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앞가림을 어느 정도 하는 나이가 되면 초등학교에 가고, 그 다음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교를 간다. 누구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이 과정에 대해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 과정에 우리들의 아이들이 배우는 학습과정이나 교과에 대한 가르치는 방법 등은 모두 표준화가 진행이 되었으며,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기는 것도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교과시간도 정확하게 1분 1초도 틀리지 않고 표준화되어 있다. 아이들의 개별적인 능력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
최근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교육방식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시도가 전 세계 교육현장에서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IT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형태의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콘텐츠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의 선생님들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선생님들이 지식전달자의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선생님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제는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멘토나 코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강의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카운셀러의 역할, 그리고 사회와의 화합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의 학교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시기는 성인이 되어 독자적으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사회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고, 천변만화가 있는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는 내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협업을 하는 연습, 그리고 선생님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시각을 갖추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들이 독자적으로, 그러나 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의 측면에서는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하며, 단순히 교육 콘텐츠를 보고, 읽고, 외우고, 시험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선생님과 친구들이 같이 공유하고 새롭게 가치를 창출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이나 어떤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간단하게 댓글의 형태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거나, 학습에 도움이 되는 좋은 콘텐츠들을 서로 발견해서 나누고 공유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활동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개념들을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접목하는 것이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해당 연령대에 필요한 교육목표와 요구사항을 알려주고, 이들이 교과서나 비디오 콘텐츠, 실험, 시뮬레이션이나 교육용 게임 등을 활용해서 각자 알아서 공부를 하고 배움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양한 쌍방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잘 만들어진 자신이 직접 도전할 수 있는 테스트 방법과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라도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협업과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방식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새로운 교육의 철학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게임의 역학을 활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게임"이라고 하면 일단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이를 달리 바라보면 "게임"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도구로 생각할 수도 있다. 뉴욕의 한 공립 중학교의 교사는 실제로 이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모든 과목은 아니지만 일부 과목에 대해 선생님이 교육을 한 성과를 성적표가 아니라 정기적인 레벨을 정해주는데, 아직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초보자(novice)" 그리고 이미 모든 학습목표를 깨우친 아이들인 "마스터(master)"의 칭호를 준다. 이는 작지만 큰 변화이다. 같은 교육을 수행하고 시험을 보고, 이에 대한 등급을 매긴다는 것은 사람을 분류하는 의미가 크지만, "초보자" 나 "마스터"와 같은 레벨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직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훨씬 동기부여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심지어는 아예 게임을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학교도 있다. 뉴욕의 중학교에서는 "Quest to Learn" 이라는 과목을 개설한 학교가 있다. 디지털 게임을 아예 아이들의 지적 탐험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직접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역할보다는 길잡이와 도움을 주는 가이드와 비슷한 역할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런 접근방법을 이용한다면, 학습과정은 레슨(lesson)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퀘스트(quest)로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이름이 "Quest to Learn"이 된 것이다. 게임을 진행하면, 매일 밤 읽어야 하는 읽을거리와 매주 이해도를 측정하는 미션 등이 날아오며, 이 중의 상당 수는 연필과 종이로 무엇인가를 풀어서 제출해야 되는 미션이다. 이런 형태의 게임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동영상을 제작하고, 비디오를 편집하기도 하며, 해당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는 등의 소셜 활동도 같이 한다.
또 한 가지 감안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협력을 통해서 많은 것을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인도의 "Hole in the Wall"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일단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된 아이들은 선생님이 없어도 알아서 서로를 가르치고 알아낸 것을 공유하면서 3개월도 안된 시간 동안에 벽 속에 있는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조작법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외국어와 설치되어 있는 소프트웨어의 매뉴얼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되려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에 비해 더 잘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새로운 기술과 사회의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학교와 선생님들의 역할, 그리고 교육의 철학을 바꾸어 놓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으며, 더욱 넓게는 교육과 학교라는 것의 역할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혁신적인 교육혁신가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칸 아카데미를 통해 전 세계적인 온라인 교육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살만 칸이나 스탠포드 대학의 정년보장이라는 조건을 뿌리치고 전 세계 대학교육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유다시티(Udacity)의 세바스찬 스런 교수같은 선구자들의 등장,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읽고 새로운 강의시스템을 완전한 개방형으로 공짜로 운영하기 시작한 하버드 대학과 MIT의 edx 프로그램의 탄생은 이제 큰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교육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이다.
