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ure by tum_camen from Flickr


이 글은 지난 번 포스팅한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 광고는 죽었다!" 의 후속 포스팅입니다.  이 글은 테크크런치(TechCrunch)의 객원 블로거이자 유펜(펜실베니아 대학)의 와튼스쿨(Wharton School)의 교수로 유명한 Eric Clemons가 올린 인터넷과 광고와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블로그 포스팅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시려면 이전 포스팅 글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연관글:  2009/04/03 -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 광고는 죽었다!
원문:  Why Advertising Is Failing On The Internet by Eric Clemons


지난 번 포스팅에서 인터넷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결국은 광고라는 것의 효용성이 떨어지게 되고, 기존 매스미디어에서 활용한 광고에 대한 지출관성이 사라지는 순간 광고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면서 광고산업전반과 여기에 매여 있는 가치사슬(value chain)들이 한꺼번에 붕괴될 수 있다는 다소 우울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전해가는 인터넷 환경과 새로운 신경제환경에서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오늘의 포스팅 주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한 것입니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이 우아한 말이지만, 결국 인터넷 환경에서 무엇인가 정보생산 및 유통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냐?  이것이 키 포인트 입니다.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광고였는데, 이 광고라는 돈줄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이게 무서운 것이죠?  돈 버는 방법은 사실 무지하게 여러가지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가능한 것은

1. 진짜 물건을 팔거나, 2. 가상의 물건/지식을 팔거나, 3. 파는 것과 연결하는 유통

이렇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쇼핑몰 같은 것을 하시는 분들은 사실 1번에 해당하는 일을 벌써 하고 계시고, 여기에서 유통마진으로 돈을 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단독 쇼핑몰을 열지 않아도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AWS(Amazon Web Service)를 이용하면 자신만의 공간을 아마존의 도움을 받아서 쉽게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 측면에서도 수 많은 롱테일에 해당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위 eCommerce라고 부르는 인터넷 쇼핑몰 비즈니스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미 국내에서도 다양한 성공사례가 나왔지만 다소 진부한 면이 있습니다. 

다음은 가상의 무엇인가를 파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디지털 음악이나 뉴스 등과 같은 컨텐츠/정보를 파는 방법:  요런 형태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가트너(Gartner)와 같은 시장정보 기관이 되겠습니다.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큰 규모의 회사지요?  음악의 경우에는 아이튠즈와 같이 소규모 결재를 이용한 디지털 음악시장이 있습니다.  Blurb와 같이 출판 2.0 패러다임을 이용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를 직접 상품화를 하는 시도도 이러한 카테고리에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 가상 커뮤니티에 경험이나 참여를 파는 방법:  페이스 북이나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SNS, 플리커나 유튜브 같은 그림/동영상 커뮤니티 또는 세컨드라이프나 WOW같은 가상 커뮤니티에 자신의 경험이나 참여도를 수익화한느 방법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일으킬 수 있을 지에 대한 논의와 방법론이 매우 부족합니다. 
  • 가상 커뮤니티에 가상의 물건 또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법:  온라인 게임의 경우 직접 디자인한 집이나 가구, 심지어는 획득한 아이템을 파는 형태의 시장이 이미 구성이 되었습니다.  이를 게임에서 조금 벗어나 생각을 하면 거대한 블로고스피어나 SNS에서 참여한 네트워크 구성원들이 기꺼이 구매할 의사가 있는 무엇인가를 생산해서 산업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과거 싸이월드의 도토리를 이용한 다양한 구매가 여기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데, 이 때는 생산을 서비스 회사에서만 하고 수익을 서비스 회사가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생태계 조성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품화를 네트워크 참여자들에게 주고, 서비스 회사는 전체적인 시장환경 조성 및 약간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형태의 산업화를 한다면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지 조심스럽게 전망해 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유통부분에서의 수익 가능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이 부분의 가능성이 가장 많아 보입니다. 

