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인간의 권리인가? 라는 재미있는 주제에 대해서 인터넷 탄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엔지니어이자, 현재 구글에서도 일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인 빈트 서프(Vint Cerf)가 뉴욕타임즈에서 "그렇지 않다"고 발언을 한 글이 화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술은 인간의 권리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권리 그 자체는 아니다.

일견하기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존재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그런 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의외로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도구의 하나로 그 변화의 양상이 다양하고, 전 세계가 합의한 형태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사람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유의지, 그리고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를 권리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빈트 서프의 의견에 의문점을 던질 수 있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쟈스민 혁명의 과정에서, 인터넷은 그들에게 있어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사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보편적인 서비스이다.  나라별로, 문화별로 다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어떤 제약이 가해지거나, 탄압을 가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사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한다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국민들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는 곳들이 늘고 있다.  아마도 인터넷을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할지 몰라도, 전 세계의 보편타당한 표현의 자유와 연결을 위한 도구로서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Internet Access Is Not a Huma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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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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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이라는 고전에서 다음과 같이 자유를 기술하였다.

틀렸다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의 표명을 가로막으면 안되며, 표현의 자유를 일부만 제한하게 되면 곧 모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만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어야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단, 이런 자유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면 안 된다

그의 이와 같은 자유의 원칙에 대한 주장은 오늘날 전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는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자유론의 기본적인 원칙들은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클라우드로 대별되는 최근의 디지털 환경의 변화는 자유에 대한 의미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있다. 웹 2.0으로 대별되는 최근의 디지털 철학의 핵심은 개방과 자유 그리고 참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지속성(sustainability)이라는 속성을 가미하는 것이 바로 클라우드이다.

그렇지만, 클라우드와 자유라는 것을 매칭을 시키면 이것이 쉽지 않은 논쟁거리가 된다. 자유를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자원들에 대한 제어권을 가져야 한다. 이메일과 일정, 주소록은 물론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와 연결관계, 위치 등과 같은 개인과 연관된 자원들이 클라우드에 남게 된다. 이를 거대한 클라우드에 맡긴다면 빅 브라더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고, 자신들의 소유권으로 남아있어서 언제든 접근할 수 있고 보호할 수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걱정 때문에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보다 분산된 개방형 플랫폼인 Diaspora 와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클라우드 컴퓨팅에서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이를 지키도록 사용자들과 플랫폼 제공자들이 같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픈포럼 아카데미의 펠로우이자 콜랍(Kolab)시스템스 이사회 의장인 George Greve가 그의 Freedom of Bits 블로그에 올린 원칙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다음의 2가지를 언급하였다.

  • 제한을 할 수 있는 권리 (Right to restrict)

    사용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서비스 제공자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하거나, 사용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언제나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용자들은 자신의 데이터를 어떤 수준으로 접근가능하게 허용할 것인지, 어떤 사람들에게까지 공개할 것인지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서비스를 쓴다는 이유로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잃어서는 안된다.

  • 떠날 수 있는 자유, 그러나 잃어서는 안된다 (Freedom to leave, but not lose)

    사용자들은 자신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서비스 제공자를 바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잃어서는 안된다. 서비스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해서 어떤 페널티가 주어진다거나, 사용자의 데이터나 네트워크 등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클라우드 시대의 자유를 위해서는 어떤 논의가 필요할까? 구글의 경우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이 되어서, 회사 내부에 데이터의 자유보장과 관련한 조직과 이들의 강령 등이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앞으로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들도 모두 이와 유사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연관글:

