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9000 from Wikipedia.org



다양한 종류의 로봇들을 포함한 기계들이 사람들의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대체하는 현상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로봇과 관련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은 과거의 육체적이고 기계적인 노동이 아닌 인공지능을 이용한 인지기능이 발전한 인지기계(cognitive machine)가 산업혁명 이후에 지식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주된 일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라이스 대학(Rice University)의 컴퓨터과학자인 모쉐 바르디(Moshe Vardi) 교수는 2045년 이면 인공지능 기계들이 전부는 아니여도 현재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의 상당한 부분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영화 <그녀 Her>에서 나온 것처럼 정말 인간과 비슷하게 느끼는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아직 근 미래에 등장하게 될 지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인간들이 현재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일자리를 대체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중요한 성과라고 이야기했던 체스두는 수퍼컴퓨터 딮 블루(Deep Blue)가 세계 최고의 체스마스터인 캐스파로프(Kasparov)를 꺾은지 15년 만에 왓슨(Watson)이 자유로운 인간의 언어로 대결하는 퀴즈에서 최고의 퀴즈챔피언 켄 제닝스(Ken Jennings)를 꺾었고, 당시만 하더라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던 무인자동차도 버젓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런 발전의 정도를 감안한다면 앞으로 30년 정도면 인공지능 컴퓨터나 기계가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지식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모쉐 바르디 교수의 예상은 그리 과장된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런 시기가 된다면 현재의 일자리 수백 만개가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새로운 네오-러다이트 운동이 펼쳐질수도 있다. 이미 자동화와 관련한 것은 아니지만, 앱의 형태로 공유택시를 탈 수 있는 우버(Uber)같은 경우 많은 나라에서 이 서비스를 반대하는 운동이 있는 것을 보면, 네오-러다이트 운동의 등장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이런 자동화나 기술의 진보를 통한 일자리의 변동은 인류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있었던 것인만큼 과도하게 두려움을 가지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어딘가 일자리는 새롭게 생길 것이며, 최근의 발달된 IT환경과 인터넷을 감안한다면 과거보다 이런 변화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다.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변화의 시기에는 언제나 사회적인 불안정성과 정치적인 이슈가 크게 발생하였고, 무의미한 싸움도 많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길게 보면 결과는 인류의 삶과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지, 뒤로 퇴보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과거보다 상품은 저렴하고, 질이 좋아졌으며 일반인들의 삶도 과거보다는 나아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 어떤 일을 인간들이 하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주제로 논의를 옮겨보자. 


아마도 앞으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많은 일들을 대체하면서 저렴하고 대량생산된 제품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각종 서비스의 상당 수도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수록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인간이 시간을 들여 만든 수제(handmade) 아이템을 찾게 된다. 만약 대량생산의 생산성과 표준화를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높은 가치를 쳐주는 명품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정밀도나 질에 있어서는 약간 떨어지더라도, 인간은 인간의 시간을 들여서 무엇인가를 이룬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 장인들이 만든 작품이나 예술품에 해당하는 것들에 대한 가치가 미래에는 좀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비슷하게, 주변에서 잘 보기 어려운 독특함에 대한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보다는 충동적이고, 특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산업들이 발달하고, 사람들은 기계와 인공지능을 벗어난 사회를 만끽하는데 돈을 지불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만한 것은 스포츠 산업이 발달했던 과정이다. 이미 수 많은 기계들이 인간의 육체를 뛰어넘는 힘과 스피드,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고, 여러 기계들이 인간들의 일을 대신하면서 평균적으로는 인간의 육체가 과거의 인간들보다 체력적으로 떨어진 육체를 가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올림픽 게임에 등장하는 운동선수들의 기록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기록을 계속 양산하고 있으며, 야구나 축구 등의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의 기량도 더욱 나아지고 있다. 초기에는 아마추어로서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면서 대회 등에 출전했지만, 이제는 프로스포츠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산업으로 자리잡으면서 그 자체가 중요한 산업군이 되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사람들도 계속 운동을 하고, 이를 즐기는데 많은 돈을 지불한다. 최근에는 X스포츠와 같이 극한에 도전하는 스포츠에도 거의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이며, 인간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선수들도 많이 나오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극지나 사막 등의 탐험에 나서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스포츠나 운동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과거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뭔가 내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하고, 힘이 들게 만들면 돈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과거의 선조들이 보기에 이해가 될 만할까?