최근 필자는 검색엔진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유다시티(Udacity)라는 웹기반 고등교육 서비스에서 개설한 "검색엔진 만들기(Building Search Engines)"라는 과목을 인터넷으로 수강하는 중이다. 사실 이 나이에 다시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면서, 검색엔진을 만든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과목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이 직접 나와 가르치는 것을 보고서 덜컥 등록을 하였다. 물론 세르게이 브린이 계속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제일 첫 강의의 일부와 중간중간 사람들이 지칠 시점 쯤에 나와서 짧게 강의를 한다.
유다시티는 고등교육을 혁신하겠다는 목표로 스탠포드 대학의 세바스찬 스런(Sebastian Thrun)교수가 설립한 혁신적인 고등교육 서비스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 컴퓨터과학 대학원 과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인공지능 기초(Introduction to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과목을 단지 스탠포드의 한정된 학생들에게만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강의를 개방하면서 고등교육 혁신의 불을 당겼다. 그는 일반적인 대학에서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으로 동영상 강의와 과제를 내고, 조교와 자신을 찾아서 이런저런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온라인에서 운영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매주 제출된 숙제는 독특하게 고안된 자동채점 알고리즘을 통해 성적이 매겨지고, 이것이 철저히 관리가 된다. 물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또는 이를 대체하는 프로젝트 숙제가 있으며, 이들의 데드라인도 지켜진다. 수강을 한 학생들이 열심히 강의를 듣고, 숙제를 제출하며, 시험까지 마치면 해당과목의 성적표와 코스를 이수했다는 자격증을 받아들 수도 있다. 그의 인공지능 강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2011년 가을학기에 190개 국가에서 무려 16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록해서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1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그의 강의를 44개 언어로 번역을 하였다. 심지어는 유튜브가 막혀있는 이란에서는 한 학생이 웹 사이트에서 허락을 받은 뒤 동영상을 캡처해서 1,000 명의 학생들에게 비디오 파일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세바스천 스런 교수는 스탠포드에서도 최고의 스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2011년 3월 롱비치에서 열린 TED 강연에서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무인으로 조종하는 구글의 무인자동차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다. 차량 위에 설치된 레이저 범위측정기와 레이더, 카메라 등을 종합해서 자동차가 고속도로와 복잡한 일반도로를 가리지 않고 얼마나 안전하게 혼자서 돌아다닐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런데, 그가 발표한 TED 강연에서 칸 아카데미(Khan Academy)의 살만 칸(Salman Khan)도 6년 간의 온라인 교육의 성과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이 강연에서 살만 칸은 "전 세계가 하나의 교실(global one-world classroom)"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고, 빌 게이츠는 이를 "미래의 교육"이라고 불렀다. 이 강연을 듣고 세바스천 스런 교수는 인생의 항로를 수정했다고 한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정말 훌륭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세계 최고의 대학의 교수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교수였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였다. 2011년 4월, 세바스찬 스런 교수는 스탠포드의 교수 정년보장 제의를 뿌리치고 구글이 가장 비밀스럽지만, 최고의 야망을 가진 사람들만 모으는 구글X 연구실로 들어오는 결심을 하였다. 또한, 그는 세계 최고의 교수들이 전 세계의 수많은 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하는 스타트업인 유다시티의 창업자가 되었다.
