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기술 인문학 이야기'에 해당하는 글 24건



소셜 웹은 여러 가지 변화를 끌어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숨어있던 열정적인 사람들을 전면으로 끌어내어 이들이 서로 연대하고, 실제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커다란 의미가 있다.  비록 형태는 온라인에서 경험을 공유하고, 관계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실제 세계에서의 철학과 오프라인에서의 역량 및 생각이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측면에서 2011년에 있었던 중동의 쟈스민 혁명과 월스트릿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들불처럼 퍼졌던 “월스트릿을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 운동에 대해서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쇠고기 파동 때에 있었던 촛불시위 등에 대해서도 단순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비이성적인 행위로 매도하기 보다는, 어째서 이런 운동이 있게 되고,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앞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제 2, 제 3의 촛불시위는 언제든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중동의 쟈스민 혁명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는 이들 민중들의 억압된 마음을 연결하는 일종의 신경계처럼 작동을 하였다.   작은 그룹이 조직되고, 이들이 행동에 나서고, 또한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에 의해서 운동의 크기는 삽시간에 나라 전체로 확산이 되었고, 결국 이런 실제적인 움직임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혁명으로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들 소셜 웹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심장부인 월스트릿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금융산업과 치솟는 실업율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99%가 1%의 상류층의 거리를 점령한다는 의미의 시위가 뉴욕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운동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 전 세계 82개 국가의 95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 운동은 캐나다의 행동주의 그룹인 애드버스터스(Adbusters)에 의해 시작되어 “99% 대 1%”라는 어찌보면 단순명료한 슬로건을 전 세계에 퍼뜨리는데 성공하였고, 쟈스민 혁명과 같은 명확한 끝맺음을 하지는 못했지만, 각국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일자리와 수익의 분배에 대한 문제점, 금융산업의 변화, 그리고 검은 돈이 정치를 좌우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과 철학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민주주의가 구호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풀뿌리에서 선출한 정치인들이나 자신들이 먹여살리고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민초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들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변화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운동을 “비이성적”으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트위터의 140자라는 짧은 문장에 어떤 실체적 진실을 담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며, 그에 비해 퍼져나가는 속도는 광속과도 같으니 이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140자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과 그들의 분노를 퍼뜨리는 것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글자의 수이다.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메시지를 던지기에는 충분한 효과를 보였다.   소셜 웹은 쟈스민 혁명이나 월스트릿을 점령하라 시위에서 사람들이 경험과 감성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동작하였다.   단순히 소셜 웹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비전이 중요하고, 무엇인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메시지와 감성이 이들의 변화를 이끌었다.  운동에 불을 붙인 것은 억압과 불평등, 불공정, 그리고 비전과 희망에 대한 의문이었다.   기술은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 대하여 소셜, 모바일, 실시간의 이름으로 약간의 도구적인 도움을 준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소셜 웹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도구는 사람들이 뭉치게 할 수 있고, 동시다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혁명의 중심에는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불타오르는 감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공통적인 열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선순환의 고리를 통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런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비젼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비전을 공유하고, 한사람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자신들을 따르게 하는 물결이 나타날 때 이런 변화의 동력이 발생한다.   이런 변화가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일하는 환경과 인프라의 변화, 서로가 상부상조하며 도울 수 있는 그런 프로세스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사회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고객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열망에서 시작하여,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감성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  공유된 경험은 집단적인 새로운 의사결정을 유도하고, 이런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나 사회현상도 변화해 나간다.  이것은 현재 일반적인 브랜드와 대중매체 등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 PR, 영업전략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의미있고 공유가능한 경험을 미리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며, 같이 문제를 풀어내고, 적극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좋다.  또한, 네트워크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고, 이렇게 배운 내용을 프로세스를 변경하거나 제품, 서비스 등에 접목한다면 소셜의 철학이 사회변화나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철학을 숙지하고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인물이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이다. 그는 2011년 11월 CNN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가 특정회사의 CEO로서의 역할 이외에 변화를 위한 또다른 역할을 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의 인터뷰의 일부를 옮겨 보았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신뢰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제가 생각하기에 기업들과 비즈니스의 리더들이 우리들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워싱턴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2011년 10월 미국 전역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작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미국 전역에 있는 6,800개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수천 만명에 이르는 고객들이 “미국의 일자리만들기(Create Jobs for USA)” 프로그램에 기부할 수 있으며, 스타벅스가 재단을 통해 먼저 50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금을 이용해서 작은 일자리들이 만들어진다.   5달러를 기부하면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이 섞인 띠에 ”나눌수없음(Indivisible)” 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손목밴드를 받을 수 있다.  이 손목밴드는 우리 사회가 서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공동체의식을 고취하게 만든다.   이런 공유된 열정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하워드 슐츠와 같은 리더가 움직인다면 이런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에는 그와 같은 철학을 표방하는 리더들이 어째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  우리 모두는 더이상 방관자가 아니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동가이다. 이것이 소셜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철학이다.