2009/09/19 - 대인배 구글, 데이터 자유보장 전선 조직


 
이런 철학적인 움직임의 배후에는 공개 소프트웨어 운동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개 소프트웨어 운동의 대부인 리차드 스톨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뛰어난 천재 해커였던 그는 MIT의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해커 커뮤니티를 이끌면서 해커정신을 전 세계에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주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복사를 방지하고, 동시에 비슷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할 수 없도록 소스코드에 대한 저작권 및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대부분 복사와 재배포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라이센스 정책이 구성되었다. 이런 전반적인 변화에는 리차드 스톨만과 함께 MIT 에서 많은 일을 같이 했던 브루스터 칼레(Brewster Kahle)가 미국 저작권법 개정에 1976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대해 리차드 스톨만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는 강한 표현을 쓰며 반발하였고,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의 자유의지와 권리를 중시하고,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이웃들과 공유하고, 또한 사용자가 추가적인 연구나 에너지를 투입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신념에 입각하여 Free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 GNU 프로젝트를 1983년 9월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싹튼 공개 소프트웨어 운동은 소프트웨어 부분에 적용할 새로운 라이센스인 GNU GPL(General Public License) 등으로 발현되었고, 이러한 활동은 이후 나타나게 되는 CCL(Creative Commons License)과 같은 다른 산업영역에서의 새로운 라이센스 정책을 포함하여, 공익와 사회적가치에 중점을 둔 새로운 철학 및 정책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이후 1991년 핀란드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GNU 개발도구를 이용해서 운영체제의 핵심인 리눅스 커널을 개발하면서, 오늘날 운영체제 계보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리눅스(Linux)가 탄생하는데, 리눅스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 무수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이다. 비록 그 자체가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도 가지지 못했고, 이를 이용해서 직접적인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나오지 못했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실제로 이와 연관된 사업규모는 따지지 못할 정도로 크다. 
 
이와 같은 공개 운동은 비록 중간에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포함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완결적인 컨텐츠나 소프트웨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최근 그 대상을 하드웨어 설계도나 특허 등에도 적용하고 있지만, 클라우드 사회로 진행될 경우에는 그 형태가 너무나 달라서 새로운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일단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한 플랫폼 사업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탈중앙화(decentralized)와 연합형(federated) 기술과 이에 대한 인프라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원칙 중에서 두 번째인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는 플랫폼을 떠날 때 네트워크를 잃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지원하려면 소프트웨어가 디자인 될 때 기본적으로 사용자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 프로토콜이나 서버의 인프라가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등장한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 바로 Diaspora와 같은 분산형 오픈소스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앞으로 이런 새로운 플랫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비스의 원활한 연결과 혁신, 그리고 차별화를 하면서도 사용자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개방형 표준(open standard)들을 채용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간단히 플러그-인 되는 서비스나 자동화된 테스타, 검증 등을 통해 실제로 소프트웨어나 서비스가 개방형 표준을 준수하는지 자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용자들에게 권리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위험성에 대해서 고지하는 것이다. 이미 이런 부분에 대한 법적인 내용들을 잘 알고 있는 사업자들은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개인정보와 관련한 동의서를 작성해서 동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렇게 방대한 동의서를 작성하라고 하면 이것을 제대로 읽어볼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것은 법적인 책임만 회피할 뿐, 제대로 사람들에게 고지하고 "자유"를 선사하려고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행위이다. 그러므로, 동의서는 최대한 간략하면서도 한 눈에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최근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에서 간단히 여러가지 아이콘으로 제약사항을 표시하듯이, 새로운 형태의 비주얼 아이콘 등의 장치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당 서비스를 쓸 때의 프라이버시나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설정을 알 수 있고,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책이 변경되었을 때에도 이를 알리고 명시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서비스의 공개 정책이 변경되었을 때, 매우 긴 문서와 함께 동의하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는 방식으로 알리는 것은 매우 비겁한 방법이다. 이 때에도 변경된 부분을 명확하고도 간략하게 알리고, 이에 대해 사용자들이 충분히 숙지한 뒤에 선택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떠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아마도 현재 이와 같은 원칙에 충실하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용하는 곳은 매우 적을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도 사실은 넓은 범위의 클라우드 서비스이다. 개개인의 데이터와 자신과 관련한 많은 것들이 이미 클라우드 서비스에 담겨져 있다. 이제 이들의 "자유"라는 권리에 대해서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하며, 이런 권리를 세심하게 챙기는 서비스들이 부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Freedom in the “cloud”?
On Liberty by John Stuart Mill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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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기술인문학 이야기. 지금까지 너무 딱딱한 글들만 많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조금 말랑말랑한 주제로 MIT 미디어랩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ICT 기술의 변신과 관련해서 가장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ICT 기술과 관련한 기념비적인 저술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의 산실인 곳이기 때문에 그 탄생비화를 살펴보는 것 만으로 많은 시사점이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