그가 처음 작성한 사업계획서에는 고등교육의 절차 9가지가 적혀있었다. 입학(admission), 강의(lectures), 동료들의 교류(peer interaction), 교수와의 교류(professor interaction), 문제해결(problem-solving), 과제(assignments), 시험(exams), 데드라인(deadlines), 증명(certification)이 그것이다. 그는 MIT의 오픈코스웨어는 훌륭하지만, 단순히 강의와 강의계획서, 그리고 숙제목록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비디오 강의에만 모든 것을 의존했는데, 이것은 고등교육에서 필요로 하는 것의 1/9에 불과하다는 판단하에 9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코스웍과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스탠포드에서 강의하던 인공지능 강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회사를 설립했는데, 30만 달러 정도의 돈을 투자해서 동료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스태븐스(David Stavens)를 CEO로, 스탠포드 대학의 로봇 연구자였던 마이크 소콜스키(Mike Sokolsky)를 CTO로 내세우고, 자신의 게스트하우스를 개조해서 스튜디오겸 사무실로 만들었다. 위대한 고등교육의 혁신기업 유다시티의 전신인 노우랩스(KnowLabs)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가을학기 시즌이 되어 인공지능 강의를 오픈할 때, 창업자들은 각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등록할지 예측을 하였는데 이들은 500~2,000명 정도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의를 오픈하자마자 다음 날 5,000명의 학생들이 등록을 하였고, 금방 1만 명을 넘었다. 이렇게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되자, 스탠포드 대학에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떤 종류의 증명서류도 발행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그로부터, 수주 간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10여 차례의 회의가 열렸는데, 세바스찬 스런 교수는 학장, 대학 등록처, 법무처 등을 돌아다니면서 설득작업을 벌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등록자는 계속 늘어서 2주 만에 58,000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등록을 하는데 이르렀다. 스탠포드에서는 스런 교수의 비전을 존중해주고, 그가 강의를 온라인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것을 인정해 주기로 하였다. 대신 그가 과제를 내주고, 증명서류를 발급하는 것만을 포기하라고 제안하였지만, 스런 교수는 단호히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증명서(certificate)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수료증(Statement of Accomplishment)로 수위를 낮추고, 이 과목이 스탠포드 대학의 정식 학점이나 학위, 성적과 관계없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의 이런 모험이 뉴욕타임즈를 통해 보도가 되면서 등록자는 10만 명을 넘게 되었고, 이런 많은 수의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그의 동료들은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확장해야 했다. 이들의 강의는 삼각대 위에 설치된 DSLR 카메라를 통해 녹화가 되며, 상호작용이 가능한 다양한 전자펜과 칠판을 통해서 재미가 있으면서도 다양한 퀴즈를 풀 수 있도록 많은 쌍방향 요소가 가미되어 진행된다.
이 회사의 혁신은 단지 교육에서 그치지 않았다. 인공지능 수강을 마친 전 세계의 학생 중의 거의 만점을 받은 1,000 여명의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이들의 이력서를 받아다가 뛰어난 인재를 모집하는 구글과 같은 기술기업에 소개를 하였다. 이렇게 추천을 받은 학생들은 구글 등에 입사를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입사 조건도 일반전형자들보다 10~30% 더 받는 프리미엄 혜택도 누렸다고 한다. 첫 강의의 엄청난 성공은 곧바로 벤처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겼다. 2011년 12월 초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찰스리버 벤처스가 투자를 결정하였고, 그것이 오늘날의 유다시티가 되었다. 그는 칸 아카데미의 "전 세계가 하나의 교실"이라는 이념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유다시티라는 이름도 대학의 의미하는 university와 뻔뻔하다는 의미의 aduacity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세바스찬 스런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여기에 등록하는 학생들의 야망과 뻔뻔함을 나타내는 도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2012년 봄학기는 6개의 컴퓨터 과학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었지만, 세계적인 교수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미래에는 공학, 물리학, 화학 등의 이공계 과목들도 수용하고, 더 나아가서는 종합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고등교육이 전 세계를 향해 이루어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세바스천 스런은 10년 이내에 많은 지원자들이 유다시티의 학위를 적어넣으면서 자랑을 하게 될 것이고, 50년 뒤에는 전 세계에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은 유다시티 포함 10개 정도 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필자가 유다시티의 검색엔진 강의를 수강하면서 든 생각은 세바스찬 스런의 