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있었던 라스베가스 CES 미팅 최대의 화제작인 팜프리의 발표와 뒤를 이은 아이폰과의 특허분쟁으로 애플과 팜의 자존심 및 감정싸움이 극에 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요 ...  여기에는 애플 아이팟 프로젝트 부분의 총책임자였고 애플의 모든 하드웨어 관련 기술을 책임졌으며, 현재는 팜(Palm)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에 대한 애플의 불편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늘은 아이팟을 대성공 시키고 아이폰이 탄생할 수 있었던 토양을 마련한 장본인이지만, 지금은 최대의 경쟁사에서 애플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존 루빈스타인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합니다.

관련글: 2009/01/23 - 점입가경의 아이폰과 팜프리의 전쟁, 특허분쟁으로 번지나?
         2009/01/22 - 미국 현지에서 팜프리의 돌풍이 심상치 않습니다.


베테랑 애플 하드웨어 책임자가 아이팟을 책임지다.

2001년 1월 애플은 1억 9,500만 달러의 손실을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뒤 기록한 기록적인 손실이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이 다시 PC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전체적인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것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MP3 기기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애플보다 되려 우리나라의 아이리버나 미국에서도 작은 벤처기업들이 먼저 시작한 분야입니다.  애플은 MP3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사운드잼 MP라는 음악재생기의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이 기기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던 제프 로빈(Jeff Robin)이라는 엔지니어를 영입합니다.  제프 로빈의 활약으로 음악과 관련한 애플의 플랫폼이 되는 아이튠즈(iTunes)를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발표하고 뒤를 이어 하드웨어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 바로 10년 이상 애플의 하드웨어 사업을 이끌었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새로운 음악재생기 사업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잡스가 애플을 떠나 설립했던 넥스트(NeXT)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를 하면서 존 루빈스타인도 자연스럽게 애플에 합류를 하면서 애플 하드웨어 개발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2004년이 되면서 애플은 아이팟 부문과 매킨토시 부문을 분리하게 되는데,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 부분의 총책임자가 됩니다. 


애플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한 카리스마

1997년 애플에 합류하자 마자 루빈스타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라인과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하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애플은 15가지가 넘는 제품들을 각각의 독립적인 개발 프로세스와 생산라인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복수의 개발팀은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았고, 각각의 부품들은 공통적인 요소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중구난방이었던 개발 프로세스와 제품생산과 관련한 프로세스를 완전히 정리합니다.  제품의 연구개발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절반 가까이 절감합니다. 

1998년에는 애플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인 아이맥이 선을 보입니다.  루빈스타인은 아이맥 하드웨어 부분을 총괄하면서 11개월 만에 출시할 수 있는 제품개발 완료를 하는 괴력을 보입니다.  이는 과거의 애플 개발진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엄청난 속도였다고 합니다.  단순히 몇 개의 옵션이나 주변기기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USB를 중심으로한 주변기기 표준의 변경, 플로피 디스크를 없애는 등의 굵직한 혁신을 만들어낸 제품인 아이맥은 조너던 아이브와 존 루빈스타인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팟 성공의 열쇠가 된 초소형 HDD와 스크롤 휠

아이팟의 하드웨어를 고민하던 존 루빈스타인이 "빙고"를 외치게 된 사건은 일본에서 벌어집니다.  2001년 2월 도쿄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 참가하던 그는 매킨토시 HDD를 공급하는 업체인 도시바(Toshiba)를 방문했다가 1.8인치 HDD를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노트북에 집어넣은 HDD도 2.5인치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도시바 조차도 이렇게 작은 HDD를 어디에 쓸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이를 보는 순간 바로 새로운 아이팟에 대한 감을 잡았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팟의 하드웨어 디자인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드웨어 디자인을 위해 필립스와 제너럴 매직의 휴대용 기기 제작으로 유명한 엔지니어인 토니 파델(Tony Fadell)을 고용하고, 아이팟 팀을 구성했는데 이 팀은 철저히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초소형 HDD가 기본을 제공했다면, 아이팟을 다른 제품과 차별화시킨 스크롤 휠은 의외로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가 제안한 것입니다.  사실 단순해 보이지만 참신한 인상을 준 이 스크롤 휠 아이디어는 아이팟 성공의 가장 큰 효자가 되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단순히 아이팟을 단일기기로 성공시키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아이팟에 의한 2차시장과 그 생태계의 중요성을 파악한 루빈스타인은 스피커, 충전기, 각종 도킹 포트, 그리고 백업 배터리 등과 같은 수많은 액세서리 마켓을 집중 공략합니다.  이를 통해 구성된 아이팟 생태계는 매년 $10억 달러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팟 제외하고).