참고자료:

Create Jobs for USA 홈페이지
Get Your Starbucks, Create A Job” by Catherine Clif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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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인간의 권리인가? 라는 재미있는 주제에 대해서 인터넷 탄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엔지니어이자, 현재 구글에서도 일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인 빈트 서프(Vint Cerf)가 뉴욕타임즈에서 "그렇지 않다"고 발언을 한 글이 화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술은 인간의 권리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권리 그 자체는 아니다.

일견하기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존재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그런 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의외로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도구의 하나로 그 변화의 양상이 다양하고, 전 세계가 합의한 형태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사람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유의지, 그리고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를 권리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빈트 서프의 의견에 의문점을 던질 수 있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쟈스민 혁명의 과정에서, 인터넷은 그들에게 있어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사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보편적인 서비스이다.  나라별로, 문화별로 다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어떤 제약이 가해지거나, 탄압을 가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사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한다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국민들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는 곳들이 늘고 있다.  아마도 인터넷을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할지 몰라도, 전 세계의 보편타당한 표현의 자유와 연결을 위한 도구로서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Internet Access Is Not a Huma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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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d Garden Blueprints
Walled Garden Blueprints by Anne Helmon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사회적 경험은 놀이다. 개인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역할 분담하면서 롤 플레이하고 소꿉놀이 한 기억,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한 놀이였다. 사회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경계도 지어졌다. 만나는 사람도 뻔해지고 소위 말하는 가족과 나, 나와 직장 좀 더 넓게는 국가를 포함한 범위 안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속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기억에 남는 사회적 경험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학연 지연을 찾고 업무를 통해 통상적으로 넓어지는 인맥 정도 ...

여기에 윤활유처럼 새로운 소통의 파도가 일었다. 소위 커뮤니케이션 파도라고 부르는 것. 이를 이끈 것이 페이스북, 트위터,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고, 이들은 과거보다 쉽게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일상적인 인터넷과 다른 점은 인터넷은 정보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지식의 접근성, 활용성을 높일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경우, 보통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동기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액션인 사회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나의 네트워크에서 만난 첫 사회적 경험은 PC 통신 동호회였다. 1990년을 전후 인기를 끌던 PC통신 서비스인 케텔과 PC서브(이후의 천리안)에는 다양한 동호회들이 개설되고 이들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나는 PC서브의 ‘셈틀소리’라는 미디, 컴퓨터 음악 동호회에 가입해서 미디 음악을 작곡하고 기계를 구매하였고, 동호회에서 만난 여러분들과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하는 등 재미있는 사회활동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왠만한 경험이 쌓이고 인연을 만나기 전에는 혼자서는 이런 액션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PC통신 동호회라는 것이 없었다면 말이다.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그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누구나 개인적인 페르소나, 사회적 존재를 가상공간에 소유하고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다. 특히, 간단한 도구들과 연관된 서비스들이 많이 생기면서 무수한 사람이 소셜에서 다양한 행동패턴을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가 만든 환경

무엇보다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게 된 것이 고무적이다. 사회적 경험은 삶의 일부로 스며들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행복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에 다양한 변화 요소가 생겼다. 과거에는 생각만 있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으나, 이젠 뜻이 맞는 사람 몇몇이 모여 다양한 액션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영향력이 커졌다.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실제 집단행동이라든지 모여서 뭔가 할 기회도 많아졌다. 자선활동, 캠페인이 좋은 사례다. 아직은 과도기지만, 시간이 지나 움직임이 커지면 분명 활발한 활동가와 비활동가들이 생기고, 초기에 상처받고 떠난 사람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페이스북만 해도 우리나라 사용자는 500만 명을 넘어 600만 명을 바라보고 있으며, 올해에는 1000만을 넘게 될 것이다.

