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인혁 교수님이 2006년 7월 우리들병원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하신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저부터도 아직은 이런 우리말 의학용어가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연습을 해서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뼈엉성증"이 골다공증보다 우습게 들리시나요?  그렇다면 콩팥도 신장이란 말보다 우습겠군요.


저는 의과대학 강단에서 해부학 교육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공과는 별개로,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의학용어에 우리말을 되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글은 세종대왕께서 1446년에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배우기 어려워서 온 백성이 쉽게 배우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말을 잘 쓰면서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거의 오랫동안 땅에 묻어 두었고, 오늘날도 제대로 아끼고 가꾸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말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낱말을 우리의 문법체계에 맞게 나열하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고 생각만 할 수 있겠지만,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우리 생각을 펴나가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합니다.

우리 역사는 쉴 사이 없이 계속 넘실대며 이어지고 있는데, 저 물결하나하나를 우리는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철학자들은 이런 물결과 파도하나하나를 언어를 통해서만 구별해서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제 얘기를 듣고, 보고, 앉아 계시면서는 순간에도 몸의 여러 가지 감각을 받아들이고 느끼실 것입니다. 마치 이어지는 물결과 같이 언어가 없으면 하나하나를 인식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어떤 나라 사람들은 네 개라고 대답합니다.  실제로 무지개의 색깔은 빨강과 주황사이에, 주황과 노랑사이에 무수하게 많은 색깔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곱 빛깔이라는 말의 힘에 의해 일곱 개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닭울음소리도 나라마다 제각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꼬끼오’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코커두들두’라고 합니다.  닭울음소리는 하나이지만 각자 언어를 통해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가 우리사회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말의 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들이 병원에 계시면서 늘 자주 사용하는 의학용어도 우리말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시기는 19세기 말 무렵으로 선교사들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1910년 전후로 영어로 된 서양교과서를 우리말교재를 만들어 쓰게 되는데 이는 대부분의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입니다.  또 1910년부터 45년간에 일제의 식민지를 겪으며 우리는 모든 교육을 일본말로 배우게 됩니다.

해방 이후, 각 학회단위로 우리말을 쓰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합니다.  이를 처음으로 시작한 학회가 안과학회였는데, 녹내장이라는 질환은 눈에 압력이 놀라가서 생기는 질환이니 ‘단단눈알’로 고치자고 했습니다. 지 금은 여러분이 다 웃으시겠지만, 실제로 눈알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질환을 가진 경우는 2천명 중 한명 있을까 말까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많은 논의들은 한국전쟁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1970년대 들어와 과학기술처 주관으로 각 학회를 동원해 본격적인 의학용어 정리 작업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일본식 한자와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1993년 한 조사에 따르면 의학용어의 83%가 일본식 한자어였으며, 해부학용어의 경우 제가 조사한 바로 95%이상이 일본식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의학용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society'라는 말이 1796년 일본에 옮겨져 ‘사회’라는 말이 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1895년 일본으로부터 그냥 받아들여 쓰고 있는 것입니다.

2001년 우리말 용어로 바꾼 후, 일치율은 28%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말 의학용어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합니다.  ‘심상성 좌창’이 여드름이라는 용어로 독립하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또 아직까지 ‘소양증’이 ‘가려움’이 되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위공장문합술’을 ‘위창자연결술’로 바꾸자 ‘창자’라는 말에서 ‘곱창’이 떠올라 거부감이 생긴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빈대떡을 먹을 때 빈대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빈대떡은 빈대에서 유래했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사용하던 말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서양용어가 농경사회 때부터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익숙하게 사용되는 것과 달리, 우리가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많은 개념들은 역사가 매우 짧고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 받아들여졌습니다.  때문에 우리말 의학용어가 당장은 갓 쓰고 양복 입은 느낌을 줄 수도 잇겠지요.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과 어색함은 우리 모두의 떠맡아야할 몫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국민 전체가 회충에 감염되어 있는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회충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일본식 한자용어는 회충과 같습니다.  모두가 회충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건강의 절대적인 가치기준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들병원과 안 지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이상호 이사장님이 어느 날 병원이름을 우리들병원으로 짓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땐 병원 이름으로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병원과 관련이 없는 병원들까지 ‘우리들’이라는 상호를 쓸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들병원, 얼마나 친근하고 내 집같이 편안한 우리말 이름입니까?

큰 수해를 입고 나면,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필요합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제 강물줄기를 어느 정도 따라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홍수가 나서 둑이 터지게 될지 모릅니다.  물이 제 길로 갈 때에는 강 주변을 비옥하게 해서 우리에게 풍요를 주지만, 잘못 관리하면 막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제 길에 들어선 우리의 언어생활을 이제 제대로 가꾸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인혁 교수님은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
- 대한해부학회 이사장, 대한체질인류학회 회장
- 대한의사협회 남북한 의학용어 비교연구소위원회 위원장,
- 의학용어실무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서로 <남북한의학용어>, <우리말 의학용어>, <사람과 해부학> 등이 있으며, 제 26회 외솔상 시상식에서 실천부문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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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우리들 웹진을 통해서도 발간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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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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