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FastCompany.com



한 때에는 대학졸업장이 안정된 직장과 사회생활을 보장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학진학하는 비율이 적었고, 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을 하고 있었던 20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이런 믿음은 뿌리가 깊었다. 대학의 서열도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였고, 공부만 잘하면 어느 대학과 어느 과에 가서 그 다음에 가는 직장과 하는 일 등을 거의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과거의 기억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인생을 공부지상주의로 내몰게 되었고, 무엇이 어떻게 되든 일단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가는 것이 부모와 아이 모두의 공통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렇게 공부만해서 좋은 성적을 가지게 되고, 대학을 진학해도 소위 말하는 좋은 직업과 직장을 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스펙을 쌓고, 좋은 직장에 가더라도 언제 그 직장이 망한다는 뉴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직장이 망하지 않아도, 80세 이상 살 수 있는 시대에 40대 후반이면 벌써 왠만한 직장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게 되는 상황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으며, 그 동안 따뜻한 온실에서 살다가 갑자기 들판에 나온 식물처럼 바뀐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생의 하반기를 맞게 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한 마디로 세상이 달라져 버렸다. 미국도 이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고 하는데, 25세 이하 대학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매우 낮은 급료를 주는 임시직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대학의 등록금이 너무 높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고 있으며, 고등교육의 위기론까지 외치는 상황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아마도 일부는 더욱 심한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과 취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또 하나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있다. 최근 스타트업 붐을 타고 야심차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자 창업을 한 친구들이다. 처음부터 아이디어가 안 좋았거나, 창업팀의 능력이 부족해서 얼마가지 않아서 창업을 포기하는 경우는 논외로 하자. 이들도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다. 일차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더욱 발전하려면 우수한 인재들이 수혈되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가진 불안정성과 외부의 시선은 우수한 인재들이 이런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으며, 그렇게 스타트업들이 고질적인 인재의 부족현상에 시달린다면 결국 유망했던 곳들 조차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하는 그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안 좋은 상황을 절묘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최근 미국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중에 벤치마킹할 만한 좋은 사례가 있어서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엔스티튜트([E]nstitute)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지역사회의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학생들이 지원하고 스타트업을 경험하면서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도 없애고, 실제로 능력도 인정받으면서 스타트업과 같이 성장하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졸업하고 어떤 일자리를 얻는다는 개념보다는 앞으로 미래사회에 필요한 실전적인 경험을 교육받고 경험도 하게 된다. 


기업의 인사부서에서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으로 인해 대학졸업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적잖게 실망하고, 되려 2개의 스타트업과 협업을 하면서 그곳의 젊은 학생이나 인턴들이 너무나 스마트하다는 것을 경험한 이 프로그램의 기안자들은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2년짜리 고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학력과 관계없이 18~24세의 젊은이들의 지원을 받아서 유망한 스타트업들에게 연결시켜주는 것인데, 이들과 연결된 스타트업들은 인터넷 주소를 단축시키는 서비스로 다양한 마케팅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는 Bit.ly, 남성용 라이스프타일 가이드로 유명한 Thrillist, 개인들의 자산투자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Betterment 등이다. 이들은 각각 15명의 인원을 뽑았는데, 여기에 지원한 지원자가 500명이 넘었다. 뽑힌 이들은 풀타임으로 후보 스타트업 중의 하나에서 일을 시작하며, 2차년도에는 자신들이 일할 스타트업을 바꿔서 1년을 더 일할 기회를 준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 동안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같이 시행하는데, 보고서 프로젝트나 강의, 매주 전문가들과의 저녁식사 등도 병행하기 때문에 실전 고등교육의 의미도 가진다. 이 프로그램의 수업료는 없으며, 기숙사와 적은 생활비 수준의 장학금도 지급한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엔스티튜트는 백만 달러 정도의 기금을 다양한 비영리재단과 기업, 기부자들에게서 모았다고 한다. 


