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Flickr by dfarber


IT 삼국지, 이제 격동의 2001년을 지나 구글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2002년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오늘날 최고의 파워여성이 한명 등장하는데, 그녀가 바로 오늘날 최고의 소셜 웹 서비스 회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페이스북의 COO 인 쉐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 입니다.


정치권에 뛰어든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

1969년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쉐릴 샌드버그는 1991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학생에게 수여하는 존 윌리엄스상까지 수여한 최고의 인재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월스트리트로 일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에게는 존경하는 스승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을 결정하던 실세이며 하버드 대학의 혜성같이 나타난 신성 로렌스 서머스였습니다.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대학을 졸업하고 월드뱅크(World Bank)에 직장을 구한 그녀는 주로 인도의 나병이나 AIDS 등과 같은 보건문제를 주로 다루면서 경험을 쌓고 1993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을 해서 1995년 MBA 학위를 취득하는데, 이때에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하버드 MBA 과정 학생들 중에서 최고의 성적과 상을 휩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졸업 후 1년 정도 최고의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McKinsey & Company)에서 경험을 쌓고 있던 그녀를 부른 사람은 자신의 은사인 로렌스 서머스 였습니다.  로렌스 서머스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인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을 보좌하는 차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쉐릴 샌드버그는 가장 믿을만한 제자였습니다.  로렌스 서머스의 호출로 그후 4년 반 정도 미국 재무부의 특별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쉐릴 샌드버그는 로렌스 서머스가 재무부 장관이 되자 수석참모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2001년 1월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가 다가오자 그녀는 워싱턴을 떠나야했습니다.  이 시점에 그녀에게 다가가서 자리를 제안한 사람이 바로 에릭 슈미트 입니다.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을 뜯어고치는데 성공한 슈퍼우먼

에릭 슈미트의 매력적인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쉐릴 샌드버그는 에릭 슈미트가 자신에게 제안한 '사업유닛 총괄관리자'라는 직책의 실체가 거의 없다는 느낌에 많이 주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은 제대로된 사업을 벌이고 있지 않고, 엔지니어의 천국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에릭 슈미트의 끈질긴 구애를 받고, 특히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꼬심에 넘어가서 그녀는 구글의 268번째 직원이 됩니다.  그녀가 구글에 입사할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은 CFO 도 없었습니다.  그 덕에 입사하자 마자, 에릭 슈미트가 그녀에게 맡긴 비밀업무 중의 하나가 만약을 대비한 자금줄을 잡아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 구글이 내부에서의 생각과는 달리 외부에서는 매출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어서 생각보다 낮은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대신 제대로 된 사업모델을 만드는 일에 투입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구글의 사업과 운영부분은 오미드 코르데스타니(Omid Kordestani)가 총괄하고 있었는데, 쉐릴 샌드버그는 그의 휘하에서 애드워즈(AdWords) 사업의 혁신을 이끌겠다고 자청합니다.  특히 오버추어와 유사한 CPC(Cost Per Click) 모델에 대해서 그녀는 확신을 하고 있었고, 이 모델이 통하기만 한다면 광고판매를 하러 다닐 필요가 없고, 광고주들이 키워드당 가격 뿐만 아니라 몇 번이나 클릭이 되었는지도 알 수 있으며, 검색결과 상위에 올라갈수도 있기 때문에 검색광고 시장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녀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던 에릭 슈미트는 코르데스타니의 팀에 살라르 카만가르까지 합류시키며 총력전을 펼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광고의 연관성을 평가한 데이터와 클릭당 비용모델을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구글의 창업자들이 늘 주장하던 광고가 검색의 결과를 왜곡시키는 모양새를 피할 수 있을 것이고, 언제나 딜레마로 남아있었던 광고판매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롱테일을 집중공략할 수 있었기에 과거 전화번호부 이외에는 마땅한 광고수단이 없었던 소상공인들이 온라인 광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모니터링도 쉽게할 수 있었기에 커다란 매력이 있었습니다.


구글의 성공가도를 달리는 애드워즈의 새로운 모델 발표

2002년 2월, 구글의 두 창업자는 쉐릴 샌드버그를 비롯한 새로운 팀이 개발한 애드워즈의 새모델을 발표합니다.  그러면서, 과거 광고와는 달리 광고를 작게 한두 줄로 제한하고 글자 수도 95자가 넘지 않게 하는 등, 검색결과를 나타내는 곳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동시에 광고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조심스러운 접근을 했던 탓에, 새로운 애드워즈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지는 당시로서는 미지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델이 성공한다는 것을 증명하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구글은 2001년 8천 6백만 달러의 매출을 내는데, 새로운 애드워즈가 적용된 2002년에는 4배가 넘는 4억 39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합니다.  그 중에서 1억 달러는 수익으로 남았습니다.  기술만 있었던 기업에 드디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이라는 날개가 달리면서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크 주커버그와의 만남,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합류

구글을 사실 상 날아오르게 만든 주역이었던 쉐릴 샌드버그는 애드워즈의 담당 부사장으로서 구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2007년 후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떠오르는 신성이자 당시 25세에 불과한 약관의 청년 마크 주커버그를 만나자 마음이 흔들립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그녀와의 만남이 끝나자 페이스북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 자리를 맡을 사람은 그녀 밖에 없다는 결론을 사실상 내리고 그 다음달인 2008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Davos Forum, World Economic Forum)에서 그녀를 만나 공식적인 제안을 하였습니다.  

2008년 3월, 페이스북은 공식적으로 쉐릴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의 COO 로 선임되었음으로 알립니다.  현재 쉐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의 전체적인 운영과 영업, 마케팅, 인사와 정책, 커뮤니케이션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2인자입니다.  그녀가 어째서 당시로서는 불확실한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를 믿고, 구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회사를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물론, 페이스북이라는 회사의 미래를 믿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호사가들은 구글에서 자신의 상사였던 오미드 코르데스타니와의 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009년 샌드버그는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이사로 선출되며, 같은 해 스타벅스의 이사로도 선임되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연구소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사직을 포함한 유수의 단체에도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파워여성 중의 한 명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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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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