생각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높은 수준의 강의에 완벽한 코스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더욱 다양한 커리큘럼이 개설되고 이런 커리큘럼의 조합을 통해서 학위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고용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생길 것이고, 이렇게 고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비싼 돈을 주고 대학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은 급속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대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파괴적 혁신이 눈앞에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스탠포드 대학의 다른 교수들이 학교와 손을 잡고 유사한 형태의 고등교육 플랫폼을 개발해서 일부 과목에 접목을 하기 시작했고, MIT에서도 MITx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012년 가을학기 부터 강의를 개방하고, 본격적인 개방형 혁신을 진행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서, 그래도 미국의 일류대학들은 이런 위기를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구나 싶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지금 당장 따뜻한 보호막 속에서 장벽을 치고 앉아서 우리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
학교에서 지겨워하고, 수업에서 낙제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아이가 나중에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성공한 기업가가 될 지도 모른다. 누구나 공부하기만 강요하고,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취급하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 경종을 울리는 TED 강연을 하나 소개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 했던 카메론 헤럴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을 제시한다. 그는 아주 어릴때부터 돈과 사업을 좋아하고 또한 기업가정신을 좋아했으며, 그렇게 길러졌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기업가 자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찾고 또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 하며, 이런 아이들에게 기업가가 되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들이 기업가적인 소질을 가진 것일까? 다양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열정,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요구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과학을 잘하거나, 수학이나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은 금방 발견해서 그들을 북돋는 시스템이나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기업가적인 소질이 뛰어난 아이들을 발견해서 그들이 뛰어난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교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전문직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과 같은 직업이 무의식 중에 가장 중대한 목표가 된다. 또한, 미디어들은 모델이나 가수, 스포츠 스타와 같은 직업들이 멋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 영향으로 아이들이 목표로 하는 직업들은 이런 두 가지 갈래길로 한정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뛰어난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 MBA 프로그램은 어떤 경쟁력이 있을까? 놀랍게도 카메론 해럴드는 여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고등학교때 중간 이하의 성적을 가졌던 그가 유일하게 갈 수 있었던 MBA 프로그램에서 가르친 것은 기업가로 성장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회사에서 일하게 끔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렇다면, 회사 경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기업가에게는 기업가로 잘 어울리는 특징이 있다. 카메론 해럴드의 집안은 3대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기업가인데, 고집이 세고, 주의력 결핍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남의 밑에서 일할 수 없는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아이들에게 최근 학교나 병원에서 내리고 있는 처방은 주의력 결핍을 치료하는 정신과 약물을 투약하면서 학교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공부를 잘 하도록 다독이거나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옳을까? 카메론 해럴드는 기업가적인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남보다 빨리 움직이고, 게임의 법칙을 파악할 줄 안다고 강조한다. 그는 학생일 때 에세이를 훔쳤고,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으며, 대학에서는 자신의 회계숙제를 해줄 아이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기업가들은 회계를 하지 않고, 회계사를 고용하는데 그는 그 사실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는 것이다.