개중에는 자연스럽게 문제점도 나타날 텐데, 시스템 측면에서도 이런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한 업데이트가 있을 것이고, 사람들도 부작용에 대해 인지하고 그에 맞추어 대응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인간 사회가 늘 그렇듯 커다란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 간의 규칙과 윤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새로운 생태계는 안정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연결지성과 사회적 경험

관계를 통해 연결한 연결지성이나 소셜 네트워크는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단, 스스로 힘을 가지려면 네트워크에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과도한 집단성이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이슈를 포괄해야 하는데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다른 의견은 배척하는 성향이 많이 보인다. 이는 소셜네트워크 본연의 자정능력을 해치는 행위다.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소셜네트워크의 문맥을 이해하고, 소셜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사회적 경험은 오픈 마인드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마음을 열고 최대한 많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그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려는 노력,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제 사회적 경험은 기업, 마케팅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월간 w.e.b. 2012년 1월호에 인터뷰 형식으로 나간 기사입니다. 
정리해주신 박수연 기자님께 감사드려요. 약간 잘못 받아적으신 부분 등이 있는데, 그런 부분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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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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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와 관련하여 가장 앞선 혜얀과 통찰력을 보여주던 알티미터 그룹의 브라이언 솔리스(Brian Solis)가 "소셜 미디어 1.0 시대의 종말"을 언급했다. 약간은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선언이지만,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브라이언 솔리스가 쓴 글은 아래 참고자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브라이언 솔리스가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피로감(fatigue)"이다. 소셜 네트워크 피로, 팔로우 피로에 이어 최근에는 소셜 커머스의 거래 피로(deal fatigue)에 이르는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점점 기업들의 참여가 많아지면서, 소셜 미디어를 홍보와 마케팅 수단으로 인지하는 비율이 늘고, 이런 변화는 "소셜 미디어를 기업 미디어로 변질시킨다"고 실리콘 밸리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톰 포렘스키(Tom Foremski)가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는 소셜 미디어를 기업의 영업이나 마케팅 채널로 쓰게 되면, 결국 진솔한 대화는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는 고객들의 자연스러운 행위에 대한 귀중한 인사이트를 잃게 될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페이스북의 팬이나 트위터의 팔로하는 사람 수를 늘리며, "좋아요" 버튼이나 공유를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한다고 정적인 컨텐츠가 갑자기 공유가능한 훌륭한 경험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많이 듣고, 배우며, 진짜로 어디에 가치가 있는지 찾아내고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다. 듣는 것은 비즈니스를 현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며, 외부에서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공감과 혁신을 이끌어 낸다. 물론 이와 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업이나 개인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눈에 띄는 다소 성급한 "상업화"의 바람은 확실히 소셜 미디어의 발전에 있어 여러 가지 걱정을 낳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래의 소셜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브라이언 솔리스는 "가치(value)"라고 단언한다. "가치"가 없다면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와 팬, 팔로어를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이들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의 크기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의 속도는 줄어들 것이 뻔하다. eMarketer의 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성장곡선은 이미 상당히 완만해지고 있으며, 조만간 포화상태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하였다. 큰 인기를 끌었던 "좋아요"나 리트윗 등의 버튼을 클릭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자들이 이제는 피로감을 느끼면서 과거보다 적극적이지 않은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만들어 놓은 컨텐츠나 내용을 퍼뜨리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들의 경험을 증진시키는데 소셜 미디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GlobalWebIndex에서 발표한 “Wave 5 Trends” 리포트를 보면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다. 2009년 6월 ~ 2011년 6월까지 페이스북의 사용현황에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다.

  • 비디오 업로딩은 미국에서 5% 증가, 전 세계는 7.6% 증가
  • 앱 설치는 미국에서 10.4% 감소, 전 세계에서도 3.1% 감소
  • 가상상품(선물)을 보내는 비율도 미국에서 12.9% 감소, 전 세계에서는 7.5% 감소

트위터의 경우에는 정보의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45%의 사람들이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해 하루 한번 정도 의견교환을 하며, 34%는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링크를 하루 한번 이상 공유한다. 또한, 이 리포트에 따르면 많은 온라인 소비자들이 브랜드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브랜드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브라이언 솔리스가 "소셜 미디어 1.0 시대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언급한 것은 단순히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런 양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보다 적극적으로 고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훌륭한 플랫폼이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이나 기업들이 소셜 미디어를 좋은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혁신의 촉매제로 활용하며, 가치의 메신저로 활용하는 전략이나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직원들과 고객들을 엮어내는 플랫폼이자 의미있는 관계를 엮어내는 실질적인 역할을 할 때 소셜 미디어의 새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The End of Social Media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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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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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Blue Chrome Rain Social Media Icons
154 Blue Chrome Rain Social Media Icons by webtreats 저작자 표시