영원한 2인자로 있을 것인가? 

이렇게 승승장구했던 존 루빈스타인이 어째서 애플을 떠났을까요?  넥스트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와 함께 했고, 그를 따라 애플을 최고의 기업으로 성공시킨 사나이가 애플을 떠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아이폰(iPhone)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폰의 개발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던 존 루빈스타인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제품의 개념 정립에서부터 세세한 제품개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스티브 잡스의 간섭을 참지 못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폰을 자신의 개념에 맞추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스마트 폰의 형태로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 비전이 스티브 잡스와 달랐습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이폰 개발을 하면서 루빈스타인이 더 이상 잡스의 그늘에서 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애플이라는 선망의 대상 기업에서 1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상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스타일로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팜(Palm)의 중흥을 책임지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의 대성공을 뒤로 하고 2007년 향후 애플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팜(Palm)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2008년 월스트리트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인 엘리베이션 파트너에서 $3억 25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하게 만듭니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엘리베이션 파트너는 팜 프리의 성공을 확신하고 최근 추가로 $1억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애플에서 특허와 관련한 커다란 송사를 치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철저히 대비를 해 놓은 상태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미 팜에서는 특허분쟁을 통해 애플에게 지불해야할 라이센스 비용을 계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년 CES에서 내놓은 팜프리(Palm Pre)는 그의 이러한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역작입니다.  팜이 자랑으로 여기던 운영체제도 리눅스 기반으로 완전히 뜯어고치고, 아이폰 이상의 인터페이스를 선보인 팜프리는 아마도 올해 스마트 폰 전쟁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다크호스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벤처캐피탈에게서 최고의 성공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아직까지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기에 그의 성공을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그가 애플에서 이룩했던 수 많은 전과를 고려할 때 과거 팜이 누렸던 영화를 되찾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많은 이들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경쟁자가 되어 버렸기에 만인의 공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루빈스타인이 꼭 성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과 같은 난세에는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룩하는 영웅이 하나라도 더 나와야 하니까요 ...

마지막으로 CES에 공개되었던 팜 프리의 데모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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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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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5번가의 애플스토어 (Picture by Tony Shi, NY-NJ from Flick)


2001년 애플이 애플스토어 계획을 발표했을때, 세계적인 경제지인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에서는 "Sorry Steve, Here's Why Apple Stores Won't Work,"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으로 애플의 계획을 비난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TheStreet.com의 유명한 컨설턴트인 David Goldstein 역시 애플이 2년 내에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라며 이 계획에 부정적이었죠.  당시 월스트리트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동소이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현재 미국의 고급 쇼핑몰 중에 애플 스토어가 없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애플스토어가 없다면 쇼핑몰의 격이 떨어지는 곳으로 생각될 정도 입니다.  애플스토어의 크기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언제나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매장 문을 열기전에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매장의 분위기는 마치 미래에 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위의 사진과 같이 건물 전체가 아름답게 빛나는 곳들도 있습니다.  제품들은 아무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분위기로 운영됩니다.  보통 매장과 같이 있는 강습장에서는 매일처럼 비디오 편집 강습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애플스토어는 2001년 5월 19일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처음 오픈을 한 이래, 현재까지 소매업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기록적인 성공사례가 되었습니다.  3년만에 연매출 10억 달러를 넘기더니, 2006년 부터는 분기별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이렇나 애플 스토어의 가공할만한 엄청난 성공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애플의 차기 CEO 재목의 하나로 평가받는 론 존슨(Ron Johnson) 입니다.  사실 론 존슨과 그의 전 직장이었던 타겟(Target)의 성공 역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 및 경영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에 향후 따로 포스팅을 준비할 예정입니다만, 오늘은 애플스토어의 성공에 집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애플스토어의 성공을 수치화하면 더욱 놀랍습니다.  2004년 기준으로  Saks가 매장의 평방피트당 $362 달러를 매년 벌어들이고, 가장 유명한 전자소매유통전문점인 베스트바이(Best Buy)가 $930 달러(전자소매점 중 최고), 그리고 다른 업계까지 따져볼 때 Tiffany & Co.가 $2,666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스토어는 얼마나 벌어들일까요?  무려 $4,032 달러입니다.  2004년의 이 수치에 비해 애플스토어가 훨씬 가파른 속도로 매출이 증가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그 이상의 격차로 벌어졌을 것이 확실합니다.