프로스포츠의 경우에는 단지 최고의 운동선수들만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물론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큰 돈을 벌어가지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나 백업 능력이 있는 선수들. 그리고, 프로스포츠 리그도 다양하게 지역과 시장을 두고 커지고 있으며, 이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제시하거나, 선수들을 관리하는 등의 산업도 생겨나면서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마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기능을 대체하고, 대신 일을 하기 시작하면, 인지기능을 스포츠로 생각하는 다양한 산업들도 등장할 것이다. 이미 비디오 게임을 이용한 이스포츠(e-Sports)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많은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를 중계하는 TV네트워크도 커다란 금액에 구글과 같은 커다란 회사에 인수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두뇌를 겨루는 다양한 방식의 게임과 스포츠가 고안되고, 이를 준비하는 선수들도 커다란 산업을 이루면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생활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인간이기에 정신건강과 인지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공부와 토론, 교육산업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그리고, 지식과 토론 등을 즐기고, 다양한 논점의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며,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등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이스포츠를 통해서 나왔듯이 컴퓨터나 기계를 도구로 같이 협업하는 방식의 새로운 스포츠나 레저, 엔터테인먼트 활동도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축구, 탁구, 테니스를 거쳐서 자동차 레이싱 등의 스포츠가 시간이 지나면서 발달했듯이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어쩌면 너무나 작은 직업군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아마도 많은 직업들은 우리가 언급하지 않은 것들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에도 작가로 실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현재 전통적인 의미의 기자나 작가들도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인터넷 미디어까지 포괄하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뿐인가?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의 음악, 미술, 영화산업 등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러나 현재 이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이렇게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군에 대해서 당대에는 대부분 너무나 작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새로운 변화는 새롭게 등장하는 인프라에 의해 가속화된다. 그 중의 하나가 코세라(Coursera)나 edX, Udacity 등과 같은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ware)다. 심지어 최근에는 구글이 Udacity에 교육과정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MOOC는 과거에는 받을 수 없었던 높은 수준의 교육을 쉽고도 빠르고, 짧은 기간 동안 저렴하게(심지어 공짜로) 제공한다. 새로운 기술을 쉽게 익히고, 그 어떤 때보다 저렴한 도구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 같은 강력한 홍보수단의 존재,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크라우드소싱 펀드를 이용해서 마이크로 스타트업이 쉽게 시작할 수 있으며, 간단히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최근의 환경변화는 앞으로 새로운 직업과 산업을 등장시킬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과 연관된 산업은 자동화되고,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될수록 더욱 일상용품화되고 별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들이 일을 안하고 빈둥거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인간은 아마도 삶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며,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이라는 것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런 삶을 위해서 경쟁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참고자료:


The Consequences of Machine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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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Mori Masahiro)는 로봇이 사람에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사람들이 불안하고 놀라는 반응을 가진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그는 이를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리 박사는 처음부터 너무 인간하고 똑같게 만들기 보다 인간과는 다른 어떤 것을 덧붙여서 거부감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안경과 같은 것을 먼저 모델링을 하고 눈을 디자인하거나 인간과 비슷한 피부를 입히기 보다 되려 나무 등의 질감을 가진 재료를 이용한 로봇 손 등을 만드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불쾌한(uncanny)'이라는 단어의 상대어 또는 반대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편안함(comfortable)' 내지는 '익숙함/친근함(familiarity)' 등의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리가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다. 불쾌함이라는 느낌이 불편하고 낯선 것에서 기인한다면 어쩌면 사람들이 적응을 하면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디오 게임과 같은 가상의 세계의 경우 초기에는 너무나 현실과 다른 수준의 원시적인 그래픽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더니 이제는 실제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뛰어난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초기에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3D 그래픽도 이제는 정교하게 동작하면서 정말 현실과 비슷해 질수록 게이머들은 더욱 열광하지 현실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불쾌하게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인공지능에도 이와 같은 "불쾌한 골짜기"가 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보듯이 정말 사람과 비슷하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불쾌하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다. 되려 주인공은 심지어 사랑에 빠지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어설프게 비슷해지면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애플의 시리(Siri)는 어느 정도의 유머도 있고, 말대답도 잘하는 정말 사람과도 비슷한 그런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현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진짜 인간과 비교하기에는 멀었지만 말이다. 인공지능에 "불쾌한 골짜기"를 생각한다면, 아마도 어느 순간 이 인공지능이 확실히 인공지능이라서 내가 잘 활용해야 되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섬찟한 느낌이 들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을 때 발생할 것이다. 음성으로 소통하는 인공지능이라면 음색과 말하는 속도, 높낮이 등도 중요할 것이고, 대화의 질이나 감성 등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대처를 한다거나, 부끄러움을 느낀다거나 ... 이런 종류의 인공지능은 현재의 인공지능과는 또 다른 요소들이다. 