MIT 미디어랩은 휴먼 인터페이스(human interface) 기술과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최초에 구상이 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기술을 연구하기 보다는 정보시스템의 내용이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욕구, 본질적인 예술적 사유를 통해 개념을 다듬어 나간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MIT 미디어랩에서의 연구와 개념들은 방송과 출판, 컴퓨터 산업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네그로폰테 교수에 따르면, MIT 미디어랩의 창립교수진은 ‘살롱 데 레퓨제(Salon des Refuse's)’가 되어 자신의 조직을 만들었다고 표현하였다. ‘살롱 데 레퓨제’는 프랑스어로 ‘거절된 것들의 전시(exhibition of rejects)’라는 뜻으로 파리의 살롱에서 거절된 전시품들을 모아서 전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파리는 모든 종류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예술의 수도나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알리고 싶은 예술가라면 파리의 살롱에서 전시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모든 예술가들의 작품이 살롱에 걸리지는 못했기에 1830년대부터 파리의 아트 갤러리에 작은 스케일이지만 살롱에서 살롱에서 거절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1863년에는 이 행사가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서 스폰서를 받아서 3,000점이 넘는 작품들이 소개되면서 수많은 비평가들의 조소를 받으면서도 오늘날 최고의 명화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대중들에 의해 재발견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된다. 특히 이 이벤트를 통해 아반가르드가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MIT 미디어랩의 교수진들은 보수적인 대학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지나치게 독특하였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와 제롬 비스너를 제외하고는 영화감독, 그래픽 디자이너, 작곡가, 물리학자, 수학자, 멀티미디어 연구원과 같이 일반적으로 볼 때 MIT 교수의 자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MIT 미디어랩은 학문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것의 능력으로 과학이나 기술 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 측면을 변화시킨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시대가 요구한 변화

MIT 미디어랩이 탄생한 시기는 PC의 등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이 조금씩 알려지고, 동시에 통신산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신문, 잡지, 출판, 영화, TV 등과 같은 전통 미디어 업체들과 통신과 디지털로 대표되는 컴퓨터 기술의 접목으로 인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감지한 거대 미디어 회사들은 미디어랩의 독특함에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고, 이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결정하면서 오늘날의 명성을 구축하게 된다. 


MIT 미디어랩의 탄생과 얽힌 뒷이야기를 보면, 현재 시작된 새로운 모바일/소셜, 그리고 융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적합한 학제나 연구실, 또는 산학협력 등과 같은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곳이 다시 나타날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분명히 전통적인 대학에서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내는 구심점이 나타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과감하면서도 멀리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학문과 연구, 그리고 현실에서의 적용과 혁신을 접목할 수 있는 그런 세계적인 연구 및 교육, 그리고 산학협력 네트워크가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기를 고대해본다.


참고자료: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저/백욱인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1995 
위키피디아 영문페이지 - Salon des Ref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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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디지털 경제, 그리고 소셜 웹 서비스 등의 활성화는 양방향소통과 상호작용의 비용을 감소시키고,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시장변화와 파괴가 나타나도록 만든다. 제품과 서비스의 생명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증가하며, 새로 내놓은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것인지 여부도 빠르게 판가름이 나고 있다. 수요는 예측이 어렵고,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들에 대한 요구사항 역시 빠르게 변한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의 증대와 선택의 다양성은 전통적인 공급자와 소비자의 파워의 균형을 바꾸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경제가 무너진다.

과거에는 수요가 안정적으로 예측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공급자가 필요로 하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뒤에 가장 효과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프로세스를 거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공급하면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수요에 대한 예측이다. 만약 이런 수요 예측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하게 되면 언제 어떻게 자원을 획득하고, 이를 이용한 생산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도 불확실하게 된다. 

공급자 중심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변수가 제한적일 때 잘 동작한다. 필요한 자원들의 변동폭이 크거나, 복잡성이 증가하면 점점 미리 예측을 해서 생산을 하는 방식을 동원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자원들이나 기술들이 빠르게 발전한다면 더더욱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변화에 인터넷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기본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훨씬 쉽게 풍부하고도 다양한 자원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다양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면서 각종 프로세스나 최신 기술, 가격 정보와 다양한 협력 대상 들과의 연계가 과거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쉬워졌다. 이를 통해 다양한 생산자들이 특화된 제품들과 서비스들도 쉽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전 세계 어디에서 생산되든지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접근가능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들의 수를 증대하는 방향의 변화를 유도하게 되고, 각종 재화들의 생명주기는 짧아지며, 제품과 서비스들이 변하거나 발전하는 속도와 비율도 커지게 만든다. 여기에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사람들과의 연결이 쉽고, 지리적인 제약을 넘어서 이를 결성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거의 없는 인터넷의 특성에 의해 활성화되고 많아지면서 점점 이런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커져 가고 있다. 