기업가의 정의란 "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사람" 그리고 " 사업의 위협을 지각하는 사람" 이다. 그 말은 학교수업을 잘 이수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기업가는 타고날 수도 있고, 길러질 수도 있는데, 카메론 해럴드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그에게 어떻게 사업을 이해하는 지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7살 때부터 세탁소에 옷걸이를 팔았고, 9살 때에는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 번호판 보호기를 방문판매하였다. 10살 때에는 동네 자동차 가게에서 버려지는 부품들을 모아서 파는 고철판매업과 핀을 팔았으며, 철저히 공급과 수요 그리고 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강연에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용돈에 대한 시각이다. 그는 용돈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습관을 들인다고 주장한다. 용돈은 본질적으로 아이들이 직업에 대해서 생각하게 가르치는데, 기업가는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기업가가 되게 키우고 싶다면 집과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해야할 일을 찾게 가르치라고 한다. 한 가지 방법은 아이들에게 "처리됐으면 하는 일들이 있단다."하고 말해준 뒤에 협상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떤 일들이 있는지 찾아다니고, 그 일을 하면 얼마를 받을지에 대해 협상을 한다. 정기적으로 돈을 받지는 못하지만, 더 많은 일들을 찾을 기회를 가지게 되며, 협상하는 기술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리고 기회를 찾는 기술에 대해서도 배운다.
아이들에게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부모에게 이야기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귀기울여 들을만한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몇 가지 소재를 던져주고, 이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면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실력과 창의력,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아이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훌륭한 교육이 된다. 반드시 많은 사람일 필요는 없고, 단지 자기 친구들 앞에서 하는 것이라도 괜찮다. 이런 것들이 어렸을 때에 키워야할 기업가적인 자질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나쁜 손님이나 나쁜 직원들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된다. 퉁명스런 직원들과 불친절한 서비스를 보게 되면, "저 사람은 거지같은 직원이야." 그리고 반대로 훌륭한 서비스를 하는 직원을 보게 되면 "이 사람들은 좋은 직원들이고." 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서비스를 해야하는 것인지 체득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길러줘야 할 기업가적인 자질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성취력, 끈기, 리더십, 자기성찰, 상호협동, 가치. 이러한 자질들은 모두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기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의 교육시스템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TED 강연이다.
전세계적으로 이제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들은 거의 대부분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을 전혀 모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들 세대는 언제나 월드와이드웹에 직접 접속을 해서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접속이라는 것이 무슨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세대는 과거의 세대와는 모든 면에서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서는 이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들을 위한 것들을 기성세대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Latitude 라는 리서치 기관에서 했던 연구가 바로 이런 요구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아이들이 바라는 미래의 인터넷과 컴퓨터에 대한 조사를 한 리포트 하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연구를 주도했던 Latitude에서는 아이들이 미래를 그리게 만들고, 미래의 기술에 대해서 토론하고, 이야기하게 만듦으로서 어른들이 가지지 못한 통찰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특히 아이들은 기술이 어떻게 자신들의 학습이나 놀이, 그리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매우 독창적인 의견을 많이 내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네이티브인 아이들은 기존의 세대에 비해서 어떤 시각의 차이를 보일까? 요즘의 아이들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활이 인터넷과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모바일 기술은 물론이고, RFID/NFC 등의 기술이나 "물체들의 인터넷(internet of things)" 시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새로운 경험이나 이야기를 전개한다. "기술이 인간의 확장"이라고 표현했던 마샬 맥루언의 말을 이들은 배우지 않아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 인간의 확장이라면, 실세계 물체들과의 상호작용도 당연한 것이다. 어찌보면 기술은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게이트웨이이며, 세계와 우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점점 더 많이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술은 더 이상 기술자체로 머물지 않는다. 