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대에는 주로 남성작가들의 전유물이었던 SF 분야에 정말 뛰어난 여성 SF작가들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다. 



최고의 여성 SF작가, 어슐러 르 귄 from Wikipedia.org



SF와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 어스시 연대기와 헤인 연대기


어슐러 르 귄은 부모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다. 그녀의 아버지는 UC 버클리의 문화인류학자인 앨프리드 크로버이고, 어머니는 작가인 시어도라 크로버다. 이들에게는 매우 독특한 경험이 있는데, 미국 역사에서 '최후의 야생인디언'으로 불리는 야히 부족 최후의 생존자 이시를 맡아 보호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어슐러에게 많이 해준 탓에 어슐러의 작품 곳곳에 이시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내용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어스시 연대기(Earthsea Cycle) 시리즈와 헤인 연대기(Hainish Cycle) 시리즈에는 언어가 큰 힘을 가지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야히 부족의 문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SF작가 최고의 영예인 휴고상을 5회, 네뷸러상을 6회나 수상했다. 그럼에도 데뷔할 때 독자들이 여자가 쓴 소설을 읽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출판사의 권고를 받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 SF업계에서의 성차별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어서, SF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그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오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작 시리즈인 어스시 연대기와 헤인 연대기는 각각 판타지와 SF쟝르로 구분되지만, 연대기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각각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연결된다기 보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독특한 접근을 보여주었다. 특히 어스시 연대기의 최고의 팬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녀의 작품에서 여러 내용을 가져와서 작품에 녹여내기도 했는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그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이다. 그런 연유로 어스시 연대기 세 번째 작품인 <머나먼 바닷가 The Farthest Shore>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아 세간의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 작품이 바로 2006년에 개봉한 게드전기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는데, 최고의 작가와 최고의 스튜디오가 만났는데 이렇게 망작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상영 후 원작가인 르 귄이 신랄한 평을 하기도 했다. 



게드 전기, 테루의 노래: 작품은 망했지만, 이 노래는 정말 좋다!



헤인 연대기는 거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연작 시리즈다. 공식적인 시리즈락 보다는 헤인 우주를 배경으로 쓴 SF소설을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우주여행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일이 흔하고, 작품 간의 간격은 기본 수백 년이라서 각각의 책을 따로 읽어도 문제가 없다. 마치 마모루 나가노의 끝낼 수 있을지 모르는 비운의 명작인 파이브스타스토리 같은 느낌이랄까?  SF소설로 구분이 되고, 이 시리즈 연작 중의 많은 수의 휴고상과 네뷸러상 수상작이 나왔지만, 흔히 보는 SF와는 많이 다르다. 외계 문명과의 접촉은 제한적으로 나타나며, 해당 세계 내의 개인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펼쳐진다. 과학적 설정에 대한 것도 매우 정교한 편이라서 하드SF인지 소프트SF 인지를 놓고 팬들 사이에 논쟁이 있을 정도다. 혹자는 사회체제에 대한 사고실험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수십만 년 전, 헤인 인들이 지구를 포함해 수 많은 세계들을 식민화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헤인 문명이 붕괴하고 각각의 세계들이 서로 단절되고, 이들은 외계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간을 이룬다. 시간이 흘러 우주여행이 현실화되고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앤서블이 발명되면서 새로운 성간연합이 나타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 연작 시리즈는 단편과 장편이 섞여 있는데, 대표적인 단편으로는 <혁명 전날 The Day Before the Revolution>,  <셈레이의 목걸이 Semley's Necklace>, <겨울의 왕 Winter's King>, 연작 단편집인 <용서로 가는 네가지 길 Four Ways to Forgiveness>, <The Telling>  이 있으며,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The Word for World is Forest>, <로캐넌의 세계 Rocannon's World>, <유배 행성 Planet of Exile>, <환영의 도시 City of Illusions>, <어둠의 왼손 The Left Hand of Darkness> 등의 장편도 유명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앤서블의 경우,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수 많은 SF 작품에 비슷한 개념이 널리 인용되는데, 이영도나 듀나의 단편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광속 통신장치인데, 설정 상 100광년 너머에 있는 상대방과 통신하는데 왕복 200년이 걸리면 사실 성간연합에서 뭔가를 할 수가 없는 셈이고, 이야기의 전개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공간적 거리에 관계없이 '동시' 통신이 가능한 기기 설정은 어찌 보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어슐러 르 그윈의 앤서블이 워낙 이를 잘 묘사했기에, 그냥 앤서블이라고 하면 다 통용되는 대명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기를 어슐러 르 그윈은 SF 3대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이라인, 아서 클라크에 버금가는 작가라고 말한다. 특히 그녀의 판타지가 어우러진 설정과 섬세한 은유와 심리묘사 등은 당대 최고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양철학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특히 노자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녀의 작품 곳곳에 그런 분위기가 나타난다. 심지어 도덕경을 영어로 번역도 하였다.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최고의 SF 작가로 86세의 고령임에도 아직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신비의 미스테리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제임스 팁트리는 누구도 만난 사람이 없어서. 세간에는 괴상한 소문이 파다했던 미스테리 작가였다. 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리 셀던 (Alice Bradley Sheldon)이다.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아프리카에서 야생 고릴라를 본 최초의 백인 여성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실험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박사 학위를 땄는데, 이 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SF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건강 문제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었는데, 필명 때문에 누구나 남성 작가로 생각했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실명과 함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쇼크를 받은 사람이 많아서 이를 팁트리 쇼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프리카 키쿠유 부족과의 사진 from Wikipedia.org



화가, 예술 비평가, 공군 조종사와 군 정보원, CIA 정보원 등의 직업에 종사했고, 군대나 CIA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관심을 받았던 것이 싫어서 필명을 남성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는 라쿠나 셸던이란 다른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는 여성으로 포지셔닝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팁트리의 영향을 받은 아류 작가로 생각했는데, 이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사람으로 밝혀진 것이다. 


개인적인 삶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말년이 되어 알츠하이머병 병에 걸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남편의 죽음이 가까와진 1987년 남편을 산탄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그녀는 페미니즘 문학의 영역을 확대했고, 특히 SF소설과 판타지 분야에 있어 어슐러 르 귄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작가로 손꼽힌다. 주목할 만한 단편을 많이 남겼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1978년 네뷸러상을 수상한 <체체파리의 비법 The Screwfly Solution>이다. 국내에도 <접속된 소녀 The Girl Who Was Plugged In>, <보이지 않는 여자들 The Women Men Don't See>,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Houston, Houston, Do You Read?>,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The Las Flight of Dr. Ain> 등과 함께 동명의 단편집이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인류종말물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전개를 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러다보니 2006년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2에서 조 단테 감독에 의해 영상화도 되었다.


그녀를 기리는 상도 1991년에 만들어졌는데, 1991년 성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인 SF나 판타지를 대상으로 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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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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