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iPod 모델 from Wikipedia.org


IT 삼국지, 오늘은 2001년 애플의 중흥을 이끌게 되는 제품 아이팟(iPod)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아이팟 프로젝트를 총지휘 하였지만 2인자로 남고 싶지 않았고 팜의 회장을 거쳐 현재는 HP에서 중요한 요직을 맡고 있는 애플 출신의 장수 존 루빈스타인(Jon Rubistein)을 소개합니다.


존 루빈스타인, 애플의 중흥을 책임지다.

2001년 1월 애플은 $1억 9,500만 달러의 손실을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뒤 기록한 기록적인 손실이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이 다시 PC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전체적인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것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MP3 기기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애플보다 되려 우리나라의 아이리버나 미국에서도 작은 벤처기업들이 먼저 시작한 분야입니다.  애플은 MP3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사운드잼 MP라는 음악재생기의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이 기기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던 제프 로빈(Jeff Robin)이라는 엔지니어를 영입합니다.  제프 로빈의 활약으로 음악과 관련한 애플의 플랫폼이 되는 아이튠즈(iTunes)를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발표하고 뒤를 이어 하드웨어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 바로 10년 이상 애플의 하드웨어 사업을 이끌었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새로운 음악재생기 사업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잡스가 애플을 떠나 설립했던 넥스트(NeXT)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를 하면서 존 루빈스타인도 자연스럽게 애플에 합류를 하면서 애플 하드웨어 개발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2004년이 되면서 애플은 아이팟 부문과 매킨토시 부문을 분리하게 되는데,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 부분의 총책임자가 됩니다.  


애플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한 카리스마

1997년 애플에 합류하자 마자 루빈스타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라인과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애플은 15가지가 넘는 제품들을 각각의 독립적인 개발 프로세스와 생산라인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복수의 개발팀은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았고, 각각의 부품들은 공통적인 요소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중구난방이었던 개발 프로세스와 제품생산과 관련한 프로세스를 완전히 정리합니다.  제품의 연구개발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절반 가까이 절감합니다.  

1998년에는 애플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인 아이맥이 선을 보입니다.  루빈스타인은 아이맥 하드웨어 부분을 총괄하면서 11개월 만에 출시할 수 있는 제품개발 완료를 하는 괴력을 보입니다.  이는 과거의 애플 개발진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엄청난 속도였다고 합니다.  단순히 몇 개의 옵션이나 주변기기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USB를 중심으로한 주변기기 표준의 변경, 플로피 디스크를 없애는 등의 굵직한 혁신을 만들어낸 제품인 아이맥은 조너던 아이브와 존 루빈스타인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팟 성공의 열쇠가 된 초소형 HDD와 스크롤 휠

아이팟의 하드웨어를 고민하던 존 루빈스타인이 "빙고"를 외치게 된 사건은 일본에서 벌어집니다.  2001년 2월 도쿄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 참가하던 그는 매킨토시 HDD를 공급하는 업체인 도시바(Toshiba)를 방문했다가 1.8인치 HDD를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노트북에 집어넣은 HDD도 2.5인치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도시바 조차도 이렇게 작은 HDD를 어디에 쓸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이를 보는 순간 바로 새로운 아이팟에 대한 감을 잡았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팟의 하드웨어 디자인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드웨어 디자인을 위해 필립스와 제너럴 매직의 휴대용 기기 제작으로 유명한 엔지니어인 토니 파델(Tony Fadell)을 고용하고, 아이팟 팀을 구성했는데 이 팀은 철저히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초소형 HDD가 기본을 제공했다면, 아이팟을 다른 제품과 차별화시킨 스크롤 휠은 의외로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가 제안한 것입니다.  사실 단순해 보이지만 참신한 인상을 준 이 스크롤 휠 아이디어는 아이팟 성공의 가장 큰 효자가 되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단순히 아이팟을 단일기기로 성공시키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아이팟에 의한 2차시장과 그 생태계의 중요성을 파악한 루빈스타인은 스피커, 충전기, 각종 도킹 포트, 그리고 백업 배터리 등과 같은 수많은 액세서리 마켓을 집중 공략합니다.  이를 통해 구성된 아이팟 생태계는 매년 $10억 달러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팟 제외하고).


영원한 2인자로 있을 것인가?  

이렇게 승승장구했던 존 루빈스타인이 어째서 애플을 떠났을까요?  넥스트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와 함께 했고, 그를 따라 애플을 최고의 기업으로 성공시킨 사나이가 애플을 떠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아이폰(iPhone)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폰의 개발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던 존 루빈스타인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제품의 개념 정립에서부터 세세한 제품개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스티브 잡스의 간섭을 참지 못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폰을 자신의 개념에 맞추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스마트 폰의 형태로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 비전이 스티브 잡스와 달랐습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이폰 개발을 하면서 루빈스타인이 더 이상 잡스의 그늘에서 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애플이라는 선망의 대상 기업에서 1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상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스타일로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팜(Palm)의 중흥을 책임지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의 대성공을 뒤로 하고 2007년 애플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지도 몰랐던 팜(Palm)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2008년 월스트리트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인 엘리베이션 파트너에서 $3억 25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하게 만듭니다. 

2009년 CES에서 내놓은 팜프리(Palm Pre)는 그의 이러한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역작이었지만, 아이폰의 아성을 뚫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개발한 WebOS 의 가능성과 팜이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특허를 무기로 앞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 양쪽에서 애플과 구글의 아성을 위협할수도 있는 HP가 팜을 인수하면서, 동시에 존 루빈스타인을 중용하고 있기에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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