기술과 주변을 둘러싼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의미있는 경험을 인간들에게 선사하고 있는데, 디지털 네이티브인 우리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연결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 중의 하나가 바로 "공유정신(sharism)"이다. "내가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많이 공유할수록 더 많이 공유받을 수 있다"는 이런 개념을 어른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의 상당수는 이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체득하고 있으며, 이를 실행한다고 덴마크의 대표적인 기업인 레고 학습연구소의 Bo Stjerne Thomsen은 이야기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전통세대와 다른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이나 인터넷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다중의 가상인격 사이를 전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이를 부담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또한 닌텐도 Wii나 Xbox Kinect와 같은 혼합현실(Mixed Reality) 기술에 대해 아이들은 별로 신기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이것을 기술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기술의 일부로 간단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계는 이미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며, 각각의 세계가 상호작용을 통해 더 좋아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Latitude의 리포트에도 앵그리 버드를 플레이하면서 NFC나 GPS 등을 이용해서 실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그려내거나, RFID 센서를 이용해서 긍정적인 삶의 행위 포인트를 올릴 수 있는 GreenGoose 등의 게임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또한, 아래와 같은 Sifteo와 같은 상호연결이 가능한 지능형 연결 블록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이런 상호작용이 많은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많은 인기를 끌게될 것이다. 참고로 Sifteo는 MIT 대학원 재학당시에 TED 강연을 통해 "Siftables"라고 소개되었던 기술이 실제 상용화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의 인상적인 TED 강연을 아래 임베딩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들이 그려내는 기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미 성숙해버린 어른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생각을 해낸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단순히 천진난만한 상상으로 치부해 버리기 보다는, 실제로 이들은 그것을 원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인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다. 이번 Latitude의 연구 리포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리적인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장벽을 깨주는 기술을 그들이 원한다는 점이다. 보다 몰입감이 강한 물리적 공간, 여행을 시뮬레이션을 한다거나, 우리들의 물리적인 행동을 도와주는 다양한 디바이스들. 그리고, 보다 사람에 가까운 로봇이나 친구 등의 인간친화적인 기술이 앞으로 더욱 필요할 것이다. 특히 컨텐츠와 게임의 요소가 스크린 공간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으로 인해 우리의 생활과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의 신선한 미래에 대한 시각을 들어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필자도 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집에 가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의적인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기 보다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면 우리 사회와 가정에도 "기술"을 중심으로 공통의 대화와 공감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우리나라에는 참 재미있는 법이 시행에 들어 갔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미성년자에 대한 야간 게임 통행금지(?)가 그것인데, 물론 게임중독에 빠진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게임과 놀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서글프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오늘은 TED 강연 중에서 놀이와 관련한 훌륭한 강의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게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살아가는 의미와 관련하여 지나치게 유교적인 사고에 여전히 지배되고, 논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우리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스튜어트 브라운의 강의이다.
15세기만 하더라도 놀이는 매우 일반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스튜어트 브라운은 유럽의 어느 앞마당의 놀이를 소개하는데, 무려 124가지의 서로 다른 놀이를 하고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이런 놀이에 빠져있는 것은 이 사회에서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서 놀이는 자연에서도 흔하게 관찰이 가능하다. 스튜어트 브라운의 강의에서 소개된 시베리안 허스키의 놀이, 그리고 여기에 동화되어 발레를 추는 야생의 북극곰은 죽음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싸움의 위협을 넘어서서 서로가 놀이를 하는 합의를 본능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을 보면 우리들의 본능 속에 놀이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멋진 놀이에 대한 강의를 하는 스튜어트 브라운도 원래 살인범을 연구하다가 놀이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비극적인 대량 살인행각을 벌였던 텍사스 타워 살인범인 찰스 휘트맨을 연구하다가 그가 아주 심각하게 놀이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연구를 지속하면서, 놀이의 부재와 정상적인 발달상의 놀이에 대한 점진적인 억압이 이런 충동적인 비극을 막지 못하는 취약함을 불행하게도 그에게 선사한 것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놀이를 하는 것은 엄마와 아기가 눈을 맞추고 아기가 사회적 웃음을 처음 짓는 순간 엄마가 기뻐하며 이런 저런 말을 아기에게 하고 웃으면, 아이도 옹알이를 하고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순간에 벌어진다. 놀이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뇌과학 연구를 해보면 이 때의 뇌의 반응은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놀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놀이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다. 위 아래로 뛰고, 몸도 흔들어보는 동작들이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막춤이나 댄스도 그런 측면에서 정말 좋은 몸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을 가지고 다양한 조작을 해보는 것도 좋은 놀이이다. 동물들도 자신이 조작할 수 있는 어떤 물건이 있으면, 이것을 가지고 한참을 논다. 아마도 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손이 매우 정교한 동작을 가능하게 하므로, 다양한 놀이를 하는데 아주 적격이다.