IBM의 Watson이 켄 제닝스와 같은 세계 최고의 퀴즈왕과의 경쟁에서 이길 정도로 똑똑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문제를 못 맞추고 부끄러워 하거나, 유머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인간적인 부분들은 아직 없는데, 이는 물론 현재의 인공지능 연구가 논리적인 판단과 답을 내기 위한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로봇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이해하고 이를 흉내내는 쪽의 연구가 많이 진행된다면 어쩌면 이 역시도 극복이 가능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소 인간적인 속성을 구현한 뒤의 인공지능이 '불쾌한 골짜기' 넘기 위한 또 하나의 속성은 무엇일까?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구글 나우나 Siri 등이 어느 순간 자율적으로 우리들의 대화에 끼어들거나, 먼저 말을 거는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현재의 인공지능은 마치 주인과 노예처럼 사용자인 인간이 어떤 명령을 내리거나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 먼저 움직이는 상황은 거의 상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알아가면서 그 사람의 성향에 맞추어 먼저 이야기를 하거나 분위기를 전환하고 인간관계를 학습할 수 있다면 이 역시도 인간에 훨씬 유사한 인공지능이라는 느낌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에 도덕적인 관점과 윤리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할 것이다. 자율성을 갖추고, 상호작용을 하며, 진화발전하는 인공지능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단순히 똑똑한 것을 넘어선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최근 예일대학의 웬델 월러치(Wendell Wallach)와 피츠버그 대학의 콜린 알렌(Colin Allen)이 공동집필한 <왜 로봇의 도덕인가? (원제: Moral Machines)> 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는데, 이렇게 로봇이나 인공지능에게 윤리를 심어주려는 연구도 미국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창 진행이 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과 로봇과 관련한 연구도 '불쾌한 골짜기'를 넘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적절한 시기를 봐서 남들에게 나쁜 뉴스를 전하는 방법이라든지, 문맥이나 분위기에 맞춰서 억양이나 말의 속도, 크기 등을 조절하는 기술, 사람들의 감성을 읽고 그에 공감하는 것과 같은 미세한 부분들이 앞으로 인공지능이 진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이를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런 기술의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인간과 우리 사회에 대한 연구가 같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행복감을 느끼며, 사회성은 어떻게 발달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등에 대해서 인문학과 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윤리학 등에서 적절한 모델과 학습방법을 제시해 줄 수 없다면, 결국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그런 매력적인 사람(?)을 흉내내거나 배울 수 있도록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그녀(Her)>에 나온 기술은 그래서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려운 기술이다. 단순히 올바른 답을 내도록 하는 문제풀이형 인공지능과는 또 다른 수준의 도전적인 과제다. 그렇지만, 이런 도전적인 과제를 풀다가 보면 인간에 접근한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 인간과 사회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더욱 많지 않을까?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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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BlabDroid.com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이제 먼 일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로봇과 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법률을 준비하는 법학자들의 컨퍼런스도 열리고 있고, 구글에서는 로봇회사들을 인수한 이후에 회사 내에 로봇과 관련한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로봇이 인간들의 사회를 돌아다니면서, 인간들을 관찰하고 다니면서 인간들에게 말을 건다면 느낌이 어떨까? 2013년 로봇공학자이자 예술가인 알렉스 레벤(Alex Reben)이라는 MIT 학생이 자신의 석사 논문으로 조그만 로봇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다녔다. BlabDroids라고 명명된 이 귀여운 로봇 20여 대 정도가 뉴욕에서 열린 트리베카 필름 페스티벌(Tribeca Film Festival)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다녔는데, 바퀴를 굴리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질문들을 던졌다. 각각의 드로이드 로봇들에게는 디지털 카메라와 스피커가 있어서 미리 프로그램된 질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던지고, 버튼을 누르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취합된 영상은 영상제작자인 브렌트 호프(Brent Hoff)가 편집하여 공개하였다. 


