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에 있어 과학논문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한 과학에 의해 세계는 혁신을 한다. 과학의 발전이 빨라지면서,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진다. 그런데, 현재의 과학논문 시스템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보통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진 이후에 이를 논문으로 만들어서 투고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실제로 발행이 되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대단히 다양하고 복잡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있지만, 아직도 과학논문 시스템은 전통적이고 꽉 짜여진 형태의 종이 논문의 모습 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어찌보면 현재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런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면 아마도 과학기술의 성과를 공유하고, 이를 통한 발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점에 착안해서 최근 미래의 과학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스타트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과학논문 시스템이 탄생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과학자들끼리, 그리고 과학자들과 세계와 소통을 하고 이에 의한 평가와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주요 과학기술논문의 경우 평균적으로 1년의 시간이 걸려야 효율적인 대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어 이제 1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많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프로세스를 현재의 인터넷과 웹의 상황에 접목한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모든 블로그의 글이나 트윗, 사진 등을 작성해서 제출한 뒤에 이것이 웹에 1년, 아니 한 달 뒤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스템을 바꾸라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물론 뉴스나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 그리고 과학논문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다를 것은 또 무엇인가? 과학자들이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에 망정이지, 자신들이 연구하고 알아낸 사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고 단순하게 외부에 공표하고, 여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어째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쯤 고민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신문이나 방송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통 미디어에 칼럼 등을 기고하고, 이것이 채택이 되서 발행이 되거나 방송이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누구나 쉽게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이용해서 그때 그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의견을 개진하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의 권위나 정확성 등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아서 받아들이고 있고, 일부는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인용을 하고, 새롭게 저자와의 협의를 통해 게재를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과학논문의 답답한 형식도 마찬가지다. 현재 과학기술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인정받으려면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한 사람이라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정형화된 형태의 논문으로 표현을 해서 발표를 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그냥 블로그에 이를 발표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과학기술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경멸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들의 아이디어나 논리, 또는 실험결과나 구현한 내용을 블로그에 작성한다면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냉정히 본다면 동영상과 사진, 표 등은 물론이고 고급스러운 기술을 이용하면 쌍방향성이 있는 요소까지 추가할 수 있는 블로그는 표현의 자유와 풍부함이라는 측면에서 정형화된 과학논문의 형태보다 훨씬 진보한 미디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좋은 논문이라도 3D 단백질의 형태를 올릴 수는 없다. 2D 사진으로 바꾸어서 게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웹에 WebGL 등의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3D 모델을 그대로 돌려보고 확대하고 축소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더 명확하게 표현도 가능하고 이해를 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과 반응 등을 볼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업데이트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몇몇의 과학자들이나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의 과학논문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야 할까?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원래 과학논문을 쉽게 공유하기 위해서 웹을 발명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과학과 웹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많은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구결과나 진행과정을 웹에 스스럼없이 공개하고,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런 의도로 시작한 일부 웹 서비스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rXiv, Academia.edu, Mendeley, ResearchGate 등이다. 이를 통해 현재와 같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학기술 연구내용의 불통과 비효율이 조금씩 극복될 것이다. 또한, 다양한 웹의 기술을 이용해서 비디오나 3D 컨텐츠, 웹 앱 등이 결합된 멋진 과학기술 논문컨텐츠를 제작하고 올리는 과학기술 연구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 연구의 권위와 과혁기술 연구자들의 상호리뷰(peer-review) 과정 등이 손상받을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과거 신문이나 방송 등의 전통적인 미디어가 소셜 미디어의 도전을 받았을 때에도 있었다. 소셜 미디어로 작성되는 수많은 글들이 전통 미디어에 올라오는 글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소셜 미디어의 글들은 그 어떤 전통 미디어의 글이나 컨텐츠보다 높은 수준의 것들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수준의 컨텐츠가 나타날 것인데, 이들 중에서 옥석이 가려지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쓰레기와 같은 그런 종류의 논문들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면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연구의 평가와 관련한 시스템이나 교수나 연구원 등의 고용, 연구비 지원 등의 체계에도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 이런 변화를 원하는 과학기술 연구자들과 젊은 스타트업들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학기술 논문시스템의 혁신에 대해서 실리콘 밸리의 벤처캐피탈이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보수적인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The Future of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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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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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최근 헐리우드의 소위 블록버스터라는 것을 보면 절반 이상이 SF 쟝르인 듯하다. SF 쟝르는 우리나라에도 인기가 높아서 상당 수의 영화가 크게 성공을 한다. 