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삼국지, 오늘의 주인공은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 이어 애플의 CEO 로 선임되어, 이후 스티브 잡스가 복귀할 때까지 애플을 지휘하는 길 아멜리오(Gil Amelio) 입니다. 그는 가장 과소평가 받은 애플신화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애플의 중흥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반도체 회사의 사장, 애플의 이사가 되다.
길 아멜리오는 내셔널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출신입니다. 적자회사를 흑자회사로 반전시킨 CEO 로서 애플은 그들의 중요한 고객이자 협력업체의 하나입니다. 특히 연구자로서도 스캐너와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의 기본이 되는 CCD(Charge-Coupled Device) 기술을 처음 발명하는데 관여를 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애플은 이사회의 멤버 중의 한명이 되어주기를 제안하였고, 길 아멜리오는 이를 받아들여 1994년 애플의 이사가 되었습니다.
2년간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 직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경영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많은 비판의 소리를 내던 그는, 1996년 2월 애플의 공동설립자 중의 한 명인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애플의 CEO 로 500일간 일을 하기로 하고, 이후 커다란 보너스와 연임과 관련한 평가를 이사회에서 받기로 합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을 애플의 임원들로 입사를 시켜서, 애플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략을 처음부터 새로 짜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엘렌 행콕(Ellen Hancock)을 CTO 로 기용하는데, 그녀는 IBM 에서 일한 베테랑으로 길 아멜리오를 따라 내셔널 반도체로 옮겼다가 같이 애플로 자리를 옮겨서 중책을 맡았습니다. 전략의 결론은 고급스럽고, 신뢰도가 높은 고마진의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이를 위해서는 애플에게 현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애플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정도로 취약해져 있었습니다.
기존 경영진과의 미팅은 길 아멜리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CEO 는 수주 전에 미팅을 예고하고, 미래계획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의 부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 밖에는 없었고, 매분기 수백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 미팅에서 아멜리오는 이 상태로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물론 다른 어떤 회사도 애플을 인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애플은 점차 돈줄이 말라가고 있었고, 빨리 어떤 형식으로든 매각을 하거나 자금수혈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피말리는 스케쥴이었지만 길 아멜리오와 그가 데려운 CFO 인 프레드 앤더슨(Fred Anderson)은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하고, 골드만 삭스를 설득해서 총 $6억 6100만 달러에 이르는 규모의 회사채를 매각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를 통해 최소한 1997년까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의 숨통을 트게 되는데, 이것이 길 아멜리오가 CEO 로서 애플에게 안겨준 최고의 성과가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 출구가 없다.
당장 급한 자금문제는 해결했지만, 윈도 95의 출시와 함께 완연히 밀리기 시작한 PC 사업부문의 전망은 어두웠습니다. 거기에 새로 출시하는 제품들의 불량이 많아지고, 심각한 디자인의 오류까지 발견되면서 그동안 쌓아둔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Performa 6400 의 경우 가장 중요한 허브 맥으로 개발되어 수많은 번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컴포넌트로 구성된 최초의 미니타워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얼 포트를 하나 밖에 내장하지 않아서 모뎀과 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최악의 디자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또한, 톰 크루즈까지 기용하면서 화려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기대를 모았던 파워북 5300은 출시를 앞두고 싱가폴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면서 제품의 생산이 중지되는 사건과 함께 초기 선적된 1,000대의 파워북 전체가 리콜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소니에서 납품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만, 애플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애플의 또 하나의 걱정거리는 운영체제였습니다. 맥 OS 는 줄곧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서 왔지만, 윈도 95 출시 이후에 이런 격차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 7 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운영체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코플랜드(Copland)라는 코드명을 가진 운영체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시킵니다. 그러나, 애초 예정되었던 완료시기인 1995년을 훌쩍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 아멜리오는 500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이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아마도 이 프로젝트는 실패할 것이라는 강한 의심과 함께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대안은 코플랜드 프로젝트와 별도로 새로운 시스템 8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스템 7의 업그레이드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한 것으로, 스티븐 글래스(Steven Glass)에게 책임을 맡깁니다.