  • 한 차원 발전한 검색광고:  일단 구글의 검색광고는 기존의 광고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검색의 경우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흔히 이야기하는 푸쉬형 광고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검색에서 제공하는 광고는 기본적으로 해당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어느 정도 매칭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정말 유익하고, 연결된 링크가 수요자에게도 유익할 수 밖에 없는 것들로 구성된다면 기존의 광고가 가지고 있는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게 됩니다.  검색광고에 적절한 정보를 매칭시키는 기술, 이것이 완벽해지면 컨텐츠 생산자 역시 쓸데없는 광고가 아닌 것을 부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신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와질 수 있습니다.  다음의 새로운 "다음 뷰"와 열린검색 기술 등과 같은 기술적인 발전에 상당히 기대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평가와 추천의 비즈니스 모델:  아직 국내에서는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이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여행관련 추천사이트인 TripAdvisor.com(저도 미국에 있을 때 많이 이용했던 사이트 입니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와 숙박, 음식 등에 대해서 실질적인 평가와 추천을 합니다.  그런데, TripAdvisor.com의 소유주가 누구일까요?  유명한 호텔 예약 사이트인 Hotels.com 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TripAdvisor.com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이트에서 Hotels.com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예약사이트를 모두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운영에 아무런 관여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간접적으로 이런 신뢰성에 의해 많은 매출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단독 비즈니스 모델로는 돈을 벌 수 없을 지 몰라도, 협업과 네트워크를 통한다면 충분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모바일 광고 시장:  미래형 비즈니스 모델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부분이 모바일과 기존 인터넷이 연계되면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모바일 광고시장입니다.  단문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도 가능하고, MMS나 스마트 폰에 장착가능한 여러가지 프로그램 등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바일 광고 부분이 기존의 인터넷 관련 비즈니스 모델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일단 GPS를 통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개인의 취향 (예를 들어, 중국음식을 좋아한다거나 락 음악을 좋아한다거나)이 이메일이나 개별화된 검색에 의해 수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개인의 취향과 위치 정보를 이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파생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여러 포탈 업체들이 열심히 지도관련 서비스 개발에 열을 올리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아직도 암흑 속을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자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특히, 정보부분에 있어서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정보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다소 과장된 광고를 통해 만들어졌던 전체 산업에 대한 약간의 거품부분(실제로 기존의 미디어들은 이 거품을 먹고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이 걷혀질 수 밖에 없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본질적인 편의성과 가치를 가지고 승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정보와 지식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네트워킹이나 협업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구글의 검색광고라는 것이 지금은 매우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처음 구글이 이를 시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겠냐면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닷컴 버블이 터지는 위기상황에서 구글을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검색광고 아이디어였습니다.  오늘날의 웹 2.0 기반의 산업구조에서 필요한 것 역시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캐시카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치열한 논쟁이 필요한 부분인데, 기술부분과 장미빛 전망에만 눈이 멀어 이 부분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들은 또다시 수많은 좋은 기업들과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들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트랙백  5 ,