현재 엔스티튜트와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을 상호교환 수련시키는 협력관계를 맺은 스타트업은 35개로 이들은 미래의 직원들이 될 수 있는 뛰어난 인재들을 일찌감치 컨택할 수 있으며, 이들이 뛰어난 인재들로 2년간 성장해 감에 따라 사회전체의 역량도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엔스티튜트는 뉴욕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수련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계획 중이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인재들이 길러지고, 이들도 스타트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미래의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며, 결국에는 의미있는 취업과 개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대한 결과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인턴 지원제도 등이 있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지원보다 이렇게 의미있는 교육과 수련을 전제로 유망한 스타트업들과 인재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조금은 관리가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민간에서 나와준다면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잘 맞지 않을까? 정부가 모든 것을 하기 보다는 좋은 프로그램과 헌신적인 생각을 가진 이런 비영리단체 또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고등교육 기관의 등장이 필요하고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정책을 고민할 시점이다.



참고자료:


[E]nstitute's Apprenticeships Give You Skills You Can't Pick Up In A Class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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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NYTimes.com



2012년 1월 5일자 뉴욕타임즈에 다소 선정적인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제목은 "직업을 원한다면 대학을 가라, 그런데 건축은 전공하지 말라 (Want a Job? Go to College, and Don’t Major in Architecture)" 였다. 기사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나온 리포트의 전공과 실업률을 비교한 데이터를 근거로 작성되었는데, 예술이나 사회학 등과 같은 기술기반이 아닌 전공이나 기술기반이라도 건축학의 경우 실업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우리나라의 이공계 전공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일견 수긍이 될 수 있는 기사가 아닌가 싶다. 다만 이 기사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춰서 각색한다면 아마도 "직업을 원한다면 전문직을 얻을 수 있는 대학전공이나 고시를 준비해라. 나머지는 허당이다" 정도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단기 실업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보편적인 고등교육과 전문적인 고등교육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건축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인문학, 예술, 사회학 등과 같이 보편적이고 넓은 범위의 전공에 비해 명확한 직업의 경로가 있고, 커다란 고민을 하지 않아도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무척 많다. 일단 사회학, 정치학, 인문학, 예술 등을 전공하고도 여러 전문직이나 기업가 등이 된 사람들도 많다. 아직 우리나라는 대학전공이 곧 직업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에는 인문학적인 기초를 가지고,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 새로운 공부를 해서 훌륭한 커리어를 갖춘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그들에 대한 평가도 좋거니와 인생에서의 만족도도 무척이나 높다.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고, 아름다움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남의 말과 글을 듣고 읽어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을 닦은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전문분야에서 더욱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은 굳이 데이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에 비해 과학과 공학, 의학 등을 전공하면 아무래도 특정한 직업군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는데에는 유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면허'라는 규제에 의해 보호를 받는 일무 전문직을 제외하면 (그 면허라는 규제도 앞으로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른다), 기술직의 경우 오늘날과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에 있어 대학에서 전공하고, 현업에서 일부 경력을 쌓았다고 해서 길고 긴 인생의 장기레이스에서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의과대학의 예를 들면 졸업하면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보수는 어떤지 등을 따져서 전문의를 딸 전공과목을 선택하는데, 보통 제일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이 당시 가장 소위 잘 나가는 과에 가게 된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당시 제일 인기가 좋았던 과목이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가장 박봉에 근무환경이 열악한 과목으로 바뀌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물며 20~30년을 놓고 봐야하는 인생은 오죽 하겠는가? 간혹 블로그에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지만, 과거 100년을 놓고 보면 아예 없던 직업이 생겨난 것이 전체의 50%를 넘고, 많은 사람들이 일했던 여러 직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이 또한 50%가 넘는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무슨 직업을 바로 가질 수 있는 그런 전공이 유리해 보이지만,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추가적인 공부를 통해 자신의 인생경로를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 보편타당한 다양한 학식을 쌓고, 이를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이런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 유리한 것이 아닐까?



고등교육은 어째서 필요한가?


워낙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많이 쓰다보니 최근들어 이에 대한 반론을 듣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약간의 해명도 필요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고등교육의 위기와 혁신을 이야기한 이유는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이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주객전도가 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대학과 고등교육이 먼저 존재하고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사회적 필요가 있어야 그 존재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어째서 고등교육이 필요한 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언제나 그렇듯이, 연구를 위한 대학의 역할은 또 다른 이야기다).