물론, SF에도 비교적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의 검증이 잘 이루어진 것들과 다소 황당한 설정을 특수효과로 버무린 것들로 나누어볼 수 있겠지만, 이런 SF 영화들이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SF의 역사는 영화보다는 소설이 원조이다. 최초의 SF소설이 무엇인지를 놓고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지만,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셜리(Mary Shelley)의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부터 수많은 SF소설들이 미국에서는 발표되었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이나 사람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견인차 역할을 SF소설이나 영화 등이 했다고 하면 과장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이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대성공을 거둔 <쥬라기 공원>의 경우, 한 다국적회사에서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호박의 모기에서 추출한 공룡 DNA를 바탕으로 현생 파충류를 활용하여 공룡 테마파크를 만들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가정을 함으로써 (비록 이런 시도가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오게 되지만), 흥행과 함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다국적회사의 단순한 고용자로서 일을 하였다. 특히 이 영화는 마이클 크라이튼이라는 의학을 전공한 작가의 정교한 가정들이 극적인 요소를 더했는데, 공룡을 만들 때 lysine 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결핍되게 해서 암컷 공륭이 알을 낳을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했지만, 자연의 힘은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변종을 만들어 내는 탄탄한 과학적 배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과학자들이나 과학의 힘을 이용한 기업이 대자연과 생명에 대해 무모한 조작을 감행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불확실성과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인지하게 만들었다. 현재 유전공학은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이용된다. GMO라고 불리는 다양한 유전자변형작물은 물론이고,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쥐가 없다면 의학의 발전도 지체될 것이며, 상당 수의 의약품들도 이제는 유전공학의 기술로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정도가 과한 유전공학에 대한 맹신과 상업적인 탐욕은 SF영화들이 이야기했던 무수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 만약 SF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런 이야기의 가능성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면, 상업적인 이해관계와 윤리적 의식이 결여된 일부 과학자들로 인해 미래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 있는 그런 시도가 스스럼없이 행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탐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동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의 미래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다양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자는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로도 잘 알려진 SF소설의 거장 필립 K. 딕(Philip K. Dick)이다. 이 영화는 감각적인 연출과 뛰어난 영상, 그리고 정교한 세트와 설정에 있어 근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특히 홍채를 인식하여 신원을 알아내는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안구이식을 받고,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거미처럼 생긴 로봇이 수술 직후의 주인공을 추적해서 검사하는 장면, 그리고 멀티터치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등으로 묘사된 도시의 모습 등은 실제로 현재의 IT기술 발전을 미리 보여준 장면으로 널리 회자된다. 

최근에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나노기술은 어떤가? 모두들 나노기술의 장밋빛 미래와 인간이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제들을 풀어낼 결정적인 기술로 추앙하고 있지만, 여기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던지는 인물들도 있다. 코넬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고, 탄소 나노튜브 기술의 대가인 폴 맥퀜(Paul McEuen) 교수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2011년 발매된 SF소설 <스파이럴(Spiral)>을 통해 나노기술이 곰팡이나 생물학적 무기에 결합되어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기술보다 무서운 대량살상무기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최근 헐리우드에서 판권을 구입하여 영화로도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보통 자신들의 학문적 열정은 높지만 대중과의 소통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다양한 스토리는 실제로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쉽게 풀어낸 이야기는 사회학이나 인문학, 윤리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 그리고 일반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가져올 희망찬 이야기와 혹시 있을 수 있는 커다란 부작용을 인지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망찬 미래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 수 있고, 기업이나 일반대중들도 여기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으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미리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와 미디어의 힘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런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좀더 많이 나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SF소설과 영화가 아닌가 싶다. 