영국은 18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명실공히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영토를 모두 관할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미국처럼 언어와 문화,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던, 영국의 위세가 19세기부터 조금씩 꺾이더니 20세기에는 미국에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의 지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물론 전세계를 놓고 패권대결을 벌이던 상황에서의 여러 차례의 전쟁이 물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60년대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러시아는 1815년 비인회의(Congress of Wien) 이후 세계의 양대 최강국으로서 세계 곳곳에서 패권 대결을 벌였습니다.  러시아는 어떻게든 남하하려 하고 영국은 그때마다 이를 극력 저지하는 현상이 발칸반도․중앙아시아 등에서 전개되었지요.  크림전쟁(Crimean War, 1853~1856) 당시 러시아와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영국은 국면전환을 위해 1854년 8월 29일 프랑스를 끌어 들여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사이에 있는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기습하였고, 이로 인해 영․러간의 세계적 대결이 동아시아로까지 확대됩니다.  그런데 태평천국운동(1851~1864)을 통해 중국 민중의 거대한 파워를 확인한 영국과 러시아는 1860년대부터 동아시아에서의 상호 대결을 자제하였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힘의 공백’ 상태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최강국들인 영국-러시아가 상호 대결을 자제하는 틈을 타서 일본․프랑스․독일․미국․중국 등이 동아시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는데,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를 일으킨 것도, 미국이 신미양요를 일으킨 것도(1871), 일본이 운요호사건(1875)을 도발하고 오키나와를 합병(1878)한 것도, 청나라와 일본이 임오군란(1882)에 개입한 것도, 프랑스가 베트남을 장악(1885)한 것도 모두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힘의 공백기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미국이 2차례의 세계대전의 막판에 결정적인 승기를 잡는 역할을 하면서 세계패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해석이 일종의 외부적 요인에 따른 이유라는 시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시각이 바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차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 "Next Society"에서도 간단하게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에 의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급속도로 세계를 재편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850년 정도가 되면서 영국은 미국과 독일에 강대국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이렇게 뒤쳐지기 시작한 이유는 경제적인 것도 기술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영국은 1차 세계대전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지켰으며, 기술적으로도 19세기 동안 우월적 위치를 지켰습니다.  합성연료나 증기터빈과 같이 세계적인 발명품도 여전히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사회적으로 기술자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기술자들은 결코 신사(gentleman)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인도에 최고의 산업기술과 관련한 학교를 세웠지만, 정작 영국에는 그렇게 좋은 학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순수학문을 숭배하고,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기술자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쉽게 시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기술자라는 것은 단지 이론적 기초를 주물럭거려서 돈이나 버는 '장사꾼'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장사꾼'으로 비즈니스맨을 폄하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더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은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양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증명이 안된 사업에 투자할 자본도 없고, 이를 집행할 자본가들도 없었기 때문에 후퇴만 거듭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J. P. 모건이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제도화하고,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데 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지요 ...

이러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행보가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영국의 지위를 끌어내린 것입니다. 

이제는 지식혁명과 인터넷 혁명이 산업혁명의 뒤를 이어 세계를 변혁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영국에서와 같이 과거의 경험에 매몰되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인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트랙백이 하나이고 ,



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 ... 

사실 가치투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의 투자기법은 중장기 투자의 정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은 위대한 투자가 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너무나 존경할 부분이 많은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워렌 버핏의 인생과 가치관, 그리고 그의 철학과 인격을 존경하고, 나름대로는 따라할 수 있는 부분은 따라해 보려고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워렌 버핏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그의 투자기법이나 기업의 경영과 관련한 것들도 좋지만, 그가 살아온 방식이나 삶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워렌 버핏은 중학생이 되면서 고향인 오마하를 떠나서 워싱턴 DC에 살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시작한 일이 신문배달이었는데, 그가 처음 배달한 것이 유명한 '워싱턴 포스트'입니다.  그는 후에 워싱턴 포스트의 대주주가 됩니다만, 당시만해도 그에게도 좋은 직장이었던 셈이죠 ...

신문배달을 하면서 번 돈은 자신이 직접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납부하였고, 남은 돈으로 저축을 해서 고등학교때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의 밑천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벌어들인 수입에 대해서 철저하게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겼던 그의 버릇은 현재까지도 지속되어, 아직도 자신이 직접 세금계산 및 신고를 한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도널드 데인리라는 친구와 친하게 되었는데, 그가 중고 핀볼 기계를 25달러에 사서 가지고 놀다가, 고장이 나면 직접 수리하고 하는 것을 보던 워렌 버핏은 데인리에게 같이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근처에 있던 이발소에 핀볼 기계를 대여하고 이발소와 이익을 나누는 것이 사업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데인리가 중고 기계를 들여와 고치거나 설치하는 등의 일을 하고, 버핏이 장부를 관리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시작한 사업체에 "윌슨 동전 조작 기계 회사 (Wilson Coin Operated Machine Company)"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는데, 여기에서 "윌슨"은 가상의 인물로 아이들이 운영하는 회사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발소로부터 주문을 받으면, 일단은 윌슨씨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답을 함으로써 회사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업체는 매주 50달러를 벌어들이게 되었는데, 워렌 버핏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부모를 포함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6000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거액을 모으게 됩니다.  이렇게 모은 돈이 이후 오늘날의 워렌 버핏을 있게한 시드 머니가 됩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받은 트랙백이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