지난 수년 간 우리들이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사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보게 되는 낯선 사람들이고, 이들의 글을 서로 읽고 답변을 하면서 불특정 다수들을 대상으로 소통을 하였다. 우리들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오프라인에만 존재하였고, 인터넷은 정보와 지식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지만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수년 간 열풍처럼 번져 간 소셜 네트워크에 의해 온라인에도 많은 새로운 친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었고, 이들과 여러가지 소식을 나누고는 한다. 이런 온라인 친구들과의 친밀감은 새로운 컨텐츠를 찾아내거나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일부는 이를 이용하여 마케팅이나 홍보활동에 활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공통적인 경험을 온라인을 통해 향유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급속도로 커지게 되었다. 이들 서비스의 영향으로 오프라인에서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친구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 사람도 많아졌고, 가는 곳마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경험도 드물지 않다.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는 경험은 많은 친구들과 연결이 될 때 더욱 증폭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일부는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이라는 점에 다소 집착하는 성향도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온라인에서 연결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그들 각각에게 쏟는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트위터의 경우만 하더라도 초기에 연결된 사람의 수가 적었던 얼리어답터들의 시기에는 서로가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누가 누구인지도 명확하게 기억하였다. 연결된 사람들의 수가 적었을 때에는 타임라인에 뜨는 글을 모두 읽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남긴 트윗에 반응을 하고 대화를 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그렇지만, 네트워크의 연결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수백 명 이상읜 연결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트윗을 읽게 되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친구가 많아진다면 그들에게 실제로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실제로 친구를 중심으로 하는 "소셜"이라는 요소보다는 개인의 관심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들이 더욱 주목을 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플립보드(Flipboard)라는 앱은 친구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신문처럼 엮어서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페이스북도 과거보다 똑똑해진 피드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우리들의 연결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한 뉴스를 보여주지만, 이를 달리 필요하면 개개인들의 연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알고리즘에 의존하여 "나"에게 관심있는 글들을 보여주는 셈이다. 어찌 보면 친구라기보다는, 너무 많아지고 거대해진 네트워크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나 지식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걸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결국 과거의 낯선 사람들이 쏟아낸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에서도 다룬 바 있으니 이를 참고하기 바란다.

연관글:
2011/12/08 -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단상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네트워크의 크기가 커질수록, 실제로 우리의 "소셜"한 능력은 퇴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테크크런치에 재미있는 칼럼이 실린 것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문은 참고자료의 링크를 따라가면 읽어볼 수 있다.

네트워크나 정보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른다.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오는 비트나 사진, 링크의 수가 증가하면 공급이 과포화가 되는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이들 각각의 가치는 저하된다. 처음에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서비스를 사용할 때에는 각각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게 되고, 이런 멋진 경험들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기 쉽다. 특히나, 과거에는 없던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런 느낌은 더할 것이다. 트위터나 포스퀘어 등의 서비스가 초기에 열광적인 매니아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결국 인간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지의 한계에 봉착한다. 친구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한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던바의 수 150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고,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변화는 있겠지만, 일정한 수를 넘은 친구를 가지게 되면 모든 댓글들은 불특정 다수가 남긴 댓글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을 선사한다.

이런 단계에 이르게 되면, 소셜의 성격은 매우 퇴보한 것이 아닐까? 결국 네트워크를 타고 흐르는 것은 정보가 된다. 그래서인지, 트위터는 최근 자신의 정체를 "정보의 네트워크(Information Network)"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네트워크가 정말 커뮤니티처럼 느껴지는 시기는 일정한 크기를 넘지 않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결국 커뮤니티라는 것은 일정한 수 이상으로 증가해서는 개개인이 모두 존재감을 느끼고 동질감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커다란 네트워크가 존재하더라도 커뮤니티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멤버십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계가 필요하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실세계에서는 가족과 친척들, 주변의 이웃들과 직장의 동료들과 같은 어찌보면 명확한 경계를 가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이런 경계가 디지털 세계에서는 잘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이런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뭔가 어색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커뮤니티에서는 청중이 존재하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 이것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안다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칙이다.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이야기하는 것은 "소통"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소셜을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공유된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고, 이것을 공유하고자 하더라도, 실제로 같이 공유하는 경험을 서로가 인지하는 가운데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공유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강렬한 감성적인 공감의 파도타기나 비슷한 동질의식 등을 느끼기 쉬워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자체로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를 연결하는 대형 소셜 네트워크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로는 소셜하지 않은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독백을 하거나, 미디어로 활용하는 그런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소수의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내놓고, 대화를 하며, 경험을 공유하고, 보다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의미있는 관계를 엮어나갈 수 있는 그런 조금은 더욱 "소셜"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등장한다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네트워크는 우리의 실제 삶과 관계된 커뮤니티에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모바일 시대가 오더라도 이것을 활용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인간의 인지의 한계와 원하는 각자의 가치라는 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The Social Network Parad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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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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