외부에서 파트너를 찾아라
다른 대안은 외부에서 수혈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길 아멜리오가 처음 구상한 것은 전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NT 를 채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PowerPC 워크스테이션에서 동작하는 윈도 NT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윈도 NT 를 채용한다면 애플 스타일의 하드웨어만 제조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도 좋게 만들고, 많은 비즈니스 사용자들도 애플 제품을 구매할 것을 고민하도록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 일리가 있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길 아멜리오는 즉시 이 아이디어가 실현가능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빌 게이츠와 통화를 시도합니다. 빌 게이츠는 길 아멜리오의 생각에 즉시 화답을 하면서, 애플의 중요한 자산인 QuickDraw 를 포팅하기 위해 수백 명의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를 보내주겠다는 제안까지 합니다. 그러나, 몇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맥 커뮤니티가 대부분 반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또한 현재 맥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많은 소프트웨어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안으로 길 아멜리오가 생각한 것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솔라리스(Solaris) 운영체제를 채택하는 것 이었습니다. CTO인 엘렌 행콕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운영체제의 완성도가 높았고, 유닉스 기반의 검증된 운영체제였지만, 애플의 강점인 QuickDraw 를 솔라리스 위에서 동작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인원의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때 애플에서 쫓겨난 쟝 루이 가시(Jean-Louis Gassée)가 부각됩니다. 그는 애플에서 사임한 이후에 Be Inc. 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7년 동안 상업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했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운영체제를 하나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BeOS 로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였고, 무엇보다 애플 내부의 엔지니어들이 가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시는 길 아멜리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에게 BeOS 를 이용해보라는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동시에 데모를 준비했는데, 애플의 Power 타워 맥에서 BeOS를 동작시켰는데 실행속도가 놀라울 정도여서 길 아멜리오가 탄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시와 아멜리오 사이의 인수를 위해 생각하는 가격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협상은 결렬되었지만, 이 이야기의 일부가 언론에 흘러들었고, 애플의 파워북 1400의 성공과 맥월드에서의 길 아멜리오의 키노트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애플에 새로운 서광이 비치는 듯 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
Be 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스티브 잡스가 움직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NeXT 와 픽사(Pixar)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맥월드를 통해 자신의 마케팅 매니저가 엘렌 행콕과 이야기를 한 뒤에 NeXTstep 운영체제의 애플탑재와 관련한 컨퍼런스 콜 일정을 잡는데 성공합니다.
첫번째 컨퍼런스 콜 일정을 순조롭게 마친 이후에, NeXT 와 애플은 거의 매일 만나서 NeXTstep 이 맥 OS를 대체하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합니다. 애플은 NeXT 의 수백 명의 개발자와 고객, 직원들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하여 NeXT 가 가지고 있는 기술 및 인원들이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긍정적인 협상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애플과 NeXT 의 만남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맥의 판매도 증가하는 좋은 소식의 와중에 길 아멜리오 개인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 길 아멜리오는 아마추어 파일럿으로 제트 비행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Aero 라는 독립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자신으 비행기 운용을 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연료비용이나 유지보수 비용을 모두 애플에게 맡긴 것이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파헤쳐지면서 도덕성에 많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새로운 애플의 운영체제의 자리를 놓고, 스티브 잡스와 쟝 루이 가시라는 두 명의 애플 출신 사업가들과의 담판은 1996년 12월 10일에 이루어집니다. 길 아멜리오는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자신들의 제안을 하도록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NeXTstep 의 미래지향적인 기술들을 중심으로 설득을 하였고, 가시는 이미 데모를 통해 보여줄 것은 보여주었다면서 새로운 것은 없다는 식의 PT를 합니다. 