두려웠던 스티브 잡스의 선택은 론 존슨

사실 애플이 애플스토어를 열기로 결정할 무렵, 스티브 잡스는 무척이나 두려웠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의 애플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커다란 대형유통점들의 유통전략에 의해 애플의 제품들이 특별하게 보여질 수 있는 어떤 계기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애플스토어는 이러한 배경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고육책이었고, 이렇게 어려운 문제는 당대 최고의 소매유통 혁신가인 론 존슨이 타겟에서 영입되면서 고스란히 그의 어깨위에 지워지게 되었습니다.

적임자를 찾기 위해 스티브 잡스는 고심의 고심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Gap을 성공시킨 미키 드렉슬러(Mickey Drexler)가 물망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천했고, 본인의 동의까지 얻어서 애플의 이사회 임원으로 선임이 되었습니다.  실무책임자로서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띈 사람이 바로 론 존슨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사람을 보는 눈이 얼마나 탁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론 존슨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모집해서 다양한 가정용품 디자인을 맡기고, 이를 PB 상품으로 판매를 함으로써 타겟이라는 소매유통업체에 디자인을 선도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게 한 장본인입니다.

미키 드렉슬러는 커다란 창고를 빌려서 일단 애플이 만들려고 하는 상점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 마치 제품을 디자인하듯이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래서, 론 존슨은 20개 정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았고 스티브 잡스와 거의 합의를 이루었던 순간, 론 존슨은 태도를 바꿉니다.  컴퓨터가 정보와 음악, 영상 등이 모이는 디지털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는 미래적인 개념이 스토어 디자인에 부족하다고 판단을 하고,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서 완전히 새롭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어찌보면 사업책임자로서 황당한 보고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다시 새롭게 디자인을 하면서 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결국 그들의 결정은 옳았습니다.

론 존슨이 만들려고 했던 것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어 였습니다.  마치 호텔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고, 누구나 호텔에 와서 서비스를 요구하듯이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제품 서비스 영역은 호텔의 컨시어지(Concierge)를 본따서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는 곳으로 디자인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언제나 론 존슨은 "최고의 호텔인 포시즌 호텔(Four Seasons Hotel)처럼 친절한 상점을 창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질문했고, 그의 대한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애플스토어의 명물인 지니어스바(Genius Bar)입니다.


진짜로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지니어스 바

소매유통업에 있어 고객중심이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나오는 구호입니다.  그런데, 지니어스 바처럼 철저히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곳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지니어스 바는 체험훈련과 각종 서비스 및 지원을 하는 곳입니다.  애플의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를 찾아옵니다.  고객들은 직원들과 직접 문제를 같이 해결하였으며, 언제나 친절하고 완벽한 서비스로 애플 제품의 명성을 높여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지니어스 바의 아이디어 역시 스티브 잡스가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론 존슨은 밀어 붙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업계의 서비스 직원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그들이 고객들에게 제대로 서비스할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론 존슨은 그동안 가전제품 판매유통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채용하던 판매수당이라는 것을 없애 버립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매장의 직원들이 판매에 혈안이 되지 않고, 고객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니어스 바의 성공요인은 판매수당을 없애고, 좋은 서비스를 하는 직원들을 평가를 해서 직원들의 지위를 올리는 방식을 사용한 것입니다.  최고의 직원은 "맥 지니어스(Mac Genius)"로 승진이 되거나 매장에 있는 강습소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프리젠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명예와 자부심을 최대한 자극한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을 통해 애플스토어는 고객들이 언제나 부담없이 들러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 최고를 달리게 되었고, 어느덧 첨단 라이프 스타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되었는데, 이러한 애플스토어는 뒤를 이어 소니의 "Sony Style"이나 삼성의 "Samsung Digitall"과 같은 첨단 전자업체들의 소매점 전략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애플스토어는 하이터치 시대의 성공사례

