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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퀸즈 대학의 석좌교수인 앤드류 해커(Andrew Hacker)와 뉴욕타임즈의 클라우디아 드레퍼스(Claudia Dreifus)가 최근 "Higher Education? How Colleges Are Wasting Our Money and Failing Our Kids---and What We Can Do About It" 라는 논란의 중심이 되는 책을 내놓았다. 제목을 해석하자면 "고등교육? 어떻게 대학이 우리의 돈을 낭비하고 아이들을 실패자로 만드는가 --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도가 되는데, 제목자체가 상당히 논란거리이다.

두 공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학의 존재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대학이 "고등교육"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두 단어인 "고등(higher)"과 "교육(education)" 모두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이 가르치는 것과 인문학 중심의 소양교육을 포함한 수련보다는 모든 교수 인력들을 연구중심으로 몰고 가고 있는데, 어떤 교수가 가르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고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그는 테뉴어(tenure)라고 불리는 정년보장에 대한 시스템에도 반기를 든다. 물론 이 제도가 지식과 지성에 대한 자유를 지켜주며, 교수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좋은 취지를 가진 것이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교수들이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시간을 덜 쓰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더 높은 등록금을 낼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대학에서 별로 배우지도 못하고 사회에 커다란 기여도 하고 있지 못하며, 시간만 축내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언론들도 칼텍이나 MIT, 스탠포드 대학 등의 교수들이 내놓은 연구논문이나 그들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초점을 맞출 뿐, 학부생이나 대학원 생들에 대한 교육의 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학생들의 고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학을 왜 갈까?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이름있는 대학을 가서 내가 어디를 졸업했다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개인 브랜드의 강화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말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서 일 것이다.  첫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은 사실 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어느 정도 감내가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다니는 또는 졸업한 학교의 브랜드가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랭킹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말로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을 원할 것이다.  

오레곤 주에 있는 린필드 대학(Linfiedl College)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는 매우 작은 도시에 위치하였지만, 이곳의 교수들은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정말 좋은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교육이 정말 좋은 몇몇 작은 대학교들이 있다. 이 학교의 교수들은 도대체 뭐가 다르길래 이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는 것일까?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연구에 대한 부담을 전혀 지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고,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어떤 교수들은 자신의 시간을 거의 대부분 연구를 하는데 소모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은 뒷전이다.  이런 경우에 학생들의 등록금은 결국 교수들의 연구지원을 하는데 쓰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연구소를 만들어야지 어째서 대학에서 이런 것을 지원해야 하는가?  이것은 어찌보면 핵심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연구중심의 풍토가 지나친 연구로 이어지고, 사회의 효율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연구성과 위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으니, 대학들은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만 강요하고, 교수들은 여기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논문들이 나오고 있으니, 다른 학교 교수들보다 더 많은 논문을 써야하고, 이런 부담의 악순환은 미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학시스템과 교수들도 병들게 만들고 있다.  과연 그렇게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인가?  실제로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정말 학문적인 열정을 가지고 수행하는 연구의 적정선은 어디인가?  현재의 시스템은 대학이라는 곳 전체의 사회적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뉴어와 논문, 그리고 교육의 상관관계

대학교수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인생에 있어서의 관문으로 테뉴어 (우리말로는 영년교수직) 심사라는 것이 있다.  한 마디로 교수의 정년을 보장하는 것인데, 보통 우수한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이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수임용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 심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탈락하면 매해 평가를 받아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테뉴어 심사 이전의 젊은 교수들이 유수의 논문지에 논문을 내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젊은 교수들은 이미 자발성을 잃은 셈이다.  모든 것은 테뉴어를 통과하기 위한 실적 쌓기에 집중하라고 시스템은 요구하고 있고, 이는 지성의 자유를 억압한다.  상아탑의 자율성을 위해 도입한 테뉴어 제도가 되려 젊고 유능한 교수들의 가장 황금과 같은 시기를 자율성을 억압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테뉴어를 획득한 교수들은 어떤가?  이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많지만, 일반적인 정서는 그렇게 흐를 수 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니까 ... 특히 이런 지위를 확보한 교수들은 대학 시스템의 변화에 결사적으로 막을 것이고,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보니 언강생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과 같이 급격한 변화가 있는 시기에, 대학은 날이 갈수록 노쇠화하고, 가장 보수적이고 새로운 피의 수혈은 되지 않는 시스템이 이어진다면, 과연 대학이라는 곳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게 될까?  대학의 시스템이 아닌 다른 "고등교육" 시스템에 의해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과장이 될까?
  
가르치는 것과 연구는 또 별개다. 대학에서 연구를 중시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브랜드 파워이다. 어떤 교수가 어떤 유명한 논문을 냈다는 것은 뉴스가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브랜드를 인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제자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치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효과의 측정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일종의 산업으로 본다면 대학에서는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연구활동에 방점을 찍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실적이 우수한 교수들은 가능하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연구는 열심히 해도 가르치는 것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가치와 인문학

이제는 작고했지만, 코넬 대학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칼 세이건(Carl Sagan)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가 관여한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Cosmos)와 동명의 책을 사서 탐독을 하면서 과학자로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는 연구자라기 보다는 바깥 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학생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와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유쾌하고, 자신의 지식을 쉽게 설명하는 기술이 있었으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고, 연구영역에서도 탁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쌓은 사회적인 가치는 우수한 논문을 많이 낸 교수들의 그것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강의 및 수련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취업을 우선시하다 보니, 모두가 전공과목과 당장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여기에 맞춰서 자꾸 변신을 하고, 취업률을 또 하나의 평가잣대로 삼아 열심히 홍보를 한다.  소위 일류대학이 아니라면, 여기가 공략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은 알량한 몇가지 전문지식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사고하며, 사회를 고민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과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적인 지식만 쌓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대학 1~2학년 시절의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사회에 대한 적응력 및 변화를 느끼는 작업이 무척 중요한데도 이런 부분은 최근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다.


인생은 길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쉽게 90세까지 살 것이고, 어쩌면 젊은 친구들은 10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디자인도 해봐야 한다.  무척이나 급한 것 같지만, 뭐든지 건너뛴 것이 있으면 결국 그만큼 가치의 손실이 있는 법이다.  대학시절 다양한 경험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고민과 친구들과의 우정, 열정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언제 그 일을 해볼 것인가?  우리는 대학에 대한 사회에서의 가치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성지는 너무나 비싸기도 하고,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벽과도 같다. 부모들이 이런 부담을 진다고 해도, 결국 이것은 개인의 부담이나 마찬가지이다. 갈수록 벽을 높게 치고, 여기에서 양육된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세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소위 우리가 매일같이 욕하는 저 북쪽의 지배자 가족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대학도, 학생들도, 그리고 교수들도 모두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도 사회적 책임(Personal Social Responsibility, PSR)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우리의 고등교육 체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혁신이 있어야 한다.  내부혁신이 없다면, 외부에서의 새로운 시스템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과 대학에도 개방형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지나친 규제위주의 정책은 완화하되 사회적 책임은 높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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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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