고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교육받는 내용 그 자체와 학생 및 동문, 그리고 교수 등과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만들어 지는 점, 그리고 권위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교육의 컨텐츠 부분은 이제 정말 고등교육의 존재이유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시기로 가는 듯하다. 그렇지만, 아마도 일류대학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 사회적 네트워크와 권위라는 것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등교육의 필요성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소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대학들은 앞으로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약간 오늘의 주제에서 벗어났는데, 중요한 것은 일부의 통계와 자료가 사람들에게 그릇된 생각과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특정 전공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만한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굉장히 다채롭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행복을 찾아나선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행복을 선사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우리의 의/식/주, 그리고 즐거움과 연관된 산업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그런 길을 걸어가기 위해 소통의 능력을 연마하고, 지식을 꾸준히 습득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사랑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을 결합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면 언젠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Want a Job? Go to College, and Don’t Major i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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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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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의 주된 투자자로 유명한 피터 티엘(Peter Thiel)이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인터넷 버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엉뚱하게도 고등교육 버블이 더욱 커다란 문제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2000년에 인터넷 버블이 터지는 시점을 예측하였고, 그 이후 모기지에 의한 주택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것도 적기에 예측한 경력이 있어서 그의 말이 어찌보면 더욱 화제가 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번의 버블 발언은 아마도 금방 터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말대로 여전히 지속적인 거대한 버블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의견에 100% 공감하면서, 앞으로 고등교육과 사회에서의 고등교육의 가치에 대하여 새롭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변화의 쓰나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태가 근미래에 닥칠 수 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근본적인 고민은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과 대학원을 왜 가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과거의 블로그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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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 논문과 연구의 망령에 사로잡힌 대학을 구하라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이름있는 대학을 가서 내가 어디를 졸업했다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개인 브랜드의 강화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말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서 일 것이다.  첫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은 사실 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어느 정도 감내가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다니는 또는 졸업한 학교의 브랜드가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랭킹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결국 대학을 왜 가는가? 과거의 경험상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좋고,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사회지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봉이나 대우 등도 더욱 좋다는 것에 근거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과거의 근거와 해당 근거가 과도한 믿음으로 이어질 때 언제나 거품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한 거품상황도, 집값이 꾸준히 상승해서 언제나 자산가치가 늘어나게 된다는 과도한 믿음에 따라 실질가치와의 격차가 지나치게 커짐으로써 결국 거품이 되어 터지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과 좋은 학벌이 사회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한다는 믿음으로 인하여 어렸을 때부터 쌓아올린 경험과 포트폴리오 등의 가치가 과소평가되면서 그 사람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과 학벌과의 격차나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버블이 터지게 되는 시점은 어느 학교 출신이라거나,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가 나오지 않고, 장기적으로 그 사람들의 성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이런 믿음은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있는 고등교육 기관들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자원의 비용은 지나치게 크다. 모두가 대학교수가 될 수도 없고, 연구 만을 위해 자원이 투입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더 나아가서는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대중과학이나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열정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적인 연구도 많이 해 나갈 수 있고, 그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가고 효율이 높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대해져 버린 비정상적인 공룡 고등교육 자원에 끊임없이 커다란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비정상적인 거품은 터지게 되어 있고, 현실에서 더 나은 대안이 나오게 될 때 급격한 이동은 시작될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이 신분상승과 더 나은 삶에 대한 보증수표가 아님을 감지하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되는 순간 고등교육 체계의 비효율성은 마치 사상누각과도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대안적인 움직임으로 뉴욕의 Sts. Philip and James 중학교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마이크로인턴(Microintern) 제도는 매우 신선하다는 생각이다. 원하는 중학생들이 실제로 창업을 한 유망한 스타트업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면서, 기업가 정신도 배우고 실제로 사회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세상에 대해서 이해하는 작업이 일찌감치 시작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 웹 사이트의 잘못된 메시지나 그림 등을 교정하거나, 실제로 올라가는 글과 그림, 동영상 등을 만들어 보기도 하며, 브레인스토밍 과정에 참여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친구는 테스트용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현 단계에서는 비록 하루~이틀 정도의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짧은 경험을 통해서도 어떻게 이런 회사들이 돌아가고 있는지 엘리베이터 스피치(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동안 이야기하는 것)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배움을 가지고 돌아간다. 또한, 좋은 아이디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강한 팀과 똑똑한 동료들을 잘 만나서 엮어내고 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소중한 교훈도 얻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능력에 맞는 사업을 향후에 시작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떠난다고 한다.

