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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너스-리의 최초의 웹 서버와 브라우저와 관련한 개발이 있었지만,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웹(WWW, World Wide Web)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은 마크 앤드리센이 주축이된 NCSA 팀에서 1994년 10월에 모자이크(Mosaic)를 발표한 다음부터입니다.  

그러다가 웹의 폭발적인 증가는 1995년 마크 앤드리센에 설립한 Netscape Communications 에서 네비게이터(Navigator)를 발표하면서부터 입니다.  네비게이터는 비상업적인 용도에는 무료로 배포가 되었고, 순식간에 모든 경쟁자들을 압도하면서 웹의 황제자리에 오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도전장을 내다.

1995년 웹은 글자 그대로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PC 통신 중심의 네트워크 세상을 완전히 장악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네비게이터는 웹의 상징이었고, 네비게이터를 이용해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navigation)하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어떤 다른 브라우저는 존재의 의미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급격히 커지는 웹 환경을 바라보며, 마이크로소프트는 NCSA 에서 모자이크(Mosaic)를 라이센스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로 도전장을 냅니다.  199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95가 발매되는데, 처음 발매할 때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포함시키지 못했지만, 8월달에 발표한 윈도 95 플러스! 팩 (Plus! Pack)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탑재시켜 발표합니다.  윈도 95가 화제를 모으며 전세계 PC 시장을 휩쓸었지만, 웹 브라우저 점유율에 있어서는 네비게이터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2.0 은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발표가 됩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임을 직감한 넷스케이프도 이에 질쎄라 발빠르게 버젼 업을 하면서 대응을 하였습니다.  이들의 경쟁이 가속화 되면서 브라우저의 안정성이나 버그를 교정하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기능의 향상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네비게이터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와 Blink/Marquee 엘리먼트와 같은 비표준 HTML 태그를 지원하였고, 익스플로러는 JScript 등으로 대항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경쟁은 점점 브라우저들의 성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웹 표준에 맞지않는 웹 페이지들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비록 운영체제를 독점하는 회사였지만, 익스플로러가 네비게이터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2.0 버젼까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 3.0 을 1996년에 발표하면서 서서히 네비게이터의 점유율을 따라잡기 시작하는데, 익스플로러는 브라우저 중에서 처음으로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구현하면서 대중화의 전기를 마련합니다.  그렇지만, 겨우 10% 정도를 넘는 점유율이 고작이었습니다.  1997년 10월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4.0이 발표되는데, 이 때만 하더라도 72:18 이라는 압도적인 열세에 몰렸던 익스플로러는 아예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에 통합되어 발표가 되면서 역전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윈도 95나 이후에 출시된 98을 설치하면, 자동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가지게 되었고, 브라우저를 이미 가지게 된 사용자들이 중복으로 네비게이터를 다운로드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판세는 급격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기울게 됩니다.


공룡에 의한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

운영체제와 끼워팔기를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승기를 잡게 되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그후 역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잊혀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제품의 완성도나 공정한 경쟁을 통한 것이 아니라, 끼워팔기에 의한 시장장악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선택은 결국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1998년 미국정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를 하게 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브라우저 끼워팔기 였습니다.  이 사건은 2001년 11월 2일 미국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종결이 되었는데 (여러 주정부의 입장차이로 완전한 결정은 2004년으로 늦춰졌습니다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써드파티 회사들을 위해 자신들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유하고,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스템, 기록, 소스코드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는 3명의 패널을 지정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과도한 장벽을 칠 수 없도록 규제를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코드를 바꾸거나, 다른 소프트웨어를 같이 묶어파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제재를 내리지 못하게 되는데, 비슷한 혐의로 시작된 유럽에서의 판결은 웹 브라우저를 분리하도록 명령하게 되고, 이에 따라 유럽에서 새로운 브라우저 전쟁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와의 경쟁에서 패한 넷스케이프는 결국 더 이상 독자적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당시 최대의 PC 통신업체였던 아메리카 온라인(America Online, AOL)에 $42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합니다.  이후 익스플로러의 독주는 계속되고 2002년에는 무려 96%라는 대단한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피크에 오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심합니다.) 

닷컴 시대 화려한 황태자 넷스케이프는 이렇게 몰락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AOL에게 매각되는 1998년 이후 오픈소스 혁신을 주도하는 그룹의 하나인 모질라(Mozilla) 재단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고, AOL 이 인터넷 브라우저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2007년 부터는 기존 네비게이터를 계승발전시킨 파이어폭스(Firefox)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아성에 도전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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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NCSA의 모자이크(Mosaic)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마크 앤드리센(Marc Andreessen)은 아르바이트 학생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주력 개발팀으로 뽑아주지도 않자, 시카고를 떠나 실리콘 밸리로 갈 것을 결심합니다.  처음 자리를 잡은 회사는 Enterprise Integration Technologies 라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주로 보안과 관련한 일을 하는 회사로 인터넷 브라우저와는 거리가 먼 사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 회사에 재직하던 시절에 일생일대의 귀인이 되는 짐 클라크(Jim Clark)를 만나게 됩니다.