스토리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과학기술자들이 많이들 SF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를 통해 미래세대들에게 과학기술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이 과학기술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다 멋진 인류의 미래를 위해 힘을 쓸 수 있는 꿈을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설득력 있는 스토리들은 실제로 그것을 꿈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실체화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예측이나 스토리로 생각되었던 것이 사람들을 움직여 미래를 바꾸는 힘으로 동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과학입국 정책과 일본 등에서 수입되었던 "마징가Z"이하 무수한 로봇과 과학기술 만화영화들은 "로보트태권V"와 같은 우리나라 만화영화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 이상으로 그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이끌면서 수십 년 전의 과학기술후진국을 현재와 같은 과학기술강국으로 부상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아이들과 학생들, 젊은이들에게도 그런 미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물론 "과학기술자들의 중장기적인 삶의 안정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말에 분명히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토리텔러들과 과학기술을 문화의 차원에서 발전시키는 노력이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자리의 창출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과학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문제에 일정정도 해답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크리스틴 피터슨(Christine Peterson)이 남긴 유명한 명언을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미래의 일을 바라볼 때에 만약 그것이 SF 소설같이 느껴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그것이 SF 소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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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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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뉴스나 신문 등을 보고 있으면 어떤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로 인해 혜택을 받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간혹 소개된다. 예를 들어, "첨단의 새로운 진단기술이 개발되었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서 과거라면 몰랐을 우리 어머니의 조기암을 진단하는데 성공해서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거나 과거라면 치료가 불가능했을 질병을 첨단 의료기기의 도움으로 치료를 하게 되었다는 것 등의 이야기 등이다.

과학에서는 이와 같은 하나하나의 사건을 일회성 증거(anecdotal evidence)라고 해서, 하나의 사건 자체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런 증거가 모여서 일종의 시리즈가 되고, 여기에 객관성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제어기법이 들어가면서 그 증거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많은 데이터를 이용한 통계적 분석을 이용해서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주관적일 수 있는 일회성 증거보다는 객관성을 갖춘 높은 수준의 객관적인 증거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학연구의 본질과도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객관적인 과학적인 증거만 중요시한 나머지 지나치게 스토리와 감성, 그리고 사회의 반응을 무시하는 과학적 태도가 반드시 좋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학과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는 그래서 항상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이 비록 매우 메마르고 딱딱한 특징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표현하고 사회와 호흡하는 것과 관련한 부분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과학기술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도, 특정 과학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 등에 대해서 사회가 이해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과 같은 사회와의 소통은 무척이나 과학기술의 미래에 있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둔감한 듯하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이런 노력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못해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 폐쇄성이 어쩌면 과학기술이 다른 학문들과 본질적인 융합을 시도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JAMA(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11년 11월 9일판에는 Zachary Meisel과 Jason Karlawish의 "Narrative vs Evidence-Based Medicine—And, Not Or"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렸다. 이 에세이에서 저자들은 "스토리가 어떻게 개개인들이 증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해 핵심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저자들이 스토리가 얼마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증거만 매우 딱딱한 어조로 제시하고, 진짜 사람들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과학기술은 그 찬란할 수도 있는 업적을 어쩌면 너무 퇴색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디자인을 입히지 않은 기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듯 말이다.
 
강한 스토리는 객관적인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의 최대 약점은 그것이 발표되는 순간 인간들의 행동변화를 일으켜서 실제로 그 때까지는 옳았던 진실조차도 변경할 수 있다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행동패턴을 포함한 가정이 객관적인 검증의 도구를 이용해서 객관화가 되었을 때 이것이 진실의 가능성이 높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사실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행동패턴에 변화를 주거나, 과학적으로 발견한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에 과학은 무력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스토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에 영향을 주고, 이를 통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술을 이용하여 조기검진을 통해 암을 극복한 사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것이 사람들의 조기검진에 대한 다양한 태도변화를 일으킨다면 상당히 많은 연구결과의 예측치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연구방법론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딱딱함과 메마름을 너무 찬양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UX에 대한 과소평가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의학의 진단기술이 발전하여 비침습적인 신기술이 바늘을 찔러서 생검을 하는 것과 유사하거나 조금 못한 결과가 나온 경우가 있다고 하자. 생검이 주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쉽게 정량화를 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사회심리학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사실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데, 이에 대한 가중치는 얼마나 줄 것인가? 그리고, 비침습적인 신기술이 기존에 잘 알려진 방법에 비해 조금 못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우리는 이를 배척할 수 있는 것일까?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포함한 일반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경험하고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까? 