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컴퓨터와 인터넷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물리학자 래리 스마르, 

현재도 구글+를 통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from Larry Smarr 구글+ 프로필 페이지



지금까지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에서 전쟁과 미국 국방부의 전략, 그리고 대학들의 연구를 위한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또 하나의 기술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수퍼컴퓨터이다.



수퍼컴퓨터의 발전


수퍼컴퓨터는 강력한 연산기능을 가진 컴퓨터로 1960년대 세이머 크레이(Seymour Cray)가 CDC(Control Data Corporation)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것으로 보통 1964년에 발표된 CDC 6600을 세계 최초의 수퍼컴퓨터로 본다. 크레이는 1972년 회사를 떠나서 자신의 이름을 건 크레이 리서치(Cray Research)를 설립하는데,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퍼컴퓨터를 만들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세서를 여러 개 병렬적으로 이용하여 동시에 커다란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하는 것이 드물었고, 과학연구에 이런 계산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들이 많아서 국가적으로 전 세계에서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수만 개의 프로세서가 연결된 수퍼컴퓨터들도 나오고 있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퍼컴퓨터는 주로 물리학에서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거나, 날씨 예측, 석유나 가스 탐사, 화학에서의 분자모델링, 물리 시뮬레이션과 우주항공 분야, 핵무기 연구 등과 같이 국가적으로 중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과학연구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로 생각되었다. 문제는 워낙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한두 사람의 과학자를 위해서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수퍼컴퓨터를 구매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네트워크 기술은 수퍼컴퓨터의 강력한 성능을 여러 연구자들이 공유해서 쓸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인터넷과 최적의 궁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래리 스마르가 겪은 독일에서의 수모


이런 특징을 가진 수퍼컴퓨터가 인터넷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게 된 것은 어느 젊은 물리학자가 독일에서 겪은 수모와 연관되어 있다. 그 주인공이 래리 스마르(Larry Smarr)로, 그는 이후 미국의 수퍼컴퓨터의 응용과 확산, 인터넷 인프라, 그리고 전 세계 PC를 연결해서 강력한 성능의 수퍼컴퓨팅을 수행하도록 하는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업적을 만들게 된다.

레리 스마르는 1975년 텍사스 주립대학 오스틴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예일,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를 하다가 1979년 일리노이주립대학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이하 UIUC)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가 관여하던 물리학 연구분야에서는 당시 수퍼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계산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수퍼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매우 많았다. 이렇게 수요가 컸지만, 엄청난 비용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에서 직접 비용을 들여 수퍼컴퓨터를 구매한다는 것은 거의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대학의 연구자들은 미국 NSF에 타당한 이유를 들어서 수퍼컴퓨터를 구매하기 위한 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는데, 대당 100억 원이 넘는 수퍼컴퓨터를 하나 둘 살 수 있도록 NSF에서 지원을 하다보니 너무 많은 요구가 넘쳐나고, 형평성 문제까지 나타나면서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수퍼컴퓨터를 지원받지 못한 대학의 연구진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결국 연구를 위해서 수퍼컴퓨터를 원활하게 쓸 수 있는 곳으로 단기적으로 원정을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수퍼컴퓨터를 주로 핵무기를 만들거나 핵과 관련한 최고의 기밀로 가득한 국가연구기관에서 보유하고 있어서,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에 잠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민간에서는 국가안보와도 관계가 있어서 수퍼컴퓨터가 확산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연구환경에서 래리 스마르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 펠로우 시절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Marx Planck Institute)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는데, 이곳에서 미국의 내로라 하는 다양한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모두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마음놓고 수퍼컴퓨터를 이용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수퍼컴퓨터는 미국에서 발명한 것인데 이렇게 독일에 와서야 신나게 연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결정적으로 래리 스마르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그가 독일에 있는 동안 파티를 주최한 한 독일 과학자가 그에게 한 말이었다.

당신들 미국인들은 부끄럽지도 않소? 당신들은 크고, 부자이며 모든 것을 다 가진 나라가 아니오? 당신들은 이렇게 작은 우리나라에 와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전쟁에서 진 이후에 간신히 가난에서 벗어나 부를 쌓아서 이제서야 수퍼컴퓨터를 사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소. 그런데, 전쟁에서 이긴 미국인들이 이제 우리에게 와서 우리들의 시간을 빼앗고 귀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소. 어떻게 그런 마음가짐으로 당신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단 말이오? 나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소.

 그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 돌아온 래리 스마르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UIUC의 교수로 발령을 받은 이후, 래리 스마르는 무작정 UIUC의 과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아마도 당신은 저를 모르실겁니다. 저는 이제 막 학교에 부임한 조교수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당신은 부족한 자원들로 제대로 연구를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특히 수퍼컴퓨터 말입니다.

그의 이런 전화에 많은 교수들이 황당해하거나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지만, 화학과 생물학, 농학 등의 교수들 중의 일부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몇몇 교수들을 설득한 래리 스마르는 미래의 과학연구를 위한 수퍼컴퓨터 인프라에 대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여기에 참여한 래리 스마르를 포함한 8명의 교수들이 이후 인터넷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긴 국립수퍼컴퓨팅 응용센터(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이하 NCSA)의 설립의 원안이 되는 10페이지 남짓한 블랙 제안서(Black Proposal)를 작성하게 된다.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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