아마도 앞으로 이와 같이 사회적인 가치를 많이 만들어 볼 수 있는 배움과 협업, 그리고 경험의 기회는 점차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재의 "고등교육"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심화될 것이다. 결국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이 탄생하거나, 기존의 교육 시스템의 변신을 사회에 맞게 진행할 수 있는 곳이 더욱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과도한 고등교육 거품과 학생들에 대한 압박도 많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Peter Thiel: We’re in a Bubble and It’s Not the Internet. It’s Higher Education
The MicroInterns: Middle-Schoolers Visit TechStars, Get a Lesson in Startup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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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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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퀸즈 대학의 석좌교수인 앤드류 해커(Andrew Hacker)와 뉴욕타임즈의 클라우디아 드레퍼스(Claudia Dreifus)가 최근 "Higher Education? How Colleges Are Wasting Our Money and Failing Our Kids---and What We Can Do About It" 라는 논란의 중심이 되는 책을 내놓았다. 제목을 해석하자면 "고등교육? 어떻게 대학이 우리의 돈을 낭비하고 아이들을 실패자로 만드는가 --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도가 되는데, 제목자체가 상당히 논란거리이다.

두 공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학의 존재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대학이 "고등교육"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두 단어인 "고등(higher)"과 "교육(education)" 모두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이 가르치는 것과 인문학 중심의 소양교육을 포함한 수련보다는 모든 교수 인력들을 연구중심으로 몰고 가고 있는데, 어떤 교수가 가르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고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그는 테뉴어(tenure)라고 불리는 정년보장에 대한 시스템에도 반기를 든다. 물론 이 제도가 지식과 지성에 대한 자유를 지켜주며, 교수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좋은 취지를 가진 것이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교수들이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시간을 덜 쓰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더 높은 등록금을 낼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대학에서 별로 배우지도 못하고 사회에 커다란 기여도 하고 있지 못하며, 시간만 축내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언론들도 칼텍이나 MIT, 스탠포드 대학 등의 교수들이 내놓은 연구논문이나 그들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초점을 맞출 뿐, 학부생이나 대학원 생들에 대한 교육의 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학생들의 고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학을 왜 갈까?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이름있는 대학을 가서 내가 어디를 졸업했다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개인 브랜드의 강화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말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서 일 것이다.  첫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은 사실 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어느 정도 감내가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다니는 또는 졸업한 학교의 브랜드가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랭킹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말로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을 원할 것이다.  

오레곤 주에 있는 린필드 대학(Linfiedl College)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는 매우 작은 도시에 위치하였지만, 이곳의 교수들은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정말 좋은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교육이 정말 좋은 몇몇 작은 대학교들이 있다. 이 학교의 교수들은 도대체 뭐가 다르길래 이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는 것일까?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연구에 대한 부담을 전혀 지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고,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어떤 교수들은 자신의 시간을 거의 대부분 연구를 하는데 소모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은 뒷전이다.  이런 경우에 학생들의 등록금은 결국 교수들의 연구지원을 하는데 쓰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연구소를 만들어야지 어째서 대학에서 이런 것을 지원해야 하는가?  이것은 어찌보면 핵심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연구중심의 풍토가 지나친 연구로 이어지고, 사회의 효율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연구성과 위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으니, 대학들은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만 강요하고, 교수들은 여기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논문들이 나오고 있으니, 다른 학교 교수들보다 더 많은 논문을 써야하고, 이런 부담의 악순환은 미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학시스템과 교수들도 병들게 만들고 있다.  과연 그렇게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인가?  실제로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정말 학문적인 열정을 가지고 수행하는 연구의 적정선은 어디인가?  현재의 시스템은 대학이라는 곳 전체의 사회적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뉴어와 논문, 그리고 교육의 상관관계

