지게 된다. 그 와중에 아마존 역시 부도직전에 몰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13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생존에 집중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버블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인터넷 혁명은 보다 건전하게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닷컴 기업이 많이 사라졌지만, 일부의 기업들은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큰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바뀌었다. 아마존과 이베이는 이익 측면에서도 최고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구글이라는 대단한 기업이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면서 당시의 혁명적 변화가 완전히 거품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닷컴 버블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닷컴 버블 당시 이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인텔의 앤디 그로브(Andy Grove)에 따르면 당시의 버블로 인해 수십 년은 걸렸어야 할 광섬유 인프라가 단 수년 만에 깔리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회사가 망했지만, 많은 기업이 새로 만들어졌고 내성도 훨씬 좋아졌으며 인터넷 경제도 건전하게 변하게 된 사건이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이들의 부침에 힘입어 어찌보면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이 탄생하였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경험이 쌓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는 밑거름을 과거의 실패에서 얻게 되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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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를 처음으로 열어젖힌 것이 넷스케이프와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크라면, 그 뒤를 이어 커다란 대박을 터뜨린 첫번 째 기업은 바로 야후! 일 것입니다.  오늘은 야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후!의 탄생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빗 파일로(David Filo)는 1994년 초 모자이크를 이용해서 전세계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생각에 수많은 웹 사이트들을 종류에 따라 분류해서 목록을 만들게 되는데, 이 목록을 하이퍼링크의 형태로 웹에 공개를 합니다.  이것이 훗날 야후!가 되는 "Jerry and David's Guide to the World Wide Web" 입니다.  같은 해 4월 이들은 이 웹사이트를 "Yahoo!"로 개명하면서 처음으로 인터넷 포탈 사업을 시작하게 되며, 1995년 1월 18일 역사적인 "yahoo.com" 도메인을 획득합니다.  1995년 3월 1일 정식으로 회사를 창업한 이들은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정보를 찾는 사람들의 처음 기착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글자 그대로 인터넷으로 들어가기 위한 포탈(portal, 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인터넷 접속량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때 구원의 손을 처음 내민 사람이 바로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센입니다.  1994년 투자를 받아 자금의 여유도 있었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인터넷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넷스케이프 입장에서는 야후!와 같이 인터넷 자체를 번성시켜줄 서비스 사업자가 필요하였고, 야후! 역시 늘어나는 인터넷 접속량을 넷스케이프 본사의 대형서버가 직접 담당해 주면서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거관계도 금방 깨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야후! 가 1995년 4월 5일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였던 세코야 캐피탈(Sequoia Capital)에게서 거액의 투자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투자를 담당했던 사람이 유명한 벤처 캐피탈리스트인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입니다.  그에 비해 넷스케이프에 투자를 한 회사는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로 세코야 캐피탈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벤처 캐피탈로, 이들의 라이벌 의식은 정말로 대단해서, 절대로 상대방이 투자한 회사에게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 불문율을 깨는 회사가 나옵니다).  세코야의 투자를 받은 야후! 는 넷스케이프와의 협력관 계를 정리하고, 독자적인 서비스에 나섭니다.  뒤를 이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125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1.7%의 주식을 취득하는 등 급속도로 회사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닷컴 버블의 시작

야후! 는 창업한지 1년 만인 1996년 4월 12일, 아무런 수익모델도 없이 나스닥 상장을 시도합니다.  물론 그전에 짐 클라크가 넷스케이프를 통해 1995년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인터넷 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상한가를 치고 있었기에 이 시도는 성공을 하게 됩니다.  단숨에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야후의 창업자들은  "웹 포탈(web portal) = 야후!" 라는 이미지를 심으면서, 부침이 심했던 다른 포탈 또는 검색 서비스들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입지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닷컴 열풍의 원조였던 넷스케이프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의 대결에서 참패를 하면서 급격하게 회사의 가치가 하락하고, 닷컴 회사들의 수익모델이 없다는 비판과 함께 비관적인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후!는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브랜딩 전략이 먹혀들면서 배너를 중심으로한 광고모델로 인터넷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합니다.  1999년 6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닷컴 회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닷컴 회사의 마지막 자존심으로서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닷컴 회사 대부분의 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급작스럽게 닷컴 버블이 빠지기 시작하고, 야후! 의 광고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이들의 퇴장으로 야후! 역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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