몸으로 하는 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JPL(NASA의 제트 추진 연구소)의 컨설턴트인 신경과 의사 프랭크 윌슨과 기술자인 네이트 존슨의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일부 고등학생들에게 문제해결 능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자동차 고장을 고치는 등의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손 자체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연구를 좀더 진척을 시켜서 프랭크 윌슨은 "손"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JPL, NASA, 보잉 등의 회사에서는 연구개발 인력을 채용할 때 일류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해도 차를 고쳐보지 않았거나, 어릴 때 손으로 놀아보지 않았다면,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다고 간주한다. 이렇게 놀이는 현실적이고도 중요한 것이다.
몸 놀이 말고도 상상놀이도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어렸을 때 여러 가지를 상상하고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그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노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상상놀이 만큼이나 중요한 것도 없다. 어렸을 때 너무나 쉽게 했던 소꿉놀이도 이런 상상놀이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놀이는 호기심과 탐험으로 시작된다. 호기심과 탐험은 놀이의 한 부분이다. 어울리고 싶다면, 사회적 놀이가 필요하다. 사회적 놀이는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의 나꼼수 현상도 어찌보면 사회적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사회적 놀이의 형태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정봉주 전의원의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났더군요 ... 정말 안타깝습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런 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지 ...)
그렇다면, 놀이는 인간의 뇌에 어떤 역할을 할까? 아쉽게도 놀이와 관련한 연구에 연구지원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되려, 사회에서는 놀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튜어트 브라운은 그런 측면에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놀이와 관련된 뇌신경학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을 모아서 연구를 할 수 있는 국립놀이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Play)를 설립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놀이가 객관화되었다. 어린 쥐들은 자라면서 본능적으로 놀이에 빠지는 시기가 있다. 소리를 지르고, 레슬링을 하고, 서로 넘어뜨리는 놀이를 하고 자라는게 정상인데, 실험 대상 쥐들에게 노는 것을 금지하고 다른 쥐들은 또 허용을 해주는 실험을 한다. 그리고, 양쪽 그룹의 쥐들에게 고양이 냄새가 배어있는 굴레를 채워주면 본능적으로 도망가서 숨는다. 여기까지는 죽기 싫어서 도망간 것이므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 뒤에 두 그룹이 차이가 난다. 안 놀아본 쥐들은 다시는 나오지 않고, 숨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놀아본 쥐들은 환경을 천천히 탐구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놀이가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한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증이다. 놀이 없는 인생을 상상해보면 유머도, 불장난도, 영화도 게임도, 환상 등도 없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평생 놀이를 할 수 있다. 인간들은 평생에 걸쳐 놀도록 설계가 되었다. 그리고 놀이 신호를 보내는 능력도 있다. 인간 신뢰의 근간은 놀이 신호를 통해 쌓여간다. 그런데 문화적인 이유건 다른 이유건 어른이 되면서 그 신호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생체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가장 유아적이고, 가장 유연하며 가장 가소성이 높은 생명체라고 한다. 즉, 가장 장난스럽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융통성이 발생한다.
일과 놀이를 같이, 즉 노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지 말고 생활 자체에서 매 분, 매 시간 동안 몸을 이용한, 물건을 이용한 사회적인 놀이, 환상 놀이, 변화를 일으키는 놀이 들에 빠져볼 수 있다면? 아마도 더욱 풍성하고 활력 넘치는 인생이 될 것이다. 그런 환경으로 일터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개인의 인생도 그렇게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우리는 놀이에 대해 조금은 더 관대해져야 한다. 아래 스튜어트 브라운의 훌륭한 강연을 임베딩하였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그의 강의를 참고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