대학교수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인생에 있어서의 관문으로 테뉴어 (우리말로는 영년교수직) 심사라는 것이 있다.  한 마디로 교수의 정년을 보장하는 것인데, 보통 우수한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이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수임용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 심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탈락하면 매해 평가를 받아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테뉴어 심사 이전의 젊은 교수들이 유수의 논문지에 논문을 내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젊은 교수들은 이미 자발성을 잃은 셈이다.  모든 것은 테뉴어를 통과하기 위한 실적 쌓기에 집중하라고 시스템은 요구하고 있고, 이는 지성의 자유를 억압한다.  상아탑의 자율성을 위해 도입한 테뉴어 제도가 되려 젊고 유능한 교수들의 가장 황금과 같은 시기를 자율성을 억압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테뉴어를 획득한 교수들은 어떤가?  이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많지만, 일반적인 정서는 그렇게 흐를 수 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니까 ... 특히 이런 지위를 확보한 교수들은 대학 시스템의 변화에 결사적으로 막을 것이고,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보니 언강생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과 같이 급격한 변화가 있는 시기에, 대학은 날이 갈수록 노쇠화하고, 가장 보수적이고 새로운 피의 수혈은 되지 않는 시스템이 이어진다면, 과연 대학이라는 곳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게 될까?  대학의 시스템이 아닌 다른 "고등교육" 시스템에 의해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과장이 될까?
  
가르치는 것과 연구는 또 별개다. 대학에서 연구를 중시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브랜드 파워이다. 어떤 교수가 어떤 유명한 논문을 냈다는 것은 뉴스가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브랜드를 인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제자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치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효과의 측정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일종의 산업으로 본다면 대학에서는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연구활동에 방점을 찍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실적이 우수한 교수들은 가능하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연구는 열심히 해도 가르치는 것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가치와 인문학

이제는 작고했지만, 코넬 대학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칼 세이건(Carl Sagan)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가 관여한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Cosmos)와 동명의 책을 사서 탐독을 하면서 과학자로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는 연구자라기 보다는 바깥 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학생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와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유쾌하고, 자신의 지식을 쉽게 설명하는 기술이 있었으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고, 연구영역에서도 탁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쌓은 사회적인 가치는 우수한 논문을 많이 낸 교수들의 그것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강의 및 수련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취업을 우선시하다 보니, 모두가 전공과목과 당장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여기에 맞춰서 자꾸 변신을 하고, 취업률을 또 하나의 평가잣대로 삼아 열심히 홍보를 한다.  소위 일류대학이 아니라면, 여기가 공략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은 알량한 몇가지 전문지식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사고하며, 사회를 고민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과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적인 지식만 쌓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대학 1~2학년 시절의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사회에 대한 적응력 및 변화를 느끼는 작업이 무척 중요한데도 이런 부분은 최근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다.


인생은 길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쉽게 90세까지 살 것이고, 어쩌면 젊은 친구들은 10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디자인도 해봐야 한다.  무척이나 급한 것 같지만, 뭐든지 건너뛴 것이 있으면 결국 그만큼 가치의 손실이 있는 법이다.  대학시절 다양한 경험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고민과 친구들과의 우정, 열정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언제 그 일을 해볼 것인가?  우리는 대학에 대한 사회에서의 가치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성지는 너무나 비싸기도 하고,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벽과도 같다. 부모들이 이런 부담을 진다고 해도, 결국 이것은 개인의 부담이나 마찬가지이다. 갈수록 벽을 높게 치고, 여기에서 양육된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세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소위 우리가 매일같이 욕하는 저 북쪽의 지배자 가족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대학도, 학생들도, 그리고 교수들도 모두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도 사회적 책임(Personal Social Responsibility, PSR)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우리의 고등교육 체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혁신이 있어야 한다.  내부혁신이 없다면, 외부에서의 새로운 시스템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과 대학에도 개방형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지나친 규제위주의 정책은 완화하되 사회적 책임은 높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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