과연 이들의 선택에 앞서 메마르고 딱딱한 감성을 지닌 과학자들이 "객관적 증거"를 앞세워 모든 결론을 내리는 행위는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기술 연구방법론과 과학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신화적인 믿음에 대해서 한 번쯤은 뒤돌아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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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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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과학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찾아내고, 그 유효성을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이 세상을 보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체계적인 접근방법이 되려 자유로운 생각의 전파를 막고, 혁신을 가로막는 도그마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특히 논문발표 시스템은 국제적으로 정말 말도 안되는 자금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떤 국가에서든 과학연구는 대체로 일부 시장에서 도움이 되는 것들은 기업에서 연구자금을 들여서 진행하지만, 국가의 자금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다.  연구에 소요된 이런 자금들은 최종적으로 피어리뷰(peer review)를 거쳐서 유명한 과학잡지에 출판하는 것으로 그 빛을 보게 되는데, 이런 잡지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들이 하는 것은 편집과 관련한 자질구레한 조언과 관련되는 여러 과학자들을 엮어서 상호검증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과한 논문을 인쇄하거나 인터넷을 통해서 구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에 비용이 발생하므로, 여기에 돈을 지불하는 것 자체는 문제삼지 않기로 하자.  그렇지만, 결국 자금은 국민들의 손에서 나와서 연구과정을 통해 산출된 결과가 지적재산권의 형태로 이런 출판사들이 가지게 되며, 이들이 가진 연구의 산출물은 국민들을 포함해서 연구를 위해 자금을 집행한 곳들도 모두 접근을 위해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것은 없을지 몰라도 이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들의 경우(정부도 마찬가지이다. 평가시스템을 그렇게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톰슨의 SCI 지표를 이용해서 모든 것을 정량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아카데믹 출판사들은 날이 갈수록 강성해지고 있으며, 여기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기 위해서 일반 개인들은 물론이고 대학이나 각종 연구기관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기는 커녕, 우리나라는 이를 더욱 강화할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몰아가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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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 과학 논문 출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논문의 발표체제가 확립된 것은 17세기 유럽이다.  무려 4백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시스템을, 어찌보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과학 논문을 실어주는 저널들이나 잡지는 과학자들이 학문에 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리고, 매년 학회를 통해 서로의 연구성과를 교환하고 비평과 토론의 장으로 활용을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간행물의 발간은 운영과 자본의 측면에서 꽤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현대적인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 이러한 전통적인 과학논문 발표 및 공유의 프로세스가 웹 2.0 시대에 어울릴까?  이제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방식의 과학연구 프로세스를 무너뜨리고 협업을 통한 실질적인 성취에 중점을 둔 접근을 중시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PLoS One과 같이 개방형 접근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과학논문 출판의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뭉치고 있지만, 여전히 황당한 평가지표 때문에 이런 혁신은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소한 정부자금을 통해서 연구가 진행된 것들이라면 국민들을 포함해서 누구나 그 연구결과를 알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또 다른 혁신과 발전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본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두어야지, 수백 년된 낡은 글로벌 과학출판사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도록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나 최근에는 팝사이언스(Pop-Science)라고 해서 일반 대중들도 과학연구에 동참해서 많은 과학적 성과를 내도록 하고,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과학자들이 쌓아올린 연구성과에 보다 쉽게 접근을 해서 연구결과를 계승발전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적, 사회적 역량의 측면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는 반드시 과학자들이 아니더라도, 신문의 기자들, 초중고등학교의 선생님들, 심지어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도 관심이 있는 과학논문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쉽게 논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풀어주고 사회적인 함의를 알기 쉽게 전달해주는 블로그나 매체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있음에도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과학계가 여전히 가장 보수적인 시스템에서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솔직히 대학의 교수들이나 연구자들도 여력만 된다면 자신들의 연구과정이나 연구성과 등을 알기쉬운 글로 블로그에 올리고, 데이터나 코드 등도 공개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른 연구를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결정은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의 내용을 알고, 재현을 해보고, 그에 대한 댓글을 달아서 해당되는 과학적인 발견이나 발명이 더욱 견고해지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연구들이 새롭게 진행이 되는 그런 프로세스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되려 이런 프로세스를 방해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아니 전 세계 과학계의 꽉 막힌 시각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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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청년의사에 동시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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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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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래의 교육과 관련하여 다양한 웹 2.0 도구를 가지고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시도했던 팀 발로우(Tim Barlow)라는 강사의 생생한 체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문은 일기와도 같이 장문의 체험기로 되어 있는데, 이 포스트 참고자료에 링크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팀 발로우는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St. Leonard's College의 과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처음 블로그를 가지고 시도를 했던 웹 2.0 방식의 교육은 실패를 하였다. 블로그에 몇 가지 콘텐츠를 올리고, 숙제 등을 내 주었지만, 인터넷에 콘텐츠가 많이 있는데 그의 블로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가끔 숙제를 알아보기 위해서 들르는 학생 들이 있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인터넷에 볼거리와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굳이 이 블로그를 들르는 학생 들이 어찌 보면 이상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블로그로 소통을 시도하다.