컴퓨터 회사들이 대형 유통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전화 등을 통해 AS를 한다는 상식을 완전히 깨버린 애플스토어의 발상은 정말 파격적 이었습니다.  론 존슨은 스스로 애플스토어가 바로 "하이터치 시대의 성공사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파는 것은 맞지만, 결국 고객은 사람이고 훌륭한 고객서비스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물건을 팔 수 없다는 매우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첨단기술의 세계에 하이터치가 존재하고, 이러한 하이터치를 최대한 이용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 냈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론 존슨 ...  애플의 성공은 한두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Apple: America's best retailer by Jerry Useem
Apple, a Success at Stores, Bets Big on Fifth Avenue by STEVE LOHR
Apple Store strategy: “Position, permission, probe” by Kon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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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애플 로고를 현대적으로 ...  (Picture by Alistair Israel from Flickr)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피카소가 한 유명한 말 중에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피카소 만큼이나 많이 인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기술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 보다는, 위대한 기술을 한 눈에 알아차리고 이를 가지고 와서 성공을 시키는 것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기술을 무수히 만들어 낸 제록스 PARC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만, 결국 아무리 우수한 기술도 이를 발굴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연구실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애플이라는 기업은 그들의 회사 이름처럼 씨앗이 되는 기술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해준 나무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연관글:  2009/03/24 - 최고의 연구소였지만, 사업은 실패한 제록스 파크

스티브 잡스가 팔로알토의 제록스 연구소에서 Alto를 본 순간, 그는 조만간 모든 컴퓨터가 GUI를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애플로 돌아와서는 바로 이를 상용화하는데 매진하게 됩니다.  같은 기술을 본 제록스의 경영진들은 수십 차례나 데모를 했음에도 그 기술이 가진 혁신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GUI 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단순한 컴퓨터와의 인터페이스 수준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가전기기 및 모바일 인터페이스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인터페이스 혁신을 이루어낸 USB 기술 역시 애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전세계에 퍼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USB를 처음 고안한 회사는 바로 인텔(Intel)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채택이 되지 못하고 있었지요.  USB는 처음 나왔을 당시 속도가 빠르지 못해서(오늘날 2.0은 이런 부분의 문제점을 상당히 해결했지만), 의외로 PC 업체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속도 보다는 USB가 플러그-앤-플레이 방식에 최적화 되어있고, 따로 전선이나 파워가 없어도 주변기기를 동작시킬 수 있다는 사용자 편의성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사의 매킨토시 라인에 전면도입을 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USB의 사용자 편의성이 애플 매킨토시의 컨셉과 워낙 잘 맞았기 때문이지요 ...  결국 아이맥의 대히트와 함께 USB의 장점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그 이후 PC 업계를 포함한 무수한 디지털 기기의 인터페이스 부동의 표준으로 그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무선 인터넷의 표준인 WiFi의 성공에도 애플의 역할이 컸습니다.  WiFi는 현재는 프랑스 알카텔(Alcatel)에 합병된 루슨트(Lucent) 테크놀로지와 아기어(Agere)사가 개발한 기술입니다.  오늘날의 대단한 성공에서 바라보면 기술개발 후 바로 엄청나게 각광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기술개발이 완료된 1991년 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상용화를 하는 모험을 시도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기술이 뒤늦게 대부분의 노트북 시장을 장악하면서 기술의 꽃을 피우게 되는데, 여기에는 1999년 애플이 WiFi를 자사의 모든 컴퓨터 라인과 디지털 허브의 개념으로 에어포트(AirPort) 무선인터넷 환경에 대한 전략을 발표하고, 동시에 무선 노트북의 시대를 맥북과 함께 열면서 전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이후 맥북의 편리한 무선 인터넷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계의 PC 메이커 들이 노트북에 WiFi를 기본 탑재하게 되었고, 기술적인 문제점들도 하나 둘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아이팟이 보여준 디지털 음악 혁명이나 아이폰의 멀티터치가 일으키고 있는 센세이션 역시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을 처음 개발하고, 특허를 내고,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상용화를 할 수 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애플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는 회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에서 이야기하는 의제설정(agenda setting)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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