쥬라기 공원을 탄생시킨 3D 컴퓨터

짐 클라크는 텍사스 출신으로 결손가정에 학교에서는 문제만 일으켰던 문제아로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퇴학을 당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생계를 위해 선택한 해군입대를 통해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쓸만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 수학을 가르쳤던 해군선생님들은 오래지 않아 짐 클라크에게 해군들의 수학강의를 맡길 정도로 신뢰를 하게 되었고, 군의 적극적인 권유로 야간대학에 진학을 하면서 만학도의 꿈을 키웁니다.  그는 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유타대학에서는 컴퓨터 과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9년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그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컴퓨터 과학에 대한 이해는 특히 3D 그래픽 부분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데, 학생들과 함께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전용칩을 개발하고, 개발한 칩을 판매하기 위해 IBM이나 HP와 같은 회사들을 접촉하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미래에 대해 보수적인 전망만 하는 대기업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창업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실리콘밸리에 탄생한 된 회사가 바로 3D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으로 명성을 높였던 실리콘 그래픽스(Silicon Graphics, sgi) 입니다.  초기 실리콘 그래픽스는 2년 가까운 개발기간을 거쳐 처음으로 1984년에 워크스테이션을 내놓게 되는데, 컴퓨터의 가격이 7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고가였고 범용 소프트웨어가 부족했기 때문이 시장의 냉대를 받게 됩니다.  또한, 그 동안 개발비로 대부분의 창업자금을 소진하고 회사의 존폐를 걱정할 무렵에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되는데, 바로 스타워즈의 아버지 조지 루카스가 지원을 한 것입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와 같은 SF 영화를 제작하면서, 특수효과의 중요성을 깨닿고 이를 위한 특수효과팀인 ILM 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영화에 3D 그래픽을 입혀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실감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었던 그에게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의 쥬라기공원(Jurassic Park) 영화화는 최고의 3D 그래픽 기술을 가진 컴퓨터를 요구하였고, 당시 최고의 3D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으로 개발된 실리콘 그래픽스의 컴퓨터는 사실 상 유일한 대안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결단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감독, 그리고 실리콘 그래픽스 컴퓨터의 컴퓨팅 파워가 어우러진 3D 특수효과는 쥬라기 공원을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면서 실리콘 그래픽스 역시 안정된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자자와 당돌한 젊은이의 만남

그러나, 회사창업 초기 2년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벤처투자자에게 너무나 많은 지분을 양도했던 짐 클라크는 실리콘 그래픽스를 실권을 쥐고 가기 어려웠고, 그 역시도 그 회사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돈을 활용한 새로운 투자를 하는 일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크의 만남은 실리콘 그래픽스의 동료였던 빌 포스(Bill Foss)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짐 클라크는 처음 만남에서 바로 미래의 컴퓨터 환경이 웹과 웹 브라우저 기반의 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마크 앤드리센에게 모든 창업자금을 댈테니 창업을 하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마크 앤드리센은 짐 클라크에게 440만 달러의 자금을 받아서 실리콘 밸리의 마운틴밸리에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 회사가 Mosaic Communication Corporation 입니다.  창업을 한 마크 앤드리센은 과거 모자이크를 같이 만들었던 NCSA 의 동료들을 불러들여서 새로운 웹 브라우저 개발에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Mosaic 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과 개발인원을 데려간 것, 그리고 이에 따른 특허침해에 대해 모교인 일리노이 대학과 NCSA 의 항의를 받게 되자, 회사 이름을 Netscape Communications 라고 바꾸게 되고, 합의금으로 3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합니다.  이 회사가 바로 초기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조타수의 역할을 해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탄생시킨 장본인입니다.  

회사를 창업하고 개발에 매진할 결과,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첫 버전이 1994년 10월에 공개가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해 10~12월까지 3개월이 안되는 기간 동안 2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급격하게 AOL(America Online)이라는 전화선 접속서비스와 함께 다양한 PC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시장을 인터넷 위주의 시장을 재편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비게이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화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던 케텔(KETEL, KT에 인수되어 이후 하이텔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피시서브(PC-Serve, 이후 천리안으로 통합) 등의 PC 통신 서비스를 끼워팔기와 비슷하게 이용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접속단말 소프트웨어가 트위터에서 @taeuk 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신 황태욱님이 포함된 경북대학교 하늘소라는 동아리에서 만든 '이야기' 입니다.  네비게이터의 탄생과 웹 서버의 대중화로 인한 인터넷의 폭발의 가장 커다란 직격탄을 맞은 곳들이 바로 이러한 PC 통신 서비스 업체들과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세상의 관심을 독점하다

오늘날 인터넷의 성공은 사실상 네비게이터의 성공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터넷에 접소할 수 있게 만들었고, 컴퓨터의 용도가 업무용에서 인터넷을 서핑(surfing)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5년 8월, 짐 클라크는 아무런 수익도 없었던 넷스케이프사를 IPO(기업공개)하는 모험을 시도하는데, 당시 "인터넷=네비게이터"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펼쳐내고 있었던 시절이라 '미래의 가치'라는 단 하나의 무기로 나스닥(NASDAQ)에 상장을 도전합니다.  주간사들이 비교적 낙관적으로 '미래의 가치'를 계산해서 주당 28달러에 상장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도 처음에는 14달러 정도가 적정하다고 조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2배인 28달러로 결정해서 올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일반인들이 이 가치를 믿고 사줄 것인가?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있는 1995년 8월 9일, 넷스케이프사의 주식은 첫날 무려 75달러까지 치솟게 됩니다.  물론 장이 끝나는 시점에는 58달러 정도로 다시 낮아지기는 했지만, 넷스케이프의 주식공개는 인터넷에 대한 미래와 사람들의 기대감을 표현한 첫번 째 신호탄이었고, 달리 말하면 이날이 바로 '닷컴버블(dotcom bubble)'의 시작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날로 24세의 젊은 청년 마크 앤드리센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면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고 빌 게이츠와 쌍벽을 이루는 아이콘을 부상합니다.  결국에는 빌 게이츠에 의해 넷스케이프가 처절하게 실패를 하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될 줄은 이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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