강력한 소비자들

소비자들이 많은 옵션을 가지고 정보에 접근하게 되면, 점점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시간과 장소와 같은 전통적인 제약조건은 흔히 공급자가 헤게모니를 쥐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소비자의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심지어는 시멘트와 같은 전통적인 자원의 공급도 이런 변화의 파도를 거스를 수 없었다. 멕시코의 Cemex와 같은 회사는 고객들을 위한 배달 시스템을 개발하여 공개를 하였다.

또한, 완성품 뿐만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에 추가적으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확장할 수 있는 기능이나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벤더들이 모듈화된 컴포넌트의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를 선호하게 되어 필요로 하는 것을 적재적소에 구하고자 하는 요구를 맞춰주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인기를 끈다. 이제는 일반화된 곡 단위의 디지털 음원의 판매 역시 10~12곡이라는 앨범을 패키지로 묶어서 파는 CD의 판매방식과 비교한다면 이런 변화의 패러다임의 연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이런 변화에 잘 맞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만큼만 사용하는 패턴이나 양에 따라서 과금을 하고, 이를 적절하게 조합해서 이용하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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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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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디지털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이다”의 저자인 니콜라스 니그로폰테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보스턴의 거실에 앉아 전자 창문을 통해 스위스의 알프스를 바라보며, 젖소의 목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를 듣고, 여름날의 (디지털) 건초 내음을 맡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톰(자동차)을 몰아 시내의 일터로 가는 대신 사무실에 접속하여 전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경우 나의 작업장은 과연 어디인가?


장소와 주소의 새로운 의미

이와 같은 추세는 점점 더 장소와 주소의 개념을 바꾸어 놓는다. 한자로 주소(住所)를 해석하자면 “사는 곳”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물리적으로 거주하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이제는 다양한 주소가 존재한다. 물리적인 거소에서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비트로 이루어진 가상의 장소에서 존재하는 시간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으며, 비트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거소를 나타나는 소위 “공간이 없는 장소”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지는 시대이다.

초창기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메일이 보급되면서, 이메일 주소가 자연스럽게 비트의 공간에서의 전통적인 주소 역할을 해왔다. 이런 경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사람의 가상공간에서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장소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은 자신의 치장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마음껏 치장해서 남들에게 보란 듯이 주소를 공개하고 있으며, 이메일은 다소 사적인 공간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대별되는 소셜 웹 서비스들의 계정들도  인터넷 상에서의 개인의 페르소나(Persona)를 나타내는 주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각각의 가상공간의 주소들은 모두 물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필자의 개인 이메일 주소는 구글의 데이터센터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며, 트위터나 페이스북 주소는 역시 이들 회사의 클라우드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필자에게 접촉을 하기 위해 이용하는 주소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사의 물리적 주소가 아니다. 많은 사용자들은 쇼핑몰에서 여러 매장들을 돌아다니듯이 네트워크를 돌아다닌다. 브라우저라고 이름 붙여진 자동차를 타고 가상의 주소 체계에 따라 이 서버에서 저 서버로 이동하면서 쇼핑을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새로운 “공간이 없는 나만의 장소”는 모든 사람들을 간단히 연결하는 거대한 새로운 가상의 공간체계를 만들었다.    


시간의 활용이 달라진 생활방식

과거의 전통적인 아톰 위주의 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생산수단과 업무환경이 있는 곳에 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그리고 노는 시간과 집에서 쉬는 시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5시라는 일반적인 일하는 시간과 일하는 곳까지 움직이는 출퇴근 시간, 주말이라는 달콤한 충전시기와 직장에 따라 다르지만 일 년에 1~2주일 정도의 휴가를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너무나 당연했던 생활의 리듬이 인터넷과 모바일의 시대가 되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업무와 관련되는 메시지가 개인적인 메시지와 함께 섞이지 시작했고, 평일 밤이라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다. 일요일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할 수 있으며,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협업을 하는 당사자들과 나눌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명확한 일과시간의 구분을 짓고, 여기에 응답하지 않는 생활패턴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전통적인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일을 사무실에 남겨두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언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일하는 것에 쏟기도 하고, 잠시 휴식이 필요하면 좋아하는 만화나 동영상을 찾아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한다. 새벽 시간이나 일요일에도 여유가 있고 능률이 오른다면 일을 하고, 주어진 일을 모두 완수한 뒤에는 휴식을 가진다. 이미 우리는 출퇴근이나 정해진 시간의 경계에서 벗어나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만 전통적인 시간의 경계와 장소의 제약을 완전히 극복하는 정책을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과거로부터의 습관을 쉽게 바꾸기도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당분간 혼란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에 분배와 활용에 대한 패러다임 시프트는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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