사람들이 귀엽게 생각하고 쉽게 마음을 털어놓게 하기 위해서 7살 소년의 목소리로 질문을 녹음하였는데,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저에게 낯선 사람들에게는 전에 절대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이야기를 해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했던 최악의 행동은 어떤 것이었나요?"

"누구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세요?"


이런 질문들은 사실 낯선 사람들에게 받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놀랍게도 블로그 포스트 하단에 임베딩한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이런 민감한 질문에 답을 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이 인간과 비슷한 형태와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나 로봇에 쉽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MIT의 컴퓨터 과학자 조세프 와이젠바움(Joseph Weizenbaum)이 주장한 바 있는데, 이를 "엘리자 효과(ELIZA Effect)"라고 한다. 와이젠바움이 엘리자 효과를 처음 이야기 했을 때에는 미래 세계에 인공지능을 다루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우려했던 것인데, 알렉스 레벤과 브렌트 호프는 그 효과를 다른 방식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 로봇들이 찍은 영상들은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편집이 되어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다큐멘터리 필름페스티벌(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에 출품되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로봇과 인간,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외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이렇게 정이 넘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부족해서 어쩌면 자신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다정한 이야기를 건네주는 로봇에게 이렇게나 친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딱딱하고 주어진 일을 명확하게 수행하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부분,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듯하다. 기술이라는 것을 논리적이고, 산업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될 것 같다. 여러 모로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BlabDroid는 일종의 서로게이트 로봇 아바타로 원격지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반응 들을 담아낼 수 있는 도구로서 상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도 하며, 퀴즈를 풀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며, 깜짝 인터뷰를 하기에도 좋을 듯하다. 이 로봇 자체가 앞으로 많이 보급이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로봇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참고자료:

These Adorable Robots Are Making a Documentary About Humans. Re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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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Robotis.com



로봇하면 요즘 떠오르는 생각은 "일자리가 사라진다"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로봇의 대두와 이로 인한 새로운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전 세계를 뒤덮기 시작했다. 최근 영미권에서 <기계와의 경쟁 (Race against machine)>에 이어 <세컨드머신(Second Machine)>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면서 더욱 그런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아마도 산업용 로봇들은 자동차 공장과 전자제품 공장, 다양한 중소규모의 제조업체에 이르는 많은 곳에서 인간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작금의 상황에서 다소 과장된 공포가 아닌가 싶다.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부의 불균형을 초래하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은 시간의 노동으로 생산성은 더욱 좋아지게 될 것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에 따른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줄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이런 경향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바뀐 것일까?


중요한 것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현재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는 주범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200년 전에는 90% 이상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했고, 100년 전에는 40%가 공장에서 제조업에 종사했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80% 이상을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면서 업종이 바뀌었듯이 거대한 산업구조의 재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변화의 본질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건설이나 제조업 자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는 것은 동일한 현상이다. 이런 전체적인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통찰없이 로봇과 인공지능을 탓하는 것은 과거 산업혁명 시절 방직공장에서 산업용 기계들을 때려부수던 러다이트(Rudite) 운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앞으로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산업구조의 재편도 빨라질 것이므로,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역할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물론 잘못일 것이다. 아마도 향후 20~30년 정도의 미래와 산업구조는 어느 정도로 변할 것인지 사실 예측하기도 힘들다. 병원에서는 로봇들이 수술과 진료를 담당하면서 과거보다 의료비용이 저렴하고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고, 택시와 트럭운전을 로봇들이 대신하면서 물류유통과 교통비용 등은 감소할 것이며, 법률소송과 회계처리를 담당하는 인공지능 로봇 에이전트 등에 의해 전문직들도 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줄 지도 모른다.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질문들이 가득하다. 기계들은 일은 하지만,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계층이다. 그렇다면 누가 소비를 하고 돈을 내는가? 미래의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들보다 똑똑하다면 굳이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교육이 중요하다는 동기부여가 가능할까? 