길 아멜리오는 가시의 성의없음과 스티브 잡스의 성실한 준비를 비교해보고 주저없이 NeXT 를 파트너로 지목하고, 뒤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NeXT를 인수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사회에서는 NeXT 인수가격에 대한 걱정을 하였지만, 모든 것을 길 아멜리오에게 일임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수결정과 함께 길 아멜리오에게 자신이 작더라도 애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길 아멜리오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스티브 잡스를 새로운 운영체제와 관련한 책임을 맡기겠다고 하고, NeXT를 $4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길 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와 함께 스티브 잡스를 얻었고, 300명의 뛰어난 직원들과, 매해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뛰어난 소프트웨어인 WebObject와 OpenStep을 같이 얻었기에 그 비용이 결코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협상은 보통 현금으로 지불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에게 애플에 대한 충성도를 요구하면서 애플의 주식 150만 주를 주고, 현금은 $1.2억 달러만 지급합니다. 협상이 거의 마무리되고 발표만 남은 순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새로운 엔지니어 부분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마음이 급해진 길 아멜리오는 회장인 마이크 마큘라의 자문직을 요청하게 되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수락하면서 애플은 NeXT와 스티브 잡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시련의 시작, 스티브 잡스의 반란
NeXT 는 얻었지만, 애플이 치러야할 대가는 컸습니다. 길 아멜리오는 자금을 위해 상당한 수의 직원들을 정리하였고, 수익이 나지 않는 많은 프로젝트를 정리하면서 회사의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제품 기반의 회사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의사결정이 쉬운 형태로 재정비되었고, 중복이 있는 프로젝트는 거의 모두 정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애플에 오래 몸을 담았지만, 더 이상 혁신의 가능성이 없는 오래된 임직원들이 대거 쫓겨나게 되는데, 한해 동안 거의 6,000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정리해고 되거나 자발적으로 애플을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길 아멜리오는 애플 내부의 인심을 잃었습니다. 반대로, 스티브 잡스는 NeXT 의 엔지니어들을 회사의 주요한 부서에 위치시키면서 조금씩 회사를 장악해 나갑니다. 특히 CTO 였던 엘렌 행콕은 스티브 잡스의 가장 중요한 정적으로, 결국 그 자리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신뢰하는 개발자이자 NeXTstep의 가장 중요한 마이크로커널을 개발한 에이비 테바니언(Avi Tevanian)이 차지하였으며, NeXT의 하드웨어를 맡았고, 향후 팜의 CEO를 거쳐 현재는 HP의 요직을 맡고 있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가 하드웨어 총책임자 자리에 오르도록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 아멜리오는 미국정부로부터 애플의 대주주 중의 한 명이 150만 주에 이르는 애플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 사건으로 애플의 주식은 급락을 하였는데,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를 의심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만, 결국에는 길 아멜리오의 지배체제 하에서의 애플은 미래가 없어서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길 아멜리오를 공격합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빅딜을 추진합니다. 빌 게이츠에게 연락을 해서 매킨토시용 오피스의 개발을 간청하고, 동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모든 매킨토시에 번들로 도입하겠다는 나름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만 빌 게이츠는 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약속된 500일을 하루 남겨둔 애플의 CEO 로서의 499일이 되던 날,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이사회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애플 이사회는 길 아멜리오의 연임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CFO 인 프레드 앤더슨이 적당한 인물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회사를 운영하라는 결정과 함께 애플을 떠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길 아멜리오는 짧았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의 애플을 최선을 다해 이끌어간 좋은 CEO 였다는 생각입니다. 초기 자금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골드만삭스와의 회사채 발행협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성장동력을 만들어갈 초석을 다졌고, 무엇보다 NeXT의 인수를 통해 오늘날 애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실 상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리고, 악역을 자처하고 과거의 관료화된 조직을 모두 쳐내면서 그 역풍을 온몸으로 받게 되었는데, 이런 그의 작업들은 이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새로운 애플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거의 모든 IT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50) (5) | 2010.07.22 |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49) (1) | 2010.07.19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48) (2) | 2010.07.15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47) (1) | 2010.07.12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46) (0) | 2010.07.08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45) (0) | 2010.07.06 |
WRITTEN BY
-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트랙백이 하나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