그 다음 단계로 팀 발로우가 선택한 방법은 자신들의 평가를 위해 블로그를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Life Long Learning"이라는 제목의 과학교육과 관련한 교육 유닛을 9개 만들면서 학생들에게 몇 가지 선택권을 주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실습을 하며, 과제를 할 수 있는지 선택할 수 있다. 처음 블로그를 시도했을 떄와는 달리, 그의 이런 방식의 접근방법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연구를 선택하고, 직접 동기부여를 하는 방식은 학생들의 추가적인 열의도 자극을 해서 원래 계획되었던 유닛들 이상으로 공부를 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가 기본적으로 블로그에 구축한 내용은 과학 교과과정에 대한 표준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 자체에는 차이가 없었다. 다만, 블로그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댓글을 달고, 쌍방향으로 쉽게 상호작용할 수 있었던 점도 커다란 변화였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재미를 자극하고, 열정을 불러일으킨 점이 가장 커다란 성공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팀 발로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학생들이 평가를 받기 위해 배움을 강제당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수업은 교실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물론 평가와 성적표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것이 학교생활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는 학생들이 단지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공부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팀 발로우는 2007년 내적 동기만으로 공부를 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블로그를 학생들이 들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수업과는 별도로 원하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들르도록 소개하였고, 평가나 성적과의 어떠한 연계방식도 배제하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들이 올 수 있도록 자신의 블로그를 재미있는 콘텐츠로 채우기 시작하였고, 매번 들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 하였다.


유명 블로그의 탄생

이렇게 해서 'Mr. Barlow's Weblog: A Bunch of Interesting Stuff' 라는 재미있는 과학 블로그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는 과학과 관련한 재미있는 사실이나 사연들을 찾아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였는데, Nature, National Geographic, New Scientist, Scientific American, The Age, Engadget 등의 사이트를 매일 들르면서 괜찮은 내용들을 골라서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짧게 요약한 글과 함께 원문의 링크를 달아서 게재하기 시작하였다.  이 블로그는 학생들도 관심을 가졌지만, 더 나아가서는 과학에 관심을 가진 많은 외부의 사람들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과학 블로그로 성장하게 된다.

학생들은 그의 블로그에서 본 재미있는 내용을 읽고 와서 그와 즐거운 토론이나 대화를 하였고, 심지어는 외부의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대화에 참여하면서 이곳이 건전하고도 재미있는 과학 토론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07년 6월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16명의 학생들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더니 75명이 블로그를 방문했다고 한다. 7월에는 3개 반에 더 알려주었더나 285명이 방문을 하였다. 그러더니, 8월에는 430명, 12월에는 1502명이 방문하면서 계속 방문자가 증가하였다. 그의 꾸준함과 진정성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런 성공에 용기를 얻어,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아이팟에 올릴 수 있는 팟캐스트도 제작을 해서 파일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이 역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팀 발로우의 사례는 주로 블로그와 팟캐스트라는 웹 2.0 기술 중에서 비교적 제한적인 도구를 활용했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와 같은 다른 도구들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더욱 입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웹 2.0 기술은 학생들이나 선생님 모두에게 창조적인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고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단순히 교과과정에 있는 것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합심해서 최신의 학문을 토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또한, 이런 열정을 가지게 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교과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기 쉬울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열정과 흥미를 유도하고, 본인들이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웹 2.0 기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Web 2.0: creating a classroom without w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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