그렇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바로 그 시기에 대한 점이다. 현재 로봇기술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계단조차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며, 정교한 손동작을 하기도 어렵다. 창의성은 0에 가까우며, 감성이라고는 없다. 최첨단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만든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 봐줄만 하지만, 이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만들어져서 우리 사회에 진정한 위협으로 다가오기까지 아직은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듯하다. 아마도 향후 40~50년 뒤에는 상황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지난 50년 전을 뒤돌아보면 정말 상전벽해와도 같은 변화가 있었다고 회고할 지 모른다. 그러나, 수십 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지 않고, 찬찬히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지나치게 걱정을 하면서 과도하게 규제를 하거나, 불안해하는 것도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난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이 별 변화없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도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가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긴장과 관심을 가지고, 윤리와 법률, 철학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냉철한 준비가 지금은 더욱 필요하다.



참고자료:


How to Freak Out Responsibly About the Rise of the Rob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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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로봇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로봇하면 철로 만들어진 팔과 다리,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최근에는 재해에 대응하는 기능이 부각되고 있으며, 조금 더 나아가면 무인으로 날아다니는 무인비행기인 드론 등이 최신 로봇기술의 동향에 등장하는 듯 싶다. 


그렇지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로봇의 기능은 뭘까? 만약에 어떤 물건이 있고, 그 물건에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감정이입이 가능하고 애착이 생긴다면? 사실 이는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끼는 물건, 가량 차량과 같은 것에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한번 생각을 뒤집어 보자. 로봇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철로 만들어진 무쇠인간의 형태에서 출발하기 보다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어떤 것에서 출발해 본다면? 일단 아이폰의 시리(Siri)가 그런 기능에 다소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물론 IBM의 왓슨(Watson)이 그 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 왓슨도 2015년이면 모바일 폰에 탑재될 수 있다고 하니 나름대로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에 지금보다 더 똑똑해지고,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리(Siri)나 IBM의 왓슨이 탑재된 스마트폰이 있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학습도 하며, 동시에 개개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감성적인 반응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할 때 이런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걸어 다니거나 혼자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자신의 감정을 디스플레이로 얼굴 표정과 유사하게 표현해서 알릴 수 있으며, 팔이 있어서 작업을 할 수 있고, 카메라는 얼굴의 형태를 갖춘 케이스에 2개의 눈의 형태로 달려 있으면서 당신을 알아보고 반응한다면 어떨까? 현재의 스마트폰이 확장한 형태로 로봇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형태의 확장된 스마트폰 로봇이 나를 대신해서 차를 몰고, 쇼핑도 할 수 있으며, 저녁을 준비하고 뉴스를 브리핑하며, 나의 스케줄을 관리한다면 어떨까? 비록 움직이는 로봇의 기능은 조금 떨어져서 이족보행을 못하기 때문에 바퀴를 주로 활용하다가 장애물이 있을 때에만 넘어갈 수 있고, 어려운 길은 가지도 못하지만 눈썹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감성에 반응할 수 있는 그런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 


이처럼 앞으로의 로봇과 관련한 기술은 기계적인 부분 이상으로 인지적인 측면과 감성적인 부분, 사회적인 기능이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는 어쩌면 현재의 스마트폰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술들이 전통적인 로봇 기술 이상으로 중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인지적인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감성적인 반응을 하며, 사회성도 있는 로봇이 등장한다면 로봇에게도 어떤 권리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인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먹이만 받아먹는 동물도 최근에는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그 권리를 끔찍하게 챙겨주며, 이런 동물들을 잘 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이제는 그런 사회적 합의가 마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한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사람들과 어느 정도 교감이 가능한 감성형 로봇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이런 로봇을 험하게 대하거나, 마음대로 해체하는 등의 행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보다 이런 종류의 기술의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어쩌면 로봇의 윤리학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는 듯하다. 


MIT 미디어 랩의 케이트 달링(Kate Darling)은 이런 이슈를 다룬 "사회적 로봇의 법적인 권리확장 (Extending Legal Rights to Social Robots)" 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통해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로봇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로봇과의 효과적인 공존과 공생을 도모해야 할 것인데, 이 경우 로봇에게 법적인 권한을 부여할 때에는 어떤 위험과 논란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가 온다면 일부에서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없으며, 우리가 보존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SF소설에서나 소재로 삼아서 간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인간을 완벽하게 흉내내는 운동기능을 갖춘 로봇 이상으로 사회적 